연민과 반성이 없는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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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민과 반성이 없는 사회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01.09 11:49
  •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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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미년 청양의 해가 밝은지 벌써 며칠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서해안 마량포구 해돋이 행사에 참가했지만 올해는 구름 때문에 솟아오르는 해를 볼 수는 없었다. 오늘 떠오르는 해와 어제의 해가 다른 것이 아니지만 사람들은 먼 길을 달려와 새해 아침에 소원을 빈다. 내일에 희망을 걸어 본다는 것은 어제와는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일일 것이고, 좋은 일들이 우리를 행복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푸른 양은 길함을 상징한다고 하니 올해 좋은 일이 많이 발생하리라 기대된다. 그러나 행복할 것이라는 믿음이 현실로 다가오기 위해서는 개인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우리를 아프게 했던 과거의 사실들이 미래에는 반복되지 않아야 가능할 것이다.

지난해 우리는 304명의 아까운 생명을 바닷물에 잃고서도 그것을 다시 반복하지 않을 반성과 대책을 세우고 있는지 확실치 않다. 바닷물 속으로 서서히 빠져들어 가는 배의 뒷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면서 우리나라의 수뇌부는 온갖 지원과 철저한 대책을 약속했지만 그 뒤로 얼굴을 바꿔 아직 그 가족을 만나지도 않고 있다. 흘리던 눈물에 무정함과 비정함이 함께 숨어 있음을 우리가 눈치 채지 못한 것일까?

전 대한항공의 부사장이 출발하던 비행기에서 사무장을 내리도록 했던 ‘땅콩회항’ 사건도 우리를 우울하게 했다. 소위 갑질이라는 오만함은 많은 사람들을 분노케 했고 그녀는 결국 인민재판의 결과처럼 구속되고 말았다. 회사의 종업원을 노예처럼 마구 대해도 된다는 방자함은 그녀가 이제까지 교육받고 살아온 삶의 결과물일 수 있고, 그 허접함에 대중은 자신이 당한 듯 분노했다. 이런 경박한 일들의 발생이 대한항공에만 해당하는 것일까? 우리 사회 곳곳에서 이와 유사한 갑질이 벌어지고 있음을 얼마 전 이 사건을 풍자한 코메디 프로에서 찾아볼 수 있다. 옷가게에 자장면을 늦게 배달한 배달원은 옷가게 주인으로부터 면박을 당하고, 옷가게에 옷을 사기로 한 배달원은 왜 내가 찾는 옷이 없느냐고 옷가게 주인에게 갑질을 해댄다. 받은 만큼 갑질을 되돌려주는 코메디는 우리 사회의 천박한 정서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씁쓸한 블랙코메디라고 할 수 있다.

왜 우리 사회는 이렇게 갑질의 오만함과 비정함으로 치닫고 있는 것일까? 갑의 위치에 올라서기 전까지는 갖은 수모를 참아내다가 갑의 위치에 올라서면 당한 만큼 돌려주려고 하는 ‘라면상무’의 출현이 인간스러운(?) 감정일까? 장자크 루소는, 인간은 태어나기를 선하게 태어났으나 세상을 살아가면서 예속과 굴종의 상태에 빠져 악하게 되었다면 그 잘못은 신에게, 자연의 질서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에게 있는 것이니 인간이 태어난 자연스런 상태를 향해야(turn to nature)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시간이 지나 갈수록 그 거리는 더 멀어지기만 하는 것 같다. 루소가 보기에 인간은 경쟁 없는 자연상태에서 자기애(自己愛) 뿐만 아니라 타인에 대한 연민을 갖고 있었지만 경쟁이 존재하는 사회 상태에서 자기애가 교활한 이기심으로 둔갑하고, 연민은 자기만 못한 사람에게는 경멸로, 자기보다 나은 사람에게는 시기심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상태에 있었던 연민과 자기애와 같은 순수한 본성을 경쟁이 존재하는 사회에서 이성과 양심의 힘을 빌려 새로운 사회적 덕으로 발전 시켜 나가야 한다고 설파했다.

그러나 인간은 그러기 쉽지 않다. ‘땅콩회항’ 사건에서 보듯이 인간은 잘못에 대해 반성은커녕 오히려 복수심에 불타기도 한다. 전 대한항공 부사장 조현아의 동생 조현민은 언니 ‘분명히, 복수할거야’라는 글을 남기고 있다. 이러한 인간성 마비는 부자들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 사회 모든 구석에 두텁게 존재한다. 인간성이 마비된 인간으로 자라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동정심과 연민 같은 감성적 능력이 풍부한 인간으로 우리사회가 교육해내야 한다고 루소는 『에밀』에서 말하고 있다.

아직, 우리나라의 가정교육과 대학교육은 이러한 것과는 거리가 멀다. 시청과 군청의 시민강좌 같은 실용교육이 대학의 교양과목으로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심지어 대학생들이 좋아하는 과목을 골라 교양과목으로 배치하는 대학도 있다. 과학과 기술이 발달한 지금 실용교육만 강조하고 사람의 품격을 높이는 고전과 인문학을 소홀히 해서는 함께 행복한 내일을 기대하기 어렵다. 타인에 대한 연민과 반성이 없는 사회에서는 ‘땅콩회항’같은 갑질은 언제나 반복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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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민호 2015-02-27 15:32:55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글이였습니다.

김재훈 2015-02-14 18:33:19
문제의 본질을 꿰뚫어 주시는 통찰력에 다시한번 감탄합니다.
앞으로도 좋은 글 기고 부탁드립니다!

이다은 2015-02-08 19:00:21
급변화하는 시대에서 거짓과 진실은 뒤엉키고 도덕과 정의가 상실되고 있습니다.
세상 속도에 적응해야 하는 우리는 중요한 본질을 놓치고 있습니다. 이상적인 사회로 변화되기 위해 선한 본성을 잃지 않게 하는 교육, 고전과 인문학에 대한 인식이 변화되야 합니다.
전혀 다른 시대 사람과의 본질적인 교감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겠죠. 저 또한 세월을 이겨내고 살아남은 고전과 인문학에 필요성을 다시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문학을 사랑하는 아줌마 2015-02-08 11:23:13
우리사회의 천박함을 속시원히 지적해주신 것 같아서 통쾌했습니다.
앞으로도 좋은글 많이 부탁드립니다.

김운영 2015-01-20 00:00:43
갑과을의 관계를 넘어서서 더블어 살아가는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서로 존중하고 배려할 수 있다면 세상은 한결 따뜻하고 아름다워질텐데요...교수님 좋은글 더 자주 접할순 없을까요?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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