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라는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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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라는 이름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5.03.02 15: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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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국제시장」(Ode to My Father)이 「아바타」의 기록을 넘어서 역대 박스오피스 2위에 등극했다고 하니 이 영화는 흥행에 성공한 것으로 한국 영화사에 기록될 것이다. 이런 흥행대박은 이 영화 영어 제목(아버지에게 부치는 노래)이 함의하고 있는 것처럼 “그때 그 시절 굳세게 살아온” 아버지들에 대한 연민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크다. 이 영화에서 피난시절 아버지를 잃어버린 덕수(황정민 분)는 아버지가 없더라도 가족을 꼭 지키라는 아버지의 ‘지상명령’을 지키기 위해 많은 고생을 하다 노인이 되어서야 아버지 사진을 들여다보며 다음과 같은 대사를 건넨다.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이처럼 지난날 아버지(또는 상징적 아버지) 말씀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지켜야 할 그 무엇이었다.

그러나 ‘영웅’같았던 아버지가 ‘경제적 기부자’ 또는 ‘정자 제공자’ 정도로 퇴색해 가고 있다. 루이지 조야는 『아버지란 무엇인가』에서 인류가 산업혁명을 겪으면서 아버지들이 일자리를 찾아 집을 떠나야만 했고, 공장에서 단순 노동자로 전락한 아버지들은 자식들에게도 점점 낯선 사람들이 되어갔다고 설명한다. 자식들의 시야 밖에서 일하는 아버지 생활은 더 이상 자식들의 생활과 관련이 없게 되었고, 자식들을 훈육할 만큼 자식들의 일상도 잘 알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아버지가 부재(不在)하는 젊은이들은 세상 살아가는 가치와 덕목들을 ‘가정의 아버지’나 사회의 ‘영적인 아버지’로부터 배우는 것이 아니라 매스컴이나 동년배의 젊은이들을 모방하면서 배워나가게 되었다. 위기나 위험에 처했을 때, 실패에 직면했을 때, 비행을 저질렀을 때 손 잡아주고, 격려해주고, 야단치는 아버지가 증발한 셈이다.

직장에서 밤늦게 들어오거나, 주말밖에 올 수 없는 아버지는 주말에는 지쳐서 TV를 시청하거나 모자라는 잠을 자야만 했다. 어느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가 썼다는 시(詩)는 시중에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사물과 현상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아이의 시선에 투영된 아버지의 모습은 충격적이다. “엄마가 있어 좋다./나를 이해해 주어서//냉장고가 있어서 좋다./나에게 먹을 것을 주어서//강아지가 있어서 좋다./나랑 놀아주어서//아빠는 왜 있는지 모르겠다.” 이 시를 쓴 아이의 눈에 비친 아버지의 존재감은 냉장고와 강아지 뒤에 있다.

훈육의 주체였던 아버지라는 존재가 부재하는 사회는 아이들이 성숙한 인격을 갖추지 못한 채 동물적 남성성으로 퇴행케 하는 사회적 막장행위들을 쉽게 허용한다. 살인을 했던 유영철, 김길태, 조두순은 아비 없이 자라난 ‘후레자식’의 전형적인 작태를 보여 주었고, 화를 참지 못하여 출발하는 비행기를 되돌리는 조현아, 야구방망이로 자신의 회사직원을 매질하고 매 값을 몇 푼 지불했던 어느 재벌 2세, 자신의 아들이 얻어맞았다고 폭력배를 데리고 가 폭행했던 어느 재벌 총수, 모두 막돼먹은 남성성을 쉽게 발휘한 예들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도 이런 기행에 가까운 탈법적 폭력, 파렴치한 행위들은 줄어들지 않을 것이다.

동물적 남성성 속에 숨겨져 있는 야만성, 막돼먹음이 훈육을 통해 순치되어야 얻을 수 있는 것이 ‘부성’(父性)이다. 사이코패스들에게 부성은 없다. 본데없이 자라난 아이들, 즉 프로이트가 언급하는 ‘아버지라는 이름(도덕, 질서, 관습)’(Name-of-the-father)없이 막자란 아이들은 동물적 남성성만 키우고 부성을 획득할 수 있는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들은 진짜 아버지이든 상징적 아버지이든 아비 없이 자란 ‘후레자식’으로 사회 속에 진입하여 타인을 괴롭힌다.

사회가 점점 각박해질수록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에 더욱 몰두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런 아버지를 시인 김현승은 「아버지의 마음」이라는 시에서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눈물이 절반이다./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들이다.”라고 위로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서 시간에 쫓기는 아버지가 자식과 나누는 시간이 하루 9분이 채 안된다고 한다. 심지어 6.9%는 아예 대화가 없다고 한다. 이제 아버지들이 살기위해 눈물이 절반인 술을 혼자 마시기보다는 가족과 ‘저녁이 있는 삶’을 택해 가정의 ‘정신적 중심축’으로 다시 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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