꿩 먹고 알 먹고 둥지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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꿩 먹고 알 먹고 둥지까지…
  • 김주호 <스카우트 홍성지구회장, 향토사연구원>
  • 승인 2017.09.01 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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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부터 10일까지 9박10일 일정으로 청산리 역사 대장정을 다녀왔다. 홍성군청(군수 김석환)이 주최하고 백야김좌진장군기념사업회(회장 김을동)가 주관한 이 대장정은 충남도내 중·고교생 75명으로 체험단(단장:조기준)을 구성해 백야사-인천항-대련-단동-졸본성-국내성-백두산-화룡-연길-용정-상경성-해림-하얼빈-대련-인천-홍성으로 돌아오는 장장 1만6천리 길이었다.

백야사에서 출정식을 마치고 대장정에 나선 대원들은 다소 들뜨고 기대가 섞인 마음으로 출발했다. 그러나 일정이 빠듯하고 새벽에 나와 밤늦게 숙소에 돌아가는 강행군이이어서 염려가 되었지만 누구 하나 불평 없이 낙오자 없이 대장정을 마쳤다. 마라톤으로 치면 제한시간 내에 부상자 없이 전원 완주한 셈이다. 가파른 졸본성에 올라 비류수를 바라보며 고구려 건국의 모습을 상상하고 국내성에 와서는 광개토태왕비·장수왕릉·5호묘 등 웅혼의 고구려 역사를 체험했다.

분통이 터지는 것은 중국 공안원의 제지로 태극기를 들고 다닐 수도 없었고, 사진도 마음대로 찍을 수 없었던 무력감 때문이었다. 특히 광개토태왕릉이 황폐된 채로 방치된 것을 보니 여기가 대한민국의 통치권이 미치는 땅이라면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거라는 생각에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삭히기 어려웠다. 안 그래도 중국 측의 역사왜곡으로 속이 상한데 그런 모습을 보니 더욱 끓어올랐다.

1400계단 백두산길을 허위단심 올라가 천지를 보는 순간 숨이 멈추고 벌어진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과 감격을 맛보고 화룡에 가서 청산리대첩의 현장과 봉오동대첩 전적비를 참배한 후 용정으로 향했다. 일제 강점기 독립운동의 주무대였던 일송정, 윤동주 생가, 15만원 탈취비, 3·13 반일 의사릉을 참배하고 상경성(발해 마지막 수도)에 도착했다. 안타깝게도 해동성국의 위용을 자랑하며 문화강국으로 위세를 떨쳤던 발해인데 남아있는 역사 문화유적이 적어 또 한 번 치밀어 오르는 울분을 되삭혀야 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이 왕릉을 도굴하고 귀중한 문화재를 반출하여 가져갔다가 몇 년 전에 그 일부를 고양이 쥐 생각하듯 한국에 반환해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되고 있으나 빈약하기 그지없다. 해림시(홍성군과 자매결연)에 가서는 한중우의공원에 여장을 풀고 백야장군이 순국하신 산시진(금성정미소)을 방문했다. 참배한 후 해림실험소학교(백야장군이 설립)를 찾아서 휴가중 보충수업을 하는 동포자녀들을 격려했다. 그날 저녁에는 실험소학교 학생들의 예능공연을 관람했다. 그들이 고사리 같은 주먹을 불끈 쥐고 독립군가를 부르고 아리랑 춤을 출 때는 모두가 눈시울을 적셨다.

5시간을 달려 하얼빈에 도착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둘러보고 유유히 흐르는 송화강을 바라보았다. 백두산 정계비에 의하면 서쪽으로는 압록강이고 동으로는 토문강(송화강)으로 국경이 결정되었는데 일본 측의 술책으로 토문강이 두만강으로 둔갑했다. 이런 역사적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심히 흐르는 송화강을 보고 있는 동안 또 한 번 속이 뒤집혔다. 밤새 야간열차를 타고 대련에 와서 관동법원(안중근 의사 사형 언도)을 거쳐 악명 높은 여순감옥으로 왔다. 안중근 의사를 비롯해 이회영·신채호 선생 등 수많은 독립열사들이 순국한 원한의 감옥(독일의 아우슈비츠)을 둘러보고 독립군들의 명복을 비는 묵념을 올렸다. 밤배를 타고 인천항에 돌아오는 선상에서도 심정이 착잡해서 그런지 잠을 설쳤다.

이 청산리 역사대장정은 2010년부터 조기준 단장(백야사업회 이사)이 기획하고 군청이 연출을 맡고 의회가 후원하는 뜻 깊은 사업으로 올해 8회째 시행됐다. 필자는 매번 답사단을 수행하며 학생들에게 역사문화 해설과 호국보훈교육을 담당하고 있다. 그런데 조기준 단장을 가까이에서 바라보며 조금은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그것은 매번 조기준 단장이 군과 도의 지원금 외에 사비로 1000만원씩 쓰는 것을 알게 됐기 때문이다. 월급쟁이가 아니고 조그만 사업을 하는 분이 사업의 잘잘못에 따라 더 쓰고 덜 쓸 수도 있는데 의아해서 물어 봤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청산리 대첩에 참전한 독립군이 2000명이다. 그분들에게 쌀밥 한 그릇, 된장국 한 사발, 약주 한 잔 올리면 그게 5000원이다. 잘 차릴 형편이 안돼 2000명의 독립군에게 제사를 지내는 심정으로 그렇게 쓴다.”

그 말에 필자는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역사 공부 좀 했다고 우쭐대던 필자의 코가 납작해지고 말았다. 역시 단장은 아무나 맡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청산리 역사대장정 보다 더 기가 막힌 사업이 있다. 7년 전 윤용관 의원의 발의로 군의회가 적극 찬동하고 김석환 군수가 이를 수용하여 시행하는 사업인데, 그것은 해림시 실험소학교 학생들을 매년 홍성에 초청해 고국체험과 역사문화체험, 서울 구경까지 시켜주는 사업이다. 서울에 가면 홍문표 의원이 국회 견학도 시켜주시곤 한다. 그런데 여기까지는 약과다. 이 사업의 하이라이트는 모자 상봉이다.

실험소학교 학부모들이 생활이 넉넉지 못해 수도권지역의 식당이나 공장 등에 취업해 돈을 벌고 있는데, 바로 이 엄마들을 초청해 모자상봉을 시켜준다. 서로 얼싸안고 우는 모습을 보면 옆에서 보는 사람들도 따라서 운다. 이역만리 타국에서 조국을 그리며 어렵게 사는 설움, 그래도 반가운 마음이 뒤범벅되어 펑펑 운다. 마치 칠석날 오작교에서 만난 견우와 직녀 이상이다. 이 사업은 한 마디로 꿩 먹고 알 먹고 둥지 갖다가 불쏘시개 까지 하는 1석3조의 기막힌 사업이다. 그런데 이런 기막힌 사업이 군민들에게 제대로 홍보가 안 되고 있는 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무슨 죄지은 일도 아닌데 왜 홍보가 제대로 안되는지 이해가 안간다. 필자가 홍보를 강조하는 이유는 군민 모두가 알아야 할 내용이고 또 어려운 교육환경(우리나라 70년대 수준)에서 민족교육을 받는 학생들의 실상을 알게 되면 성금이 모아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될 경우 이역만리 타국에서 공부하는 실험소학교 학생들에게 작은 도움을 줄 수도 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겐 미래가 없다는 말을 반추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보다 나은 내일의 역사를 만들어 후손들에게 물려줄 책임이 있다. 모두가 힘을 모아 나라 발전 고장 발전에 합심 노력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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