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쓰는 인생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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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에 쓰는 인생론
  • 이원기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04.21 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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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을 유난히 타는 사람들이 있다. 호르몬 관계인지, 체질 때문인지, 대자연의 섭리가 만들어내는 환경 탓인지는 모르겠으나 봄을 타는 증상도 가지가지다.
식욕에 왕성해지는 것은 평범한 증상이요, 그 반대로 입맛이 통 없다거나 밤잠을 못 이루는 따위도 크게 탓할 병통은 못된다. 터놓고 밝히기가 심히 부끄러운 여러 증상을 일일이 거론치 못하겠으나, 무슨 얘기를 하려는지 성인들은 다들 아실 터이니 넘어가기로 하겠다. “쯧쯧! 헛나이 먹었지!” 그래서 마음을 다스려볼 양으로 명나라 원요범(袁了凡)의 ‘음질록’을 펼쳐든다. 임진왜란 때 이예송 장군 휘하의 군인으로 조선에 파병돼 함흥에서 가등청정군과도 싸워서 이긴 바 있다는 원요범의 본명은 원표이다. 그의 가문은 강남의 호족이었으나 영락제에게 탄압을 받아 가산을 잃고나자, ‘관리는 되지 말고 의원이나 되라’는 가훈에 따라 의사집안으로 내려왔다. 그런 가문의 후손인 원요범이 어찌해 ‘음질록’이란 책을 쓰게 된 것인가? ‘음질’은 서경(書經) 홍범(洪範)편에 나오는 말로 “하늘이 아무도 모르게 사람의 행하는 것을 보고 화와 복을 내린다”는 뜻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제목만 봐도 어떤 내용의 책인지 얼핏 짚이는 데가 있을 법하다. 그가 정통 수신서도 아니요, 자서전도 아닌, 이런 책을 쓰게 된 까닭이 재미있다.
그는 가훈에 따라 당연히 의사가 되려 했으나 자은사라는 절에서 운남사람 공(孔)씨 노인을 만나면서 그의 운명이 한 번 크게 출렁인다. 송나라의 성리학자 소강절의 역작 <황극경세서>에 통달해 주역을 깊이 공부한 공씨 노인의 가르침에 따라 그는 과거시험을 치르고 급제한다. 그 일을 비롯해 모든 운명이 공씨 노인의 말대로 척척 맞아떨어지니 그는 운명론자가 되고 만다. 그러다가 북경 서하산에서 운곡선사를 만나 그의 삶은 다시 한 번 크게 요동친다. ‘자신의 운명은 스스로 만드는 것이고 자신의 복도 자기가 구하는 것이다’라는 가르침을 받으며 운명론자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오직 보통사람(못난 인간들)에게만 운명이 결정돼 있는 것이지. 진정 용기 있고, 담대한 사람들은 스스로 자신이 원하는 길을 헤쳐나가면서 운명을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가르침이다. 여기서 큰 깨달음을 얻은 그는 착한 일 3000가지를 실천하고, 뒤이어 착한일 1만 가지를 하기로 목표를 세운다. 그러나 목표달성이 쉽지 않자, 꿈에서까지 신인(神人)을 만나 도움을 받는데, 그 처방이 또한 놀랍다. 당시 지방장관이었던 그에게 수많은 농민들의 세금을 줄여줌으로써 한꺼번에 많은 선업을 쌓도록 일러준 것이다. 그러한 선행 덕분인지 그는 53세까지 살 것이라는 공씨 노인의 예언과 달리 74세까지, 당시로는 엄청 긴 세월을 살다 간다.
사람으로 태어나 착한 일만을 찾아다니며 살기란 지극히 어려운 일이겠으나, 악한 일을 피해가며 살아가기도 쉬운 일은 아닐 터이다. 때문에 옛날의 식자층은 일 년을 단위로 한 해를 시작할 때, 선업을 많이 쌓고 악업을 피하고자 다짐하며, 연말이면 그날그날 적어 두었던 자신의 선악의 실상을 정리하면서 자성과 근신의 지표로 삼곤 했다. 
지난 번 4.13 총선에서 당선된 선량들께 축하를 드리고 싶다. 모쪼록 멸사봉공 하시기를 빌 뿐이다. 헌데 마음 한편으로는 그 분들 가운데 선업보다 악업의 무게가 더 나가면 어쩌나 하는 일말의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국민 대다수의 간절한 바람일 것이다. 바다 건너 일본에서는 진도 7.0의 강진으로 평화롭던 도시가 쑥대밭이 됐고, 태평양 저 멀리 에콰도르에도 더 심한 지진으로 많은 인명이 희생됐다는데…그 뿐인가? 태풍에 맞먹는 돌풍으로 전국 여기저기서 막대한 타격을 입은 사람들이 속출하는데도 저 비바람에 꽃이 다 지면 어쩌지? 하고 감상에 젖어 있다면 선업을 쌓자고 마음 먹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이런 자탄을 하면서도 입속으로는 조선시대 아동용 교재였던 ‘추구(推句)’에 실린 오언(五言) 대구(對句)를 읊조리고 있는 내 자신을 본다.
花落憐不掃(화락연불소) - 꽃이 떨어지니 사랑스러워 쓸지 못하고 月明愛無眠(월명애무면) - 달이 밝으니 아까워 잠을 이루지 못하네. 봄은 봄이다! 나는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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