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전대제, 왜 지내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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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대제, 왜 지내는가?
  • 이현조 주민기자
  • 승인 2017.03.02 1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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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전대제(釋奠大祭)란 공자를 비롯한 선성선사(先聖先師)께 생폐(牲幣)와 합악(合樂)과 헌수(獻酬)로 문묘에서 지내는 제사의식을 말한다. 석전의 뜻을 풀이해 보면 석(釋)은 ‘놓다〔舍〕’, ‘두다(置)’는 의미로 ‘베풀다’, ‘차려 놓다.’ 라는 뜻이며 전(奠)은 빚은 지 오래된 술을 얹어 두는 받침대의 모습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석전이란 ‘정성스레 빚은 술을 받들어 올린다’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석전대제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372)에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석전대제의 제의가 제도적으로 확립되어 국가적 대사로 봉행된 것은 조선시대에 이르러서이다. 공기(孔紀) 2541년(1990) 추기 석전부터는 천자국(天子國)의 학교인 벽옹의 위치에서 대제를 봉행해 독립국가로써의 위상을 세웠다. 또한 세계적으로 유일하게 그 원형이 거의 완벽하게 보존되고 있다. 석전대제는 매년 봄(음력 2월)과 가을(음력 8월) 상정일(上丁日)에 성균관 대성전(大成殿)에서 공부자(孔夫子)를 비롯한 4성(四聖)과 공자의 10대 제자를 뜻하는 공문 10철(孔門十哲), 송조 6현(宋朝六賢), 우리나라의 뛰어난 인물인 동방 18현에게 제향(祭享)을 드리고 있다. 지방의 234개 향교(鄕校)에서도 공부자(孔夫子)를 비롯한 4성(四聖)과 송조 4현(宋朝六賢), 우리나라의 뛰어난 인물 18현에게 같은 날 정해진 절차에 따라 석전대제를 봉행하고 있다.

현재 지방의 향교에서 진행되는 석전대제는 대부분 성균관의 석전대제에서 합악(合樂)이 빠진 규모로 봉행된다. 따라서 지방의 석전대제는 대제가 아니라 중사(中祀)이다. 그러므로 석전대제가 아닌 석전제라고 해야 옳다. 그러나 명칭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오늘날 우리가 왜 석전제를 지내야 하는가?’하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유학이 곧 국학이었으니 유학자를 숭상하고, 유생(儒生)들이 석전제를 지내는 것이 당연하겠으나, 단순히 전통문화라는 틀 속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오늘날의 석전제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것이다. 공자께서도 ‘본뜻은 망각하고 형식에만 치우치는 것을 경계하라’ 하셨다. 형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는 것이나 ‘왜 해야 하는지’ 그 본뜻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우리 옛말에도 남의 제사에 감 놔라 배 놔라 하지 말라는 말도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겠다.

문묘에 배향된 인물들은 한 시대에 학문을 크게 이루고, 세상에 두루 영향을 미친 분들이다. 다시 말해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정신적 지주가 되는 분들이시다. 마땅히 숭상하고 그 뜻을 이어받아 발전시켜야 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서구문물이 전파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는 서구문화에 중심 가치를 두고 달려왔다. 서구문화를 폄하하고, 무조건 우리문화가 최고라는 것이 아니다. 우리 것을 먼저, 제대로, 알고 서구문화를 수용하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것이다. 후손에게 물려줄 것이 서구문화 밖에 없다면 난감한 일 아닌가! 더 늦기 전에 관심을 갖고, 하나씩 알아 가면 어떨까? 오늘 우리 것을 알면 후손에게 물려줄 문화유산이 된다.

이현조<문화in장꾼·시인·주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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