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놈이 그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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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이 그 놈
  • 이성철 <나사렛대 교수·칼럼위원>
  • 승인 2015.04.13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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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년에 지금은 문닫은 여명사판에서 최요안이 쓰고 우현민 번역으로 출간된 『대폭군』의 마지막 단락 제목이다. 부제가 <수양제 염사>라고 되어있는 이 책은 바로 고구려 을지문덕에게 몇 백만의 대군을 이끌고 쳐들어왔다가 패망한 중국의 제왕 수양제에 대해 실록형식으로 쓰여진 책이다. 이 소설에서 중시해봐야 할 직급이 하나 있는데, 그 자리가 바로 ‘내시’이다. 대략 이러한 내용으로 쓰여진 이 소설 제일 마지막 단락 제목이 바로 ‘그놈이 그놈’이다.

수양제 정권 말기 그 폭정이 완전히 극에 달해 백성들은 도탄에 빠져있고, 정세는 바로 흉흉함 그 자체였다. 그 상황을 처음부터 계속 지켜보아 왔던 황제의 최측근 비서였던 내시 ‘우세기’는 그러한 황제의 모습에 부당함과 백성들을 위한 마음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생각을 키우고 있었다. 그렇게 주변 사람들을 포섭하고 치밀한 계획으로 결국 수양제를 몰아내고 황제 자리에 오르게 된다. 그리하여 드디어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다고 한다면 이 소설은 그저 내시가 황제를 몰아낸 역사적인 사건을 기록한, 말 그대로 한낱 실록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바로 그 다음에 시작된다.

‘우세기’ 자신이 내시자리에 있을 때 보아왔던 황제의 모든 것을 자신이 황제가 되어 백성들을 위해 바꿔보겠다던 내시는 자신이 바로 그 자리에 오르자마자 제일먼저 남자구실도 못하는 자식이 궁녀들부터 새로 뽑는다. 그리고 그 궁녀들과 놀아날 아방궁을 새로 신축하고, 그 신축비용을 자신이 내시자리에 있을 때 그렇게 불쌍하게 생각했던 백성들의 고혈을 쥐어짜서 마련하게 된다. 그러면서 내시자리에 있을 때 보아왔던 수양제의 모든 폭정을 수양제보다 더 심하게 저지르게 된다. 그래서 이 책의 마지막 단락이 바로 “그놈이 그놈”이 되는 것이다.

이쯤에서 우리 얘기를 해보자. 정치권에 들어가는 인간들은 모두 자신이 되어야만 모든 것을 바꿔놓고, 모든 백성들이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목구멍이 찢어져라 소리질러가며 선거운동을 하고 다닌다. 그러나 막상 그 자리에 가고나면 언제 내가 그런 말을 했느냐면서 자기 뱃속 채우기에 급급해진다. 지난 몇 년간 국가경제는 완전히 가라앉아 침체 정도가 아니라 폐허가 되다시피 했다. 그리고 대선이 치러졌고, 몇 번의 고위급 인사청문회를 거쳐 몇몇 인사들이 ‘우세기’에 버금가는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 고위공직자들의 재산변동내용이 현재를 살고 있는 힘없는 백성들과는 너무나 격세지감을 느끼게 하는 수준이어서 이제는 뭐라고 말하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본래 자신 혹은 부모의 재산이 있어서 자본주의 이론에 따라 재산이 증가된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느 방송에서 말했듯이 5명중 4명은 과연 그들이 불린 재산증식 내용이 순수한 자본주의 원칙에 준거한 것인가 하는 것이다. 대부분의 해당자들이 부동산 ‘투자(?)’라는 미명하에 생각지 않았던 지가 상승으로 재산이 늘었다하니 이 또한 재미있는 일이 아닌가? 백성들은 집값이 떨어지고 전세난과 월세난에, 팔아먹고 싶어도 매매가 안된다며 여기저기 죽어가는 소리가 천지를 뒤흔들고 있는데, ‘그 분’들만은 어찌 올라갈 곳을 꼭 짚어 알고 있었단 말인가. 고개가 갸웃거려지는 대목이다.

얼마 전 전국적인 조합장 선거가 있었다. 모두들 한 목소리로 조합에서 시행하는 양질의 사업으로 백성들과 조합원들의 합리적인 상생을 외쳐대며 선거에 임했고 그 결과 전국 조합장 판도가 새로 그려졌다. 그런데 문제는 선거법위반이 80여건이 넘는다는데 있다. 정말 조합원들을 위한 자리라면 과연 위법한 짓을 해가면서까지 조합장이 되려고 했을까? 왜 그랬을까 궁금하여 조합장의 권한을 뒤적거려보니 이거는 정말 말로만 조합장이지 대통령보다 더 막강한 권력을 쥐게 되는 자리가 바로 ‘조합장’이었다. 그러니 악을 써가며 조합장이 되고 싶었겠지.

하루하루를 그저 다른 생각으로 한눈팔지 못하며 먹고살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몸과 마음에 구슬땀을 흘려대며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백성들을 생각해서라도, 그 자리에 앉게 되신 누구라도 백성들을 팔아가며 그 자리에 가신 분들이니 부디 ‘그놈이 그놈’이 되지 않아주기를 기도해본다. 자리는 앉는다고 모두가 그 자리에 적합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다. 그저 매일같이 몸과 마음으로 중노동하며 살아가고 있는 힘없는 백성으로 원하건대, 정신세계가 알차게 채워진 ‘분’들로, 진정으로 백성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과연 그 분’들이 자리에 앉아주시기를 바랄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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