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건립 역사적 과정과 건물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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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건립 역사적 과정과 건물구조
  • 모성학 풍수가
  • 승인 2017.06.10 0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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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와대 터는 고려시대 숙종 9년부터 궁궐터로 사용되기 시작하여, 처음에는 고려시대의 당시 수도이던 개경의 이궁(離宮)터로서 자리를 잡았다. 청와대 자리가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조선의 건국과 함께 수도를 옮기자는 논의가 본격화 되면서 부터였다. 태조 이성계는 재위 3년째인 1394년 새 수도건설을 위한 ‘신도궁궐조성도감(新都宮闕造成都監)’을 만들었다. 그리고 관리들을 보내 궁궐터를 물색하게 했는데 고려 숙종 때의 이궁 터는 협소해서 새로 궁궐을 짓기가 어렵기 때문에 좀 더 남쪽으로 이동해서 궁궐을 지어야 한다고 의견이 모아졌다. 즉 오늘날의 청와대 터에서 좀 더 내려간 평지에 왕궁을 짓기로 한 것이다.

태조는 그해 12월 정도전으로 하여금 궁궐을 짓는 일을 시작하도록 했다. 태조 4년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하여 9월에 궁을 완성하였다. 이것이 바로 ‘경복궁’이다. 태조 4년(1395) 정궁인 경복궁이 창건되면서 이궁 터를 궁궐의 후원으로 사용했다. 고종 5년(1868) 경복궁이 중건되면서 신무문 밖(현 청와대 지역)에 중일각, 오운각, 융무당, 춘안당 등의 건물이 지어졌고 과거장이나 관농장, 연무장으로 사용했다.

일제가 1910년부터 경복궁을 조선총독부 청사부지로 사용하기 시작하면서 이곳에 있던 융문당, 융무당을 철거해 공원화 했고, 조선총독의 관사부지로 구본관 자리를 선정해 1939년에 건평 약 586평의 건물을 완성했으며, 해방 후 1945년 미군정이 시작되면서 약 2년 3개월 동안 군정장관(하지장관)의 관저로 사용됐다.

1945년 해방과 더불어 군정장관 관저가 되고, 1948년 정부수립 후 대통령 관저로 ‘경무대’란 명칭이 붙었으며, 1960년 4·19혁명 후 윤보선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경무대에 대한 국민의 독재 이미지가 있다해 ‘청와대’로 개칭했다. 본관 건물이 청기와로 이어져 있는 데서 유래한 것이다. 그 후 박정희, 최규하, 전두환 전 대통령이 사용하였으며, 6공화국에 들어와서도 계속 사용해 왔다.

우리 민족이 일제로부터 독립한 지도 반세기가 지났으며, 그 동안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러내는 등 세계 각국에 대한민국이 널리 알려지고, 세계 10대 무역국가로 발돋움하면서 경제적 지위 또한 높아짐에 따라 노태우 대통령 시절 청와대 본관을 비롯한 주요 시설들의 신축, 건립에 착수했다. 지금의 청와대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대통령 등의 관저로 사용됐다. 지금도 대통령 관저는 이 청와대이다. 청와대는 행정구역상 서울 종로구 세종로 1번지에 속하며, 지리적으로는 서울시의 주산인 북악산과 북한산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고 시청, 종로, 을지로 등의 상업 업무지역의 북쪽에 위치한다.

청와대 일부는 예로부터 풍수지리상 길지중의 길지에 속한다고 알려져 왔다. 북으로는 북악산을 주산으로 좌청룡인 낙산(駱山), 우백호인 인왕산(仁旺山), 안산(案山)인 남산이 있으며, 명당수인 청계천이 북북서에서 통과해 동쪽으로 흘러가고 객수(客水)인 한강이 동에서 서로 흘러가는 매우 길한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상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청와대 터가 풍수지리상 길지가 아니라는 것은 이미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풍수지리가 터로 인한 인간사의 길흉화복을 다루는 학문이건만 청와대 터가 길지라면 그 곳에서 집무를 보고 있는 대통령이 수난을 당하지 않았을 것은 물론이고, 전쟁이나 일본침탈과 같은 국가적 재난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대통령 집무실 위치에 대한 풍수지리적 고찰은 다른 항목에서 좀 더 자세히 다루어 보도록 하겠다.지금까지 청와대의 역사적 사연을 알아보았지만, 왜 김영삼 대통령이 경복궁 안의 조선총독부 건물은 허물면서 총독 관저였던 청와대를 옮길 생각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의문이 떠오른다.

