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7>
재경금마면민회 이상범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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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 - 사람이 희망이다<7>
재경금마면민회 이상범 회장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7.08.18 09: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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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경금마면민회 이상범 회장

성실성으로 불황 극복하고 가구업계에서 살아남아
 

이상범 재경금마면민회장이 가게 안에 자신이 좋아하는 성경구절이 적힌 액자 앞에서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금마초교 37회 입학, 5학년 때 분교 정든 친구들 곁을 떠나
가까운 곳에 신설된 배양초교 1회로 졸업, 양교 모두 모교
중국산 저가 공세로 가구판매 어려워져 랜탈사업 돌파구
서초구 직거래 장터, 회원들 통해 고향의 농산물 판매 희망


 

재경금마면민회 이상범 회장은 서울 서초구에서 현대가구 서초점을 운영하고 있다. 2000년도에 근무하던 롯데호텔을 그만두고 나와서 시작한지 거의 20년이 됐다. 지난 11일 오후 기자는 서울 서초구 동작대로 주변 큰길가에 가구점이 밀집한 거리의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현대가구 서초점을 찾았다. 현대가구는 사무용 가구만 전문으로 취급하는 점포였다. 그와 마주앉아 고향과 가구 판매사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고향은 언제 떠났죠?
“제 고향이 홍성군 금마면 화양리인데 고교까지 졸업한 후 20살 때 떠났습니다. 지금도 시골에 연로하신 부모님께서 농사를 짓고 계시니까 자주 내려갑니다. 고향에서 축산, 양계, 농사를 하거나 사업하는 친구들이 많아 분기에 한 번 정도 다녀옵니다. 재경금마면면민회장으로서 행사 때마다 가는데 다음 주 철마산에서 있을 8·15광복절 행사에도 갈 예정입니다. 독립유공자를 많이 배출했던 고장이라 8·15 행사 때는 보통 300명 정도 참석합니다. 해마다 재경면민회에서는 행사에 참석하는 분들을 위해 모자를 협찬하곤 했습니다.”
 


-재경금마면민회는 언제 결성했습니까?
“재경금마면면민회는 2000년도에 결성했습니다. 홍성군 읍면단위 재경면민회로서는 홍동면이 제일 먼저 결성했고, 그 다음 순서로 금마면면민회가 조직됐죠. 올해 금마면면민회는 18년차로서 회원은 500명, 그 중 잘 모이는 인원수 기준으로는 300명 됩니다. 원래 금마면민회는 금마초교 졸업생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제가 금마초교 37회 입학생인데, 5학년 때 분교가 된 배양초교로 가서 1회 졸업생이 됐습니다. 배양초교를 나온 제 밑의 기수들은 금마초교 동문들을 잘 모릅니다. 저는 양교를 다 다녀봤기 때문에 두 학교 동문들을 잘 압니다. 그러나 배영초교 후배들은 이쪽 동문들을 잘 모르니 면민회에 잘 안 옵니다. 제가 배영초교 졸업생으로서 처음으로 금마면면민회장이 됐는데 회원들이 배양초교 동문들을 많이 참여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홍보를 많이 했는데 작년에 200명 이상의 배영초교 동문들이 금마면면민회에 나왔습니다. 이제 금마초교와 배양초교가 함께 가는 면민회가 됐습니다. 올해도 많은 협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1면에 2개의 초등학교가 있어야 할 정도로 한때는 학생이 많았지만 지금은 이농과 저출산으로 폐교되지 않았습니까?
“지금 배양초교는 70명의 재학생이 다니는데 비해 더 오랜 역사와 전통을 가진 금마초교는 50명의 재학생이 남아 상황이 역전됐습니다. 배양초교가 홍성읍과도 더 가깝고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습니다. 금마초교는 더 깊은 골짜기에 위치하고 있어 배양초교가 더 활성화되고 있습니다. 다행한 것은 한 면에 있는 양교 모두 폐교되지 않을 정도로 홍성에 외부 인구가 꾸준히 유입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양교 둘 다 시스템과 시설이 잘 돼 있습니다. 금마초교는 골프연습장과 우레탄이 깔린 운동장을 갖추고 있는 등 홍성읍내 학교보다 더 낫습니다. 인원이 많지 않아 학원을 안 다녀도 학생들의 학습환경이 더 좋습니다. 저는 두 학교 모두 모교로서 꾸준히 명맥을 유지하면서 발전했으면 합니다.”

 

이상범 회장이 운영중인 현대사무가구 서초점.


