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에게도 엄마만의 미디어가 필요해
상태바
엄마에게도 엄마만의 미디어가 필요해
  • 정수연 주민기자
  • 승인 2017.03.10 10: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좋아하는 학자선생님이 하신 말씀 중에 ‘입장의 동일함’이란 개념이 있다. 그 학자는 관계의 최고 형태가 바로 “입장의 동일함”이라 하였다. 이 말의 뜻을 결혼하고 나서 아이를 키우면서 새삼 머리 아닌 마음으로 되새기고 있다. 한 아이를 26개월 동안 기르면서 그동안 지내왔던 수많은 관계와의 단절을 경험했다.

특히 결혼 전 자주 만나고 또는 매일 같이 생활하며 생각과 감정을 교류했던 친구들과 옛 직장동료들은 나도 모르게 연락하기 어색할 정도로 돼버렸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하루 종일 이야기 하는 사람은 말 못하는 아이와 퇴근해 돌아오는 남편뿐인 생활을 하면서 ‘친구’를 자연스럽게 잊어버린 날들을 살고 있었다. 내가 이 입장이 되어보니 지난 날 먼저 결혼한 친구들과 동료들에게 좀 더 따뜻하게 먼저 연락했으면 좋았을 걸 후회로 남는다.

엄마로 사는 혹은 살아내야 하는 삶은 좋아했던 미디어의 선택도 변하게 했다. 그래도 짬짬이 소설책을 읽고 독립영화를 찾아보던 결혼 전 나는 사라지고, 각종 만화 캐릭터와 노래들 그리고 육아관련 서적이나 방송만을 뒤적이고 찾아보게 됐다. 그러면서 내내 무언가가 허전함이 따라왔다. 전시회는커녕 쉽게 영화관에 가서 영화 한 편 보기 어려운 시간들이 나만 그런 것도 아닐 터인데 답답했다.

소위 어른들이 하는 “애가 뱃속에 있을 때 편한거다”란 말도 이제는 정말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나온 시간은 할 수 없다 치자(사실 다시 돌아간다 해도 그 이상 나아질 것 같진 않다). 아이가 어린이집에 다니기 시작한 요즘 다시 나는 내가 좋아했던 미디어를 공유할 수 있는 꺼리를 찾고 만들고 있다. 엄마들이 가장 쉽게 그리고 많이 소통하는 미디어인 인터넷 카페에서 모집하는 ‘책모임’도 두드리고 있고, 지역의 공익활동지역센터에서 함께하는 다큐보기 모임도 나가볼까 싶다.

언젠가 인터넷 카페에 이런 나의 소회를 남긴 적이 있다. 생각보다 많은 엄마들이 나와 같은 마음과 생각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한 마음과 생각을 풀어낼 수 있는 실질적인 행정의 지원을 원하고 있었다. 나 역시 같은 마음이다. 많은 행정기관 또는 사회복지기관에서 진행되는 평생학습이나 문화강좌들이 엄마들이 참여하기엔 제약이 많다. 특히 아이와 함께 해야 하는 엄마들에게는 그냥 보기 좋은 떡일 뿐이다.

엄마가 다양한 자신만의 생각과 감정을 펼칠 동안 아이를 돌봐주는 보육시스템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곧 다문화가족지원센터에서 운영하는 공동육아나눔터가 다양한 활동을 한다고 한다. 이곳에서도 마찬가지로 아이를 위한 프로그램 말고 엄마들이 소통하고 나눌 수 있는 다양한 미디어, 꺼리가 생기길 바란다.

정수연<미디어활동가·주민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