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시아 꽃향기와 공상(空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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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시아 꽃향기와 공상(空想)
  • 김상구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6.05.12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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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연휴 산에 올랐다. 5월의 산속에는 아카시아 나무를 비롯해, 노린재 나무, 층층나무, 조팝나무의 흰 꽃들이 저마다 화사함을 뽐내고 있다. 아카시아 꽃 아래에는 애기똥풀 꽃이 노란 얼굴을 내밀고 있다. 더 숲속을 헤치고 들어가자 하얀 산딸기 꽃이 꿀벌을 맞이하여 힘에 겨운 듯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다. 여름이면 산딸기 꽃들은 벌들과 합작으로 붉은 열매를 마술사처럼 내놓을 것이다. 이름 모를 새들은 집 지을 터를 찾는지 산딸기 넝쿨 주변에서 마냥 부산하기만 하다. 고목나무에 매달려 보금자리를 준비하는 딱따구리 소리는 스님의 목탁소리를 닮았다. 오월의 숲속은 싱그러우면서도 새 생명을 잉태할 준비로 분주하다. 멀리서 숲을 바라볼 때 늘 비슷한 모습이었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새 생명이 탄생하고, 생을 마감한 생명체는 다시 태어날 생명의 에너지로 환원되고 있었다.

아카시아 꽃을 바라보자 그 곳에는 벌들이 바삐 드나들고 있었다. 잠시 피는 꽃에서 꿀을 얻어 내야 겨우내 벌들은 생명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 우리의 삶을 외계에서 바라본다면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바쁜 날개 짓을 해야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꿀벌과는 달리 사람은 휴식이 필요하다. 사람들에게 휴식은 더 좋은 벌꿀을 많이 얻을 수 있는 에너지를 충전할 수 있게 해주기 때문이다.
정상을 향하던 발길을 멈추고 잠시 상념(想念)에 젖어 본다. 꿀벌들은 이 꽃 저 꽃을 열심히 돌아다니며 벌꿀을 모아오지만 양봉업자들은 이들에게 설탕물을 주고 꿀을 빼앗아 갈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 노동의 대가를 양봉업자처럼 누군가가 중간에서 착취해 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사람들은 사유재산과 생명과 자유를 빼앗기는 것이 두려워 국가를 만들었다고 존 로크는 ‘통치론’ 에서 주장했다. 인간들끼리,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을 할지 모른다는 생각에서 홉스도 ‘리바이어던’을 썼다. 국가의 운영은 왕이 아니라 시민들이 낸 세금으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운영을 맡은 사람들이 제대로 국가를 운영하지 못한다면 한시라도 갈아치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그러나 국가를 관리하는 사람들과는 또 다른 양봉업자 같은 세력이 나타나 노동자들의 노동력을 과잉으로 착취해 가고 있다고 생각한 사람이 마르크스다. 이런 자본가들에게 대항하려는 마르크스의 생각을 러시아 혁명을 통해 실험 해 보았지만 실패로 돌아갔다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마르크스를 이제 죽은 개 취급을 한다. 함께 일하고 함께 잘 살 수 있는 세상이 공산주의라고 그는 말했지만 그런 세상은 동구권의 실험에서 이미 실패했다고 여기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공산주의가 구소련, 북한 그리고 쿠바 정권과 같은 모습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 자신도 공산주의를 이상적으로만 그려보았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그가 말한 그 세계에서 분명한 것은 양봉업자처럼 꿀을 채취하지 않은 자가 꿀을 많이 가져가게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자본주의의 문제점은 노동자가 열심히 노동할수록 노동자의 삶은 피곤해진다는 것이다. 중간에서 일하지 않고 먹고 노는 계층을 먹여 살려야하기 때문이다. 힘센 자, 권력을 가진 자, 자산을 가진 자들이 일하지 않고 그 힘으로 꿀을 빼앗아 간다는 것이다. 마르크스가 보기에 이런 상황에서 벗어나는 길은 노예출신 스파르타쿠스처럼 주인에게 애원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노예의 멍에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2011년 가을, 뉴욕에서 1%의 양봉업자들이 99%의 꿀벌들의 꿀을 빼앗아가고 있다고 잠시 반란이 있었지만 곧 진정되었다. 마르크스가 존경한 스파르타쿠스처럼 스스로 자신의 멍에를 푼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이것은 보여준다. 마르크스는 “하나의 유령(공산주의라는 유령)이 유럽을 떠돌고 있다”라고 시작하면서, “프롤레타리아여 단결하라!”고 ‘공산당 선언’을 썼지만, 일만 할 수밖에 없는 그들에게 그 말은 공허한 소리였다.

슬라보예 지젝은 1%가 99%를 지배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시스템의 문제이니 “사유하라”고 외친다. 몇 번이고 해운, 조선에 국민의 세금을 수조원식 쏟아 부어도 부도사태는 반복되고, 가진 자들의 갑질이 여전한 것도 시스템의 문제라는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반복되지 않을까…? 연휴에, 아카시아 꽃 아래에서 잠시 공상(空想)에 젖어본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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