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전심전력을 다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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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전심전력을 다하게
  • 한학수 칼럼위원
  • 승인 2017.06.30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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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스승을 존경한다는 의미의 표현이다. 스승의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작금의 풍조가 더 안타까운 것은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잊지 않았던 조상의 향기가 진하기 때문이다. 스승 앞에 서면 자신의 허물이 고스란히 드러나 저절로 모든 행실을 삼가고 숙연하게 하는 사람, 스승은 바로 그런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스승에게는 귀감이라는 책임이 주어졌다. 그들은 무엇이 옳은 길인가를 깨닫고, 몸소 그 길을 걷고, 타인에게 그 길을 걷도록 하고, 전도에서 안내한다. “학생이 배울 준비가 되면 스승은 나타난다”는 말처럼 학생으로서의 배울 채비가 먼저다. 좋은 학생은 훌륭한 스승이 만들고 훌륭한 스승은 좋은 학생이  만든다.

우리는 삶에서 다양한 스승을 만난다. 그렇다면 ‘과연 어떤 사람이 위대한 스승일까?’ 돌이켜보면, 지금껏 여러 선택의 길목에서 우리를 이끌었던 분은 분명히 스승이다. 보편적으로 스승은 남들이 갖추지 못한 재주와 능력을 가진 자를 일컫는다. 그러나 참 스승으로 존경받고 그 명성이 후대까지 이어진 분들의 삶은 그가 걸어왔던 길이 줄곧 한결같았다. 그는 주도적으로 뭇사람을 선도하기 위해서 타인이 가지지 못한 빼어난 식견과 설득력을 갖춘 언변, 모범적인 행실이 확고한 습관으로 갖춰져 있어야만 한다. 그런 덕목이 제자의 역할과 어울릴 때 더욱더 빛난다. 신뢰감이 서로의 마음에 기조를 이루고 있다면 동반자로서 멀리 가는 향기를 뿌릴 수 있을 테니 말이다.

사람의 나이가 더해지는 만큼 지혜도 쌓이고 인격이 성숙한다면 좋으리라. 안타깝게도 그다지 세월의 무게와 비례하지 않는다. 인격 또한 나이 숫자와 거의 무관해 보인다. 지혜와 인격은 올곧게 바른 길을 걷는 시간과 비례할 뿐이다. 꽃자리 위로 바람이 지나고, 비가 뿌리고, 살을 지지는 햇볕이 내리고 하면서 열매는 자라게 마련이다. 다만, 그른 건 그르다, 옳은 건 옳다. 올곧은 길을 가도록 모범을 보이고 따르는 실천의지가 동반돼야 한다. 자아성찰과 확실한 실천이 담보되지 않으면 말은 공염불에 불과하고 문장은 그저 한 가지 지식에 불과할 테다.

어떤 일에 혼신의 힘을 쏟고도 뜻대로 성취되지 않을 때, 뜻하던 일을 포기하기 쉽다. 이것은 일을 그르치는 또 하나의 원인을 만든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것이 세상사이다 보니 ‘기다림’은 더없이 소중하다. 스승과 제자 사이도 그렇다.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고 상대에게 시간을 주며 기다리는 마음, 서로를 진정으로 아낀다면 반드시 갖춰나가야 할 덕목이다. 스승의 극진한 교육에도 불구하고 제자에겐 늘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점이 있다. 그럴 때 훌륭한 스승은 제자를 탓하기보다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육자는 가르치는 자로서 소명이 우선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축구코치는 선수에게 운동화 끈 매는법부터 가르친다”고 한다. 급격한 사회변화 속에서 제자를 스스로 우뚝, 서도록 돕는 것이 스승의 역할이고, 반면에 제자는 뜻한 바를 성취해 가는 과정에서 끊임없이 스승에게 길을 물어야 한다.

배우는 자는 어떤 고난과 역경에도 물러서지 않는 뚝심을 갖고 배움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신경림 시인은 시 ‘갈대’에서 ‘산다는 것은 속으로 조용히 울고 있는 것’이라고 했고, 정호승 시인 또한 ‘상처는 스승이다’라고 했다. 마음이 불필요한 강박에서 벗어날 때, 마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고 그 존귀함을 안다. 스스로 서려는 의지가 우선이지만 삶의 여정에서 훌륭한 스승을 만나는 것 또한 행운이다. 삶에서 내가 나의 스승이 되는 삶을 실천해 보는 것 또한 의미가 있다. ‘그냥 그렇게 살다 가네’ 하고 돌아갈 인생이 아니라면, 가끔씩 눈물이 나더라도 차라리 앓으며 방황하는 삶도 누려봄직한 자유라고 생각하는 게 어떨까. 신은 우리가 견딜 수 있을 정도의 고통만 허락하신다고 하지 않던가. 이 시간에도 어디에선가, 앓으면서 자라는 제자에게 ‘힘내!’ 하고 나지막하게 읊조리곤 옅은 미소 짓는 스승의 빈 어깨가 부서지듯 아프다.

한학수<청운대 방송영상학과 교수·칼럼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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