지난 12대 대통령선거 때 유력 후보 중 한 명이었던 어느 후보가 대통령 집무실을 시내로 옮기겠다고 했다가 유야무야 없었던 일로 했던 일이 생각난다. 그 후보가 말한 것처럼 대통령 집무실을 국민들의 생활공간 속으로 옮긴다면 국민들이 차를 타고 지나가다가 '우리 대통령

이 저 건물에서 일하고 있겠지!'하는 생각만으로도 대통령과 국민 사이는 훨씬 가까워질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청와대 건물구조

지난 2015년 10월 말 여야 의원들은 현재 비실용적인 청와대 건물구조를 재배치하기 위한 예산을 주겠다고 하였으나, 청와대에서는 업무에 문제가 없고 국민들이 그런 예산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또한 청와대는 향후 1년간 내부적으로 검토해 보고, 2017년도 예산안 심사 때 논의해 보자는 입장이라고 한다. 청와대로서는 임기 중 대규모 공사에 따른 업무 불편, 대통령 경호 체계를 바꿔야 하는 번거로움 등이 따를 수 있다.

그러나 왠지 궁색한 변명처럼 들린다. 가뜩이나 불통하는 대통령이라는 소리를 듣는데 재배치 예산을 받아드리면 그 동안 소통이 잘 안 됐다는 걸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청와대 건물구조가 도대체 어떻게 되었으면 여야 의원들이 한 목소리로 청하지도 않은 건물 재배치 예산을 선심 쓰듯 주겠다고 하였는가?

우선 대통령 집무실이 있는 본관(本館)과 참모들이 사용하는 위민관(爲民館:비서동) 사이의 거리가 500m나 떨어져 있어 보고하러 가는 데에만 걸어서 15분이나 걸린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근무해 본 어느 인사는 참모가 자기 사무실에서 대통령 집무실 안으로 들어가는데 걸리는 시간을 따지면 족히 20분은 걸린다고 한다. 비서동에서 본관으로 한 번 가려면 관문 2개와 경비 초소를 통과해야 하고 검색대 통과 절차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청와대 안에 또 다른 청와대가 있는 것이다. 촌각을 다투는 국가 안보 위기나 국내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심각한 판단 지연 상황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이러한 건물 구조는 일반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구조이다.
비서진은 당연히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해야 되는 것으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이 비서진을 호출하면 10초 안에 집무실로 달려오는 미국 백악관 집무실 구조와는 너무나 차이가 있다.

청와대가 이처럼 국민이 머물고 있는 시내에서 동떨어진 산 속에 위치해 있는데 대통령 집무실은 청와대 내에서 조차 구중궁궐로 비서진들과 동떨어져 있으니, 대통령이 국민들의 어려움을 헤아리고 소통한다는 것은 요원할 뿐이다.

멀쩡하고 정상적이던 사람도 대통령에 당선 되어 청와대에 들어오면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공간 구조의 지배를 받게 된다. 이러하니 시간이 흐를수록 대통령은 집무실만큼이나 국민 위에 군림하고 권위를 내세워 국민의 안위가 아니라 자신의 정권을 보존하기 위해 힘을 행사하는데 익숙해질 수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청와대에는 사랑방처럼 토론할 수 있는 따뜻한 공간이 없다.
청와대의 위치와 이러한 건물 구조가 대통령을 차갑고 위압적인 인간으로 만들어버리며 대통령의 심기가 곧바로 국민들에게 그 영향을 미친다. 우리나라 대통령 수난사가 증명이라도 하듯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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