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초(금초)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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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금초) 가는 길
  • 권기복<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 승인 2016.09.02 19: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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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벌써 6시야! 6시 반에 산소에서 모이기로 했는데…” “비 오는 데, 왜 그렇게 빨리 약속했어요?” “아직은 덥잖아. 큰 애 빨리 깨워요.” 부랴부랴 고양이 세수만 하고, 집에서 출발하였다. 전날 늦게까지 친구들과 어울린 아들은 선잠을 깬 탓에 차 안에서도 코를 골며 자고 있었다. 산소까지는 1시간이 조금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새벽인데다가 시골길이라서 도로를 지나가는 차는 많지 않았다. 산자락을 지나칠 때마다 곳곳에서 예초기 돌리는 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늦어서 산소에 도착했다. 큰 매제와 셋째 매제 내외가 먼저 와서 작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뒤늦은 죄책감에 더 부지런을 피웠다. 오전 10시가 되자 일이 마무리 됐다. 각종 풀과 아카시아 뿌리가 뻗쳐서 지저분하던 산소가 깔끔해졌다. 산소 주변으로 뻗어 자란 나뭇가지들도 전지를 해주고 나니, 잔디가 기쁨의 환호성을 지르는 것 같았다. “형님! 10월 말 쯤에 날 잡아서 산소 주변 잡목들을 쳐 내기로 하죠. 산소 자리 잔디가 예전보다 많이 상했어요.” “그렇게 하지.”

처가의 산소까지 항상 관심을 갖고 살피는 큰 매제의 마음씀씀이에 그저 감사할 뿐이었다. 산소 자리를 정한 뒤부터 지금까지 지난 20년간 한 번도 안 빠지고 벌초를 함께 했었다. 아들까지 대동하여 자동차로 2시간이 넘는 거리를 새벽 일찍 와서 함께 해 준 것이었다. 벌초는 추석 때 대표적으로 행하는 미풍양속이다. 우리 조상님들은 틈틈이 산소를 보살폈는데, 오늘날에는 고향을 떠나 세계인으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산소를 보살피는 일이 어렵게 됐다. 그러다보니, 수많은 산소들이 잡초로 뒤덮이는 흉물이 되어가고 있다. 산소뿐인가! 점점 공동화되고 있는 시골의 산 다랑이 밭들도 칡넝쿨로 얽히고설킨 채 수풀을 이루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까지는 추석 명절을 앞두고 벌초를 하면서 산소 가꾸는 풍경이 대수롭지 않게 보이고 있다.

현재 50대 이하인 사람들에게 벌초에 대하여 물으면, 거의 대부분이 “우리 때까지는 한다. 그러나 자식들에게 시키는 것은 안 하고 싶다”는 답변이다. 살아계신 부모님을 공양하는 일이나 돌아가신 부모님을 모시는 것 까지 “우리 대가 마지막이다”는 생각을 공유하고 있다. 50대인 필자도 별반 차이가 없다. 예전에는 화장에 대한 거부감으로 미리감치 아버지 자리 밑에 가매장(假埋葬) 자리까지 만들어 놓았지만, 이제와 생각하니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2015년 매장을 원하는 사람은 불과 12.6%였다. 이 수치는 아마 60대 이상에서 나온 수치일 것이다. 화장 후 봉안이나 자연장이 85.2%로 어느덧 화장이 대세가 되었다. 이는 50대 이하로 보면 거의 100%에 해당할 것이다. 매장 문화가 대자연을 훼손한다는 측면도 크지만, 신 이동생활을 해야 하는 젊은 세대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까닭일 것이다. 후손들에게 부담을 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제 화장 문화는 자연스럽게 정착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걱정되는 면도 있다. 지금까지는 조상님들의 산소를 찾는다든가 하는 이유로 그나마 도시 사람들도 시골을 찾았지만, 성묘 문화까지 사라진다면 어떨까? 현재 우리나라의 80% 이상이 도시에 살고 있다. 그 중에 상당수는 시골을 전혀 모른 채 살아갈 것이다. 도시와 시골의 가교 역할을 해주었던 성묘 문화, 어찌 생각하면 시골을 살리는 하나의 방편이 되었었는지 모를 일이다. “아빠! 저 어릴 때에는 앞산(안산)이 멀었었는데, 지금은 바로 코앞에 있는 것 같아요.” ‘그건 네가 성장한 만큼 세상이 작게 보여서 그렇단다’ 라고 답해 주려다가 그만뒀다. 그 이유 때문 만일까? 산자락이 밭을 가로질러 더 내려온 이유도 충분히 된다. 시골에서 농사를 지어봤자, 당일 품삯도 안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늙은 노인들만 남은 상태에서 산 다랑이 밭까지 경작하기에 부담되기 때문에 산자락으로 되돌린 경우도 많지 않던가! 비록 후손들에게 보상받을 길은 없겠지만, 형제들과 아들 및 조카들과 함께 공동 작업을 통해 공감대를 형성하면서 유대관계를 갖는다는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보상받는 결과가 되었으리라 본다.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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