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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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운 목소리
  • 권기복 <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 승인 2016.05.04 1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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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권기복 씨?”
“예. 그런데요.”
“난, 초등학교 5학년 때 전학 간 ○○○인데….”
“아, 우체국장님 아들!”
“그래, 맞아! 나 알아보겠어?”
“그럼, 당연하지. 친구가 전학가고 나서 내가 한참동안 방황했었는데….”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전화를 걸어 온 친구가 전학가기 전까지 4명은 항상 어울려 다녔다. 그 중에는 새총으로 새를 기가 막히게 잘 잡던 의사 아들과 우체국장 아들, 농사는 짓지만 보훈가족으로 대우받던 애와 함께 절친이었다. 그들은 시골 면소재지에서 잘 나간다는 부유한 생활을 하던 아이들이었다. 반면  나는 그 중에서 가장 행색이 꾀죄죄하고, 집도 학교와 거리가 먼 산골 마을에 사는 촌뜨기였다. 성적이 좀 괜찮았다는 것을 빼면, 정말 아무 것도 내놓을 것이 없었다. 친구는 전화를 끊을 생각이 없었다. 잠시 동안의 서먹함이 풀리자마자 평소에 자주 만난 친구에게 전화하듯이 줄줄이 말문을 열었다. 처음 10여 분 동안은 도로 가에 차를 잠시 정차하고 통화를 했다. 그런데 통화가 길어지자, 엔진을 아예 껐다. 다음 카페에서 초등 모임을 보고, 내 이름을 발견하였다는 것이다. 우연히 의사 아들을 한 번 만나게 되었는데, 내 연락처를 알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혹시나 몰라볼까봐 가슴 졸여가며 전화했노라고 하였다. 그는 나의 사생활과 자기가 알고 있었던 친구들의 근황을 묻느냐고 열중했다. 20여 분이 지난 후에 나는 매듭을 짓기 위해 마무리 인사치레를 하였다. 그 친구는 아쉬움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작별 인사를 하였다. 저마다 많은 동창 모임을 갖고 있겠지만, 작년까지는 필자의 고향 지역 동창 모임으로 중학교만 구성되어 있었다. 중학교 동창 모임은 30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초등 모임은 없었다. 그러다보니, 초등학교만 인연을 갖고 있던 몇몇 친구들이 초등 동창 모임도 구성하자는 제안을 하였다. 그 제안들이 대부분 필자에게 부탁하는 것들이었다. 그리하여 작년 봄에 함께 뜻을 같이 하는 몇몇 친구들과 만나 1년에 2회씩 모임을 갖기로 하였다. 그러나 홍보도 잘 안 되고, 단단한 중학교 동창 모임이 있는데 초등 동창 모임이 뭐 필요하겠느냐는 반대 의사를 보이는 친구들도 있어서 가을 모임도 15명 정도의 만남에 불과하였다.초대 회장이라는 반갑지 않은 총대를 멘 필자로서는 이왕 모임을 갖으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는 의식을 가지고, 올 봄 모임은 홍성에서 1박 2일로 하겠다고 선언했다. 그 비용은 일체 필자가 부담하기로 하였다. 그 모임이 지난 주말에 있었다. 이번에는 35명이 모였고, 정말 40여 년 만에 보는 친구들이 10여 명이 넘었다. 그 때만 하여도 중학교를 가지 못한 친구들이 꼭 3분의 1이 되었다. 자그마한 면소재지였기 때문에 2개의 초등학교 졸업생들 중에서 중학교에 들어갔는데, 우리 초등이 180명, 다른 초등이 120명이 넘는 졸업생 중에 201명만 중학교에 입학했었다. 필자는 주머니 사정이 상당히 곤궁해졌지만, 친구들은 홍성에서의 1박 2일을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거라 하였다. 특히 궁리와 속동 전망대에서 홍성 바다와 함께 한 시간들은 추억의 경관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 하였다. 그 친구들이 저마다 홍성에서의 만남을 각자 자신의 메일과 카페, 밴드나 카톡으로 함께 지낸 내용과 사진을 올렸다. 그러자마자 까맣게 잊고 지냈던 친구들이 한두 명씩 연락을 취하고 있다. 그동안 살아가기에 바빠서 자신의 등처럼 잊고 살았던 그리운 추억들이 고향 친구들의 목소리와 함께 되살아나고 있다. 50대 중반을 넘어 서는 그들이기에 가정과 일터라는 무게감이 상당히 줄어든 만큼 소용성도 줄어드는 시점이다. 그동안은 자식과 남편, 직장 동료들만이 친구이자 말벗인 줄만 알고 살았다고 한다. 그런데 애들은 커서 가정을 떠나고 직장도 놓을 때가 되니, 옛적 고향과 고향 친구들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보고 싶어지더라는 것이다. 전화로 듣게 되는 그리운 목소리에서 추억은 빛바랜 꽃처럼 퇴색되어 있지만, 그들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은 5월 초 화단에 핀 철쭉처럼 화려하게 설레이고 있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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