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왕께서 아신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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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왕께서 아신다면
  • 이원기 칼럼위원
  • 승인 2017.07.21 1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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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생각 없이 하거나 발음에 무신경한 사람을 보면 ‘대왕세종’에서 세종대왕 역을 맡아 열연했던 김상경 군이 떠오르며 마음이 착잡해진다. 2007년 5월 20일 쯤이었을 것이다. “스승의 날 찾아뵙지도 못 하고 죄송합니다. 다음주 쯤 시간 괜찮으시면 홍성에 한 번 내려가겠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엣날 홍성역에서 만났고, 만나기가 무섭게 다시 돌아가려는 그를 나는 반강제로 붙잡았다. 그는 그때 영화 ‘화려한 휴가’ 홍보차 전국을 도느라 눈 코 뜰새 없이 바빴던가 보다. 아무튼 우리는 광시 한우타운을 거쳐 예당저수지까지 가게 되었고… 그해 10월7일 워커힐에서 갖게 될 혼례식 주례를 서기로 하는 한편, 나는 다짐 아닌 다짐을 받아 뒀다.

“불멸의 이순신의 주인공 역을 거절했다고? 세상에! 게다가 이번엔 세종대왕 역도 않겠다니 제정신인가?”

“저는 방송국의 분위기가 맘에 안들어요. 연습 분위기가 연극이나 영화 하고는 달라서….”

“그래도 그렇지! 내가 알기로 세종대왕은 인류 역사상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위인이야! 인간 탐구를 하는 셈 치고라도 도전해봐!”

그런식으로 설득해서 그는 결국 불멸의 성군 세종대왕 역을 맡아 잘 연기했다. 그러나 그를 열심히 구워삶았던 내 자신은 그 드라마를 열심히 챙겨보질 못했다. 하지만 요즘 젊은이들의 언행을 살펴 볼 겸 가끔씩 TV를 볼 때면 늘 마음이 무겁다. 내로라하는 아이돌들이 유행처럼 쏟아내는 잘못된 발음도 안타깝지만, 이것저것 알만한 어른들이 생각 없이 내뱉는 엉터리 발음들을 듣노라면 기가 찰 노릇이다. 홍수처럼 쏟아지는 대표적으로 잘못된 발음은 ‘정말뇨?’란 발음. ‘정마료?’에 가깝게 발음해야 마땅한 이 말의 발음이 어느 때 부터인가 ‘정말뇨?’로, ‘될거료’로 발음해야하는데 ‘될껄뇨’로, 그냥 강세없이 ‘이료일(일요일)’로, 제대로 발음해왔던 것을 언제부터인가 젊은이들은 ‘일’자에 강세를 넣어서 ‘이료일’, ‘이락년’으로 말한다. 곡식 ‘창고’ 가 맞는데도 ‘창꼬’라고 말하는 이들이 상당수이고, 책을 ‘잉는다(읽는다)’를 책을 ‘일는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물이 ‘막따(맑다)’ 달이 ‘박따(밝다)’임에도 물이 ‘말따’ 달이 ‘발따’ 라고 잘못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훌륭한 선생님들조차도 ‘네가’라고 제대로 쓰는 이들보다고 ‘너가’라고 말하는 이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멋대로 ‘ㄹ’을 탈락시켜서 ‘할게요’를 ‘하께요’로, ‘갈게요’를 ‘가께요’로 말하는건 그래도 봐줄만하다고 하겠다.

자기 자신의 이름은 물론 남의 이름까지 엉터리로 불러댄다. 가령 ‘김영수’를 ‘김녕수’로, 잘못 부르거나, ‘송영선’을 ‘송녕선’으로 제멋대로 강세를 넣어서 부르는 식이다. 잘못을 지적해줘도 지적받는 그때뿐다. 일테면, ‘반갑다’를 줄기차게 ‘방갑다’로, ‘한강’을 ‘항강’으로 ‘선물’을 ‘섬물’로  ‘관광’을 ‘광광’으로 웃으면서 태연히 말한다. 그래도 이 정도는 웃고 넘어갈 수 있다고 치자.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있는 어른들의 잘못 된 발음은 정말로 그 폐해가 크다. ‘섞어서’라고 말해야 마땅한데 득의만만하게 ‘썪으시죠’라거나 ‘구워서’를 ‘꾸워서’라고 말하고, ‘다르다’와 ‘틀리다’를 혼동해서 쓰는 어른들도 부지기수다.

언어는 그 민족의 얼이 담겨 있는 그릇일진대 잘못된 언어생활을 마냥 방치할 수도 없겠으나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도 막막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래도 이참에 한 가지만은 생각해보고 싶다. 1980~1990년대 까지만 해도 경향 각지에서 웬만하면 우리말을 다 제대로 구사했다. 일제의 간악한 조선이 말살 정책에도 불구하고 꿋꿋이 버티며 우리말을 지켜온 것이다. 가령 지금은 鄭(정)씨나 丁(정)씨나 똑같이 ‘정씨’라고 부르지만, 옛날 어른들은 엄연히 앞의 정씨는 ‘즈응’씨에 가깝게 장음화시켜 말했고, ‘丁(정)’씨는 그냥 단음으로 ‘정’씨로 불러서 엄연히 구별했다. ‘헌법’도 ‘흐은 법’에 가깝게, ‘영등포’도 ‘이응등포’로 말했던 것이다. 현재도 제대로 교육받은 아나운서들은 ‘운동선수’를 ‘운동스은수’로 ‘정정당당히’를 ‘즈응증당당히’로, 발음함으로써 우리말의 자고저(字高底)현상을 최대한 지키려고 애쓰는 것을 볼 수 있어서 그나마 다행이다.

뭐랄까? 일제가 물러나자, 정작 우리들 자신은 겨레의 얼이 담긴 우리말을 제대로 가꾸고 전수시키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되짚어 생각건대, 오늘날 겪게 되는 우리말(발음)의 혼란상도 그 원인은 일제의 강제 침탈과 폭압에서부터 불행의 씨앗이 싹텄던 것이다. ‘대왕세종’께서 이 사실을 아신다면 다시금 대마도 정벌에 나서실 지도 모른다는 뜬금없는 생각에 실소를 금할 길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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