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인생을 살아라!”
상태바
“너의 인생을 살아라!”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1.10 10: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담프루스트의 비밀정원
감독 | 실뱅 쇼메 제작 | 클로드 오자르

때로 기억은 추억보다 참혹하다. 내가 가진 기억이 참혹하다 하여 들여다보지 않으면 온전한 나로서 살아가게 되지 못하고, 완전하지 못한 기억만 들여다보게 되면 과거를 살아갈 뿐,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게 된다.

기억이라는 이름의 추억과 마주할 때면 나는 간절히 기도한다. 마담 프루스트가 타주는 아스파라거스 차와 마들렌을 먹을 수 있게 되기를 말이다.

‘마담 프루스트의 비밀정원’은 ‘일루셔니스트’, ‘벨 빌의 세 쌍둥이’ 등을 연출한 프랑스 실벵 쇼메 감독의 영화다.
영화를 보는 내내 감각적 색감의 화면과 구성으로 단 한시도 눈을 떼지 못했던 영화다.
한 장의 그림 같은 마담 프루스트의 정원은 화면을 찢고 들어가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이 영화는 현재와 과거, 현실과 환상이 교차하며 주인공 폴의 잃어버린 기억을 찾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두 살 때 부모님을 잃고 말을 전혀 하지 않으며 두 이모와 함께 살아가는 폴, 이모들은 폴이 피아니스트가 되기를 바랐고 폴은 이모가 운영하는 댄스 교습소의 피아노 반주자로 무의미한 삶을 살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아파트에 사는 프루스트를 알게 되고 그녀가 건네는 차를 마시며 폴은 기억의 여행을 떠나게 된다.

행복했던 두 살 때의 기억 속에는 아버지가 어머니를 때렸던 것으로 기억하는 폴의 오해가 있었다. 사실은 레슬링 연기를 하려고 그 일부를 해 본 것일 뿐이었다. 기억의 차로 오해를 푼 폴, 그러나 그 뒤에는 더 큰 오해의 기억이 숨겨져 있었다.

폴이 두 살이었던 해, 이모들은 위층에 살고 폴과 부모들은 아래층에 살았다. 그런데 불법공사로 인해 마룻바닥이 그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그랜드 피아노가 아래층으로 떨어져 폴의 부모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자신의 부모를 죽인 그 피아노로 피아니스트가 된 폴, 그것을 숨겼던 이모들.

이 사실을 알게 된 폴은 자신의 손가락을 못 쓰게 만들고, 자신이 하고 싶었던 일을 찾아간다.
영화 말미 프루스트가 폴에게 편지를 건네고 멀리 떠난다.

“젊은 친구, 네가 텃밭에 안 오니까 텃밭이 네게로 가. 모든 일엔 끝이 있는 법, 난 일 그만 둘 거야. 새 인생을 살기로 했어. 긴 여행을 떠날 거야.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려. 네가 추억을 낚고 싶을까봐 필요한 재료를 마련했어. 나쁜 추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게 해. 네게 바라는 건 그게 다야. 수도꼭지를 트는 건 네 몫이란다. 콩쿠르에서 행운이 있기를 빌어-너의 친구 프루스트가.”

내가 가장 기억하고 싶지 않은 기억은 물론 사람에 대한 상처의 기억이다. 깊게 파여진 상처의 기억들을 나는 날마다 되씹었다. 마치 여물을 씹는 소처럼 말이다. 그리고 검고 깊은 바다에 홀로 가 그 모든 것을 게워냈다. 그리고 잊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잊혀졌을 뿐 지워진 것은 아니라는 것을 지난 바닷가에서 알았다.

물론 알았다고 해서 달라진 것은 없다. 그저 상처를 주었던 어떤 이도, 상처를 받았던 나도 그 기억의 무게를 껴안고 살아갈 뿐이다.

만약 마담 프루스트가 있었다면 무언가 달라졌을까? 그럴지도 모른다. 어느 영화 제목처럼 그 때는 맞고, 지금은 틀리다고 말할 수 도 있다. 프루스트가 말했듯 참혹한 기억은 행복의 홍수 아래 가라앉도록 수도꼭지를 틀어놓으면 될테니 말이다.

마담 프루스트가 폴에게 건넨 작은 쪽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너의 인생을 살아라(Vis ta Vie)!’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