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시린 11월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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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슴 시린 11월을 보내며
  • 권기복<시인·홍주중 교사·칼럼위원>
  • 승인 2016.12.01 01: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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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말에 터진 ‘최순실 게이트’는 우리나라를 뿌리까지 흔들어 놓고 있다. 분노한 국민들은 단 둘만 모여도 울분의 목소리를 내고 있고, 휴일마다 백만 인파가 대통령 ‘퇴진’이나 ‘하야’를 요구하면서 촛불집회에 참여하고 있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도 검찰의 발표까지 불복하면서 대통령 자리를 붙들고 있으려 하는 모습이 참으로 애처롭기만 하다. 집회에 참여한 한 시위자가 ‘이게 무슨 나라냐?’라고 양손을 곧게 든 펼침막 문구를 보는 순간, 나도 모르게 시야가 흐려졌다. 어쩌다가, 정말 어쩌다가 나라꼴이 요 모양이 되었단 말인가! 11월도 하순으로 접어들었지만, 아직까지 날씨는 예년에 비해 훨씬 온화하기만 한데 왜 이리도 가슴이 시리고 등짝이 얼어붙는 지. 그저 절망의 나락에 빠져드는 기분일 뿐이다. ‘민주주의는 어느 정도 시련과 굴곡의 언덕을 넘어 가면 대평원처럼 펼쳐질 것이다’라고 신념으로 삼고 살아온 필자에게 가차 없이 의문을 던져주고 있다.

필자부터 기성인으로서 아직까지 이런 사회모습을 청소년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 부끄러울 뿐이다. 잘못한 일보다도 재빨리 반성하고 책임 있는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는 모양이 더욱 부끄럽다. 입만 열면 거짓말로 당장 눈앞의 위기만 넘기려는 수작이 더더욱 부끄럽다. “너희들은 어리니까 정직하고, 배려하며 살아라. 우리는 어른이니까 거짓말하고, 남 등쳐먹으면서 살게. 너희들도 억울하면, 빨리 어른이 되렴” 하는 것 같아서 참으로 부끄럽다.

민주주의 사회의 권위는 명예이다. 명예가 꺾인 사람은 이미 권위를 상실한 사람이다. 온 국민이 대통령의 처신에 대하여 단 한 가지도 명예롭게 생각하지 않는데, 본인 스스로 그 자리에 연연하여 어찌할 것인가? 온 국민이 분노하고 절망에 치를 떨고 있는데 검찰의 발표를 부정하며, 언제까지 증거 타령만 하고 인격 살인 운운하고 있을 것인가? JP의 말대로 대한민국 국민 100만 명이 시위하면, 나머지 4900만 명의 국민들은 당신 편이라서 시위에 참여하지 않은 줄로 아는 것은 아닌가? ‘금품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일명 김영란법)’이 발효된 지 채 한 달도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법리를 따지고 있는 모습이 우스울 뿐이다. 전국의 모든 공무원들에게 ‘직무와 관련되어 어떤 기부금을 받아서는 안 되며,  공식적으로는 3만 원 이상 식사대접을 받거나 5만 원 이상 선물을 받아서 안 되지만, 단 돈 천 원짜리 음료수를 얻어먹어도 안 된다’라고 지도한 사람이 누구인가? 그런 당신은 수백억 원씩 기부금을 모아도 괜찮은 일인가?

그런 일이 다 국가를 위해서인가? 말 그대로 우리나라의 문화와 체육의 진흥을 위해서 라고 하자. 그럼, 그만한 예산 요구를 국회에 제출하고, 대통령으로서 호소를 해서라도 확보된 예산으로 집행하여야 할 일이 아닌가? 이를 기업으로부터 요구한다면, 기업은 그 요구에 맞춰 비자금을 형성하게 되고, 그 불법적 행위는 누가 종용한 것이며, 그 피해는 곧 누구에게 가는가? 과연 국민들에게 피해를 끼치는 것이 국가를 위한 일이란 말인가? 혹여 소수의 국민에게 피해를 끼치더라도 국가 전체에 이익이 된다면 불법이든지, 부정이든지 서슴지 않겠다는 소신으로 정치를 하는 것은 아닌가?

더 이상 거짓말로 진상을 감추려 하지 말고, 더 이상 자리에 연연하여 불명예를 고수하려 하지 말고 진실 된 참회의 모습을 보여주기를 모든 국민들이 바라고 있다. 특히 함께 얼굴을 들을 수 없는 기성세대들은 타는 목마름으로 기다리고 있다. 이제 더 이상 여고생 손에 ‘이게 무슨 나라냐?’ 라는 펼침막이 들리게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다음 집회 때에는 ‘너희들이 무슨 어른이냐?’ 라는 문구가 나올까 두려울 뿐이다.
세월호 사건 때처럼 제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으라는 말에 따른 학생들은 다 죽고, 그 말을 따르지 않은 사람들이나 살 수 있었던 부끄러움을 되새겨 보자. 언제까지나 기성세대들에 대한 불신의 장벽을 쌓아 올리게 부정부패한 벽돌을 얹어놓을 것인가! 2016년 남은 날들을 우리 5천만 국민 모두 가슴 시린 한 해로 종지부를 찍게 해서는 안 될 일이 아닌가!

<이 보도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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