-가구판매사업을 하시게 된 계기는?
“저는 홍성중·고를 졸업하고 군 제대 후 롯데호텔에서 2000년까지 근무했습니다. 그만두고 바로 가구업계에 발을 디뎠죠. 원래는 1992년부터 가구점을 부업으로 시작했는데 처남들에게 맡겨 영업을 했습니다. 지금 여기 동작대로 양쪽 사당동과 방배동 가구거리는 서울에서 가장 큰 가구거리입니다. 옛날에는 중고가구가 잘 됐는데 1995년부터 중국산 신품 저가가구가 들어오면서 경쟁력을 잃었습니다. 국산 중고가구와 중국산 신품 가구 가격이 같아졌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중국산 가구의 질이 형편없었습니다. 중국산도 비싸고 좋은 가구가 있었지만 수입업자가 싼 것만 사들여왔기 때문이었습니다. 값싼 중국산 가구 때문에 국내 중고가구시장이 죽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도 인건비가 올라가 가격경쟁력이 많이 떨어졌습니다. 중국산 가구는 질도 좀 나아져 국산 가구의 70~80%대 가격으로 팔립니다. 동작대로 가구거리가 10년 전만 해도 150군데가 될 정도로 호황을 누렸으나 지금은 100개 업체가 남았습니다. 그 중 70개 업체가 대로변에 나와 있고, 나머지 30개 업체는 뒷골목으로 빠졌습니다. 시장이 절반으로 축소됐습니다. 옛날에 15평짜리 조그만 가구점도 프리미엄이 1억씩 붙었습니다. 프리미엄은 1년 동안 영업해서 낼 수 있는 수익금을 1억원으로 잡고 붙여주는 금액인데, 1992년 제가 처음 여기 들어올 때 5000만원의 프리미엄을 냈습니다. 그때 그 돈이면 아파트 한 채 값이었습니다. 그때 경기가 그만큼 좋았죠. 하지만 지금은 프리미엄도 없습니다.”

 

-요즘 돌파구는 어떻게 찾고 있습니까?
“저는 국내산 브랜드인 듀오백과 시디즈 의자 총판점으로 서초구와 강남구의 가구점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죠. 조달청에 등록된 가구점으로서 관공서와 학교를 대상으로 조달 영업을 합니다. 하지만 판매만으로는 어려워 렌탈도 합니다. 렌탈을 한지 10년 됐습니다. 요즘 아파트는 붙박이장 가구를 설치하기 때문에 판매가 안됩니다. 오피스텔도 사무용 가구가 붙박이장으로 가고 있습니다. 중국의 인건비가 오르면서 가구가 비싸지니까 요새는 베트남,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 수입을 해 국내산은 설자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렌탈 사업을 해야 미래가 있습니다. 렌탈은 잠시 빌려다 쓰는 것이어서 가구를 돈 주고 사는 것보다 더 저렴한 비용으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렌탈의 저변은 상당히 넓습니다. 이동식 부스로 행사를 할 때나 국제대회, 체육대회 등의 행사에서 많이 빌려 씁니다. 우리는 1995년 아셈(ASEM, 아시아유럽정상회의) 때부터 렌탈사업을 했습니다. 세계경찰대회, G20 등의 국제행사 때도 주최 측은 전부 가구를 렌탈했습니다. 몇 년 전 목포에서 해양박람회를 할 때도 가구를 렌탈해 제가 3~4억 정도 벌었습니다. 전국체전, 아시안게임, 올림픽 등의 행사를 하면 지금도 렌탈합니다. 길어야 1~2주 하는 행사를 위해 가구를 살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이런 대형 행사에 큰 업체가 오더를 따면 작은 업체들에게 나눠줍니다. 가령 200억, 300억 공사를 각 업체에 10억짜리로 분배해 주는 거죠. 가구를 판매하는 것보다 시장규모가 방대해 전망이 있습니다.”

 

-특별한 경영철학이나 좌우명이 있다면?
“좌우명은 고교시절 교훈이었던 성실입니다. ‘항상 성실하게 살자’를 평생 좌우명으로 삼았습니다. 또 기독교인으로서 ‘하나님 영광을 위해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살자’를 좌우명으로 삼고 있습니다. 요즘 가구업계가 몹시 어렵습니다. 경기도 광명에 이케아가 들어와 웬만한 중소기업은 다 잡아먹고 있습니다. 국내 브랜드로는 힘들어 획기적인 아이템이 나오지 않는 한 힘듭니다. 프로의 세계에서는 무한한 경쟁을 통해 이길 수 있어야 합니다. 옛날 것을 답습하면 안 됩니다. 고객은 항상 변해 2~3년 지나면 싫증냅니다. 소비자들은 옛날 것 안 씁니다. 이런 책상도 스탠드형이지만 밑으로 내리면 앉아서 사무를 볼 수 있도록 된 제품입니다. 이처럼 항상 새 아이템을 개발하고 새 물건을 선보여 고객에게 구매의욕을 고취시켜야 합니다. 제가 선전하는 이유는 끊임없이 노력하기 때문입니다. 20년 가까이 롯데호텔과 롯데백화점에 근무하면서 시장을 보는 눈이 생겼던 것도 이 사업을 하는데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3차 서비스업을 보면서 전체를 보는 눈이 생겼습니다. 소비자의 눈높이에 맞춰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하고 혁신해야 한다는 것을 호텔과 백화점에 근무하면서 터득했습니다.”
 


-고향에 대한 계획이 있다면?
“고향 농산물을 팔아주고 싶습니다. 농산물을 제값에 판매하지 못해 많은 애로가 있어 농협과 상의도 하고 회원들 중에 각 기업체 구매담당자도 있어 직원들 선물로 고향 쌀을 제공하도록 타진하고 있는 중입니다. 연말 행사 때는 서초구에서 1일장터를 여는데 고향 특산물을 판매하도록 하겠습니다. 구청과 협의해 연말 행사 때 고향물건을 많이 홍보하고 시장보다 싸게 팔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이상범 회장은 ‘재경금마면산악회’도 조직돼 있어 예산군과 홍성군 금마면에 걸쳐 있는 봉수산에 해마다 같이 간다고 했다. 서울 서초구 방배동 주민자치위원으로 활동하는 그는 가구거리 간판을 LED 디자인으로 바꾸기 위한 간판정화위원장도 맡았다. 교회에서는 안수집사로 봉사를 한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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