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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어디로 길을 낼 텐가

설렘 반, 희망 반 버거운 보따리 메고 걷고 뛰며 달려온 한 해가 역사의 뒤안길로 저문다. 줄곧 서로 부대끼며 기대고 살아가는 사람의 감동 에세이는 매력적이었다. 365부작 옹골찬 다큐멘터리 같다. 인생은 가치 있는 일이거나 하찮은 일도 다 의미 덩어리다. 다만, 세상 이면에 ‘법치주의’를 가장해 휘두르는 폭력이 잔존하고 ‘민주주의’를 등에 업은 채 자행되는 인격 파괴가 여전히 우리와 같이 한 해를 살았다는 것은 역사에 몹시 부끄러운 일이다.

아무리 무한경쟁의 세상이라지만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의 마음이 다치는 일 없이 사는 게 사람답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겠지’ 하며 다 털어내고 덮어 보내면 어떤가. 나하고 엮인 그 사람보다 조금 더 일찍 용서하고 너와 나를 소중한 존재로 묶는다면 많은 사람이 간절히 기원하는 불편하지 않은 세상이 올 테다. 다만 우리 삶의 흐름에 적용되어야 할 원칙이 명확히 있는 것도 아니라서 삶이 아름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농사의 반은 하늘이 짓는다고 한다. 기후의 비중을 말하고 있지만 한편 현명한 농부는 하늘을 탓하지 않고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는 비유 일 테다. 우리가 문명 탓에 많은 것을 누리며 온갖 것을 갖고 사는 듯하나, 소의 애씀이 없다면 농사짓기 버거운 곳은 여전하다. 끌고 밀며 언덕을 오르는 연탄배달부의 시커먼 얼굴에 구르는 땀방울, 새끼줄에 달린 두 장의 연탄을 들고 집으로 들어가는 가장의 뒷모습 등은 시대의 얼굴이다. 쓰임이 작아졌지만 연탄은 우리와 같이 살아간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라고 하더라도 10대 경제대국 규모에 진입한 요즘에 사소한 것들이 더욱 아련하고 그립다.

《삼국지》적벽대전 편에서 제갈량은 수인사대천명(修人事待天命)이라고 말한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해 놓은 뒤에 하늘의 뜻을 기다린다는 뜻이다. 혼자만의 힘으로는 좀처럼 이룰 수 없는 것이 세상만사다. 그래서 자신의 일에서건 타인의 일에서건 ‘기다림’은 으뜸 덕목으로 꼽힌다. 무려 1904건 특허를 갖고 있는 에디슨의 발명 동력은 자신의 경제적 궁핍에서 출발했고, 역시 천재 발명가로 꼽히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역시 늦잠이 많아 자명종을 발견하면서 시작되었다. 세상을 움직이고 변화시키는 것은 대단한 계기 보다는 거의가 사소함에서 시작되고 꾸준히 인내하며 집중하는 데에서 결실이 나온 셈이다.

인간사에서 백천만사(百千萬事)가 정도에 알맞아야 한다. 분수에 넘치면 화를 초래하기 십상이다. 그릇에 물을 따르듯, 분수를 잘 살펴야 하는 이유다. 나이 드는 만큼 지혜가 쌓이고 인격이 성숙해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테다. 안타깝게도 지혜나 인격은 숫자와 거의 무관하다. 그가 걸어온 인고의 시간을 닮는다. 사물은 앞뒤가 같기 어렵고, 사람 또한 시작과 끝이 한결같기 어렵다. 순간을 모면하는 ‘눈속임’이 아닌 ‘한결같은 올곧음’은 전략적 사고, 균형 감각을 갖추는 과정에서 성장한다.

요즘 바깥은 찬바람이 부추겨 겨울이 분기탱천(憤氣?天)하고, 앙상한 나뭇가지의 한들거림도 만만치 않은 생명력으로 온종일 창 앞을 서성인다. 스산한 찬바람 끝에 성급한 매화향이 날아 올 것만 같다. 겨울을 살며 봄을 그리는 마음이 삶이다. 내 가슴에 희망의 끈질김이 물씬하면 자족하여 비로소 ‘성취’라 말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가정’이나 ‘이웃’이라는 말이 설령 사소하게 들릴지라도 건성으로 말하지 않는다. 속내를 들어 내지 않는 애틋함만으로도 웃고 눈물짓게 하는 자양분일 테니 말이다.

목표가 뚜렷하다면 현실이 시리고 차가워도 견딜 수 있다. 16세기 조상의 한시(漢詩)에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올지니 봄바람을 버들과 함께 즐기리라”라고 했다. 세밑에서, 우리는 간절히 소망한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싶고 의지처가 되고 싶다는 마음가짐이 서로에게 지속되기를 말이다. 어디고 발 가는 곳도 많고 마음 붙일 곳도 많았으면 한다. 산업이며 과학의 후유증 탓에 조금은 소외감이 있다손 치더라도 모두의 발걸음이 여여(如如)했으면 좋겠다. 오늘도 언젠가는 그렇게 그리워질 것이니까.

한학수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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