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춤을 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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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의 춤을 추어라
  • 이은희 주민기자
  • 승인 2017.03.20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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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방송사에서 제 이야기를 촬영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아주 개인적인 모습까지 오픈한다는 것이 부담이 됐지만, 휠체어를 타고 사는 삶을 보여주는 것도 장애를 이해할 수 있는 하나의 계기가 될 것 같아 촬영을 시작했습니다. 촬영을 하면서 지난 이야기를 들려 줘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로 인해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도 했지요.

대학을 다니던 중 스물둘에 사고로 휠체어를 타면서 동네 어르신들께 제일 많이 들었던 이야기는 “꽃이 피기도 전에 꺾여 안타깝네”였어요. 갑작스런 사고로 스물두살 휠체어를 타고 살게 됐으니 당사자인 저만큼 주위분들의 염려도 많았어요. 그래도 여전히 어르신들께 인사는 열심히 잘하고 지냈습니다. 어릴적부터 동네에서 인사 잘하기로 칭찬을 많이 받았던 꼬마였습니다. 인사를 하면 건네주시던 동네어른들의 환한 칭찬이 기뻤습니다.

긴 병원생활에 간호를 해주던 친언니에게 짜증을 내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는 늘 웃으며 밝은척 하고 지낸 시간도 떠오릅니다. 일년이 넘었던 병원생활은 얼마나 무료하고 지루했는지 또 일년동안 주사바늘은 얼마나 많이 꽂았는지. 아직도 뾰족한 바늘만 봐도 온몸이 경직이 됩니다. 그래도 열 번의 대수술을 하면서 수술실에 들어갈 때마다 상큼한 손가락 브이를 하며 들어갔어요. 수술실에 들어가면서 까지 표정관리라니! 그러고 보니 늘 타인 앞에 설 때는 꼭 웃는 얼굴로 있어야만 할 것 같은 강박이 있었었던 것 같습니다.

‘난 아무렇지 않아요. 괜찮아요, 어떤상황에 있던 잘 지낸다구요.’ 장애를 갖게 됐지만 잘 살고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나 봅니다. 셋째언니는 내게 “넌 사막에 내놓아도 살 아이야” 그랬죠.
언제나 무엇이든 잘하고 있다는 완벽함으로 사람들에게 지지를 받고 싶은 욕심에 매순간 감정을 위장했던 것에 언니마저 속았나 봅니다. 어렸을 적부터 남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지나쳤어요. 돌아보니 그렇습니다. 그래서 내자신은 온전히 없고 타인의 시선과 평가에 따라 살았는지도 모릅니다.

엄마의 아빠의 사랑에 목말랐던 딸 부잣집 넷째딸. 늘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 뭐든 잘하던 모범생. 잘 크나 싶었지만 늘 헛헛한 마음이 한켠에 자리했지요. 그래서 마흔 훌쩍넘은 나이에도 생일 때마다 엄마의 미역국을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불혹이 지나며 이제야 조금씩 욕심을 내려 놓습니다. 내 모습을 인정하며 내 감정에 충실해지고 싶습니다. 그래서 더 고요해지고 깊어지고 싶습니다.

박노해의 시처럼 나만의 리듬에 맞춰 나의 춤을 추며 나의 길을 떠나야겠습니다. 타인의 시선과 잣대는 모른척 놔두고. 오늘은 함께 읽고 싶은 시를 소개합니다. 저처럼 헛헛한 마음이 가끔 인다면 더더욱 함께 읽기 좋은 시일 듯 합니다.

 




너의 춤을 추어라

                                                      박노해
 

언땅 아래선 씨앗들의 소곤거림
위대한 고요를 깨우는 새봄의 나직한 장단이여
풀꽃을 문 종달새가 3월 하늘로 솟구쳐 날듯
물오른 가지들이 새바람의 춤을 추듯
타고난 자기 장단으로 너의 춤을 추어라
나만의 리듬에 맞춰 너의 길을 걸어라



이은희<장애인창의문화예술연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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