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도식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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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도식 유머
  • 이원기 칼럼위원
  • 승인 2017.03.3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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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연잎 밥 정식이 다소 비싸기로서니 예까지 와서 안 먹고 갈 수야 있나? 불린 찹쌀에 밤 대추를 넣어 연 잎으로 싸서 쪄낸 연잎 밥은 반찬 없이 밥만 먹어도 찰지고 맛나다. 게다가 칠장주 라는 이름의 전통주까지 한 잔 곁들인다. 캬! 진시황의 영화가 이 위에 더 하랴?
바람조차 잔풍하고 하늘도 때를 맞춰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맑고 따사로운 기운이 넘쳐 난다. 아! 여기가 국보 제 9호 백제 5층 석탑이 서있는 정림사지인가? 깔끔하게 잘 정돈 된 드넓은 옛 절터를 둘러보노라니 마음 한 켠에 스산한 바람이 분다. 여러 해 전, 어느 늦가을에 황룡사 절터에서도 누렇게 이울어가는 잔디 위에 서서 넘어가는 저녁 해를 바라보며 뭔지 모를 쓸쓸함을 맛보았는데, 이제, 이 화창한 봄날에 또다시 우수에 젖을 줄이야! 참으로 알 수 없는게 사람의 심사인가보다.

아침결에 국립부여박물관의 국보 287호 백제금동대향로를 만났던 감동과 이른 점심 무렵 찾아간 궁남지 포룡정에서 뒷날, 백제 무왕이 된 서동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의 로맨스를 떠올리며 각각 단체기념 사진을 찍었듯이, 슬픈 역사의 증인이 된 백제탑 앞에서도 그 옛날의 비극은 뒤로 하고 다녀간 자취라도 남길 요량으로 단체사진을 찍으려는 찰라, 웬 중씰한 아저씨가 주춤주춤 나서며, 자기도 단체사진을 찍어서 가져가도 되겠느냐고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냈다. 실인즉, 그 곳 경비원 중 한분이시라, 그렇게 사진 기록을 남기는 것이 그분의 할 일인 모양이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 우리 학생들을 웃음 폭풍속으로 몰아넣었다. 학생들이 사진 찍을 자세도 잡기 전에 그야말로 전광석화로 그분이 자기 볼일은 다 봤다는 듯 태연히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는 순간, 여기저기서 학생들이 의아한듯 물었다.

“어, 아저씨!”, 그 순간 그분의 대꾸가 바로 어찌하여 개그맨 가운데 충청도 출신이 젤 많은지를 명료하게 보여주었다. “불 나는거 봤쥬?” 잠시 학생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자 그 아저씨는 자기 손 전화기를 가리키며 말했다. “방금 여기서 번쩍 했잖유!” 그 말에 우리 학생들은 자지러졌다. 바로 이것이 충청도 사람들의 언어적 특징이다. 말은 느려도 행동은 민첩하기 이를데 없다. 어찌하여 충청도인들이 말은 느리고 행동은 빠른가?

지정학적으로 살펴보면 해답이 나온다. 그 옛날 삼국시대 혹은 삼한시대 이래로 충청도는 각기 다른 세력과 정권의 접경지대였기에 하룻밤 사이에 백제 땅이 됐다가 신라 땅이 되고 나중에는 고구려 땅이 되곤 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 느닷없이 나타나 뭘 물어 볼 경우 일단, 섣부르게 대답하기 전에 상대방을 살필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지혜롭게 대처해야 자신과 가족을 지킬 수 있을 것이 아닌가? 유머는 여유에서 나온다. 그러다보니 위기속에서도 여유를 찾아 앞 뒤를 따져보고 말을 하더라도 같은 값이면 부드럽게, 재미있게, 웃으며 말하는 것이 상대방도 화내지 않고 응대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말을 길게 하다보면 자칫 책을 잡히거나 실수를 범할 수 있기에 되도록 짧게 표현한다. 가령 보신탕 먹을 줄 알아? 같은 것은 충청도 식으로는 “개 혀?” 한마디로, 대단히 화나는 일도 “그러면 쓰남!” 한마디로 함축한다.

작금의 국제 정세는 크게 볼 때 과거 삼국시대의 (국제)정세와 다를 게 없다. 이럴 때일수록 충청도식 여유와 꼭 필요한 말만 하고 상대방조차 부드럽게 감화시키는 마음가짐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점이 아닌가 한다. 그러노라면 빌 게이츠의 말마따나 변화(change)속에서 글자 한자만 바꾸면 기회(chance)도 올 것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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