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장 말이면 다 믿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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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장 말이면 다 믿어버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1.15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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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곡면 상송리 윤상모 이장
마을회관에서 포즈를 취한 장곡면 상송리 윤상모 이장.

오전 9시, 기산 댁이 가장 먼저 마을회관에 들어선다. 전등 스위치를 올리고, 밤사이 식어버린 바닥을 데우기 위해 보일러 전원을 켠다. 부엌으로 들어가 쌀을 씻어 밥솥에 올린다.

“오늘은 몇 명이나 올란가?”
혼잣말로 궁시렁거리며 냉장고를 뒤적거린다. 무가 있으니 뜨끈하게 무수국이나 끓여야겠다.
얼추 10시가 되어 가니 사람들이 하나 둘 모여든다. 윤상모(73)이장과 들어오는 김 씨가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입을 연다.

“아니, 이장, 지난 번 상 받았는데 한 턱 쏴야 되는 거 아녀?”
“아, 그게 뭐 그리 큰 상이라고….”
“아, 이 사람이, 큰 상이지. 이제 해가 바뀌었으니 이장을 22년이나 했는데 말이여. 그러니 군에서도 잘했다고 그렇게 군정을 빛낸 자랑스러운 홍성인 상을 주는 거 아녀.”
“안 그래도 상 타고 나서 거덜나게 생겼슈. 여기저기서 한 턱 내라고 해서 말이유.”
“돼지 한 마리 잡어.”
“그래도 상 받고 나오는데 장곡면 사람들이 하나같이 붙잡고 축하한다고 하니 그거 하나는 기분 좋습디다 그려.”

“그동안 강산이 두 번이나 바뀌었는데 이장이 잘 한 거여.”
“내가 군대 3년 이외에는 외지 나간 적이 없슈. 젊을 땐 나갈라 했지. 근데 군대 갔다 오니까 아버지가 이 재산 다 줄테니 여그 살라 하시더만. 그 때 논이 7마지기 되었는데 얼추 농사 지어서 먹고 살겠더라고. 지금은 더 많지. 논 70마지기에 밭이 2000평이니. 근데 점점 힘이 부쳐.”

“얼마 전에 이장이 각 집마다 방송 잘 들리라고 스피커도 설치해 줬잖어. 그게 이장이 면에서 신임을 많이 얻어서 그런겨. 이장 아니면 못혀.”
“어, 근디 이장. 우리 부락에 버스 좀 어찌 안 되는가?”
“안 그래도 내 군에 가서 야그 했는디 미니 버스 생기면 우리 부락 제일 먼저 해준다고 얘기는 하던디.”
“그게 언제 다녀? 우리 죽으면?”

“그거 말고 요즘 시골 단위에 1000원이나 1500원 내면 택시 불러 나갈 수 있는 거 있잖여. 차라리 그거 하는 게 낫지 아녀?”
“우리 같은 노인네들 병원 가는 게 일인데 말야, 큰 길로 버스 타고 나가려면 우리 걸음으로 족히 30분 이상 걸리니 힘들어 죽겄어. 가다 죽겄어.”
“병원비는 기본 1500원인데 택시비는 12000원, 15000원이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커.”
“오늘 노인회장 뽑아야 하잖어. 윤영준이가 하면 좋겄네. 작년에 여그 모정 지으라고 땅도 희사했는데 그런 건 높이 사줘야지.”
“암만.”
“그럼 만장일치여?”
“이장님이랑 잘 의논해서 부족하지만 열심히 해볼게유.”

“뭐 내가 크게 하는 일 있나? 이장 하면서 별로 힘든 일도 없고. 우리 부락은 길도 다 아스콘으로 깔고, 이제 젊은 사람들 들어오고 마을에 버스 들어오면 그다지 큰 걱정은 없겠는데 말이여.”
“우리 부락 같이 공기 좋고, 근처 축사 없어 냄새 없고, 물 좋고 거기에 이장도 좋고 말여. 허허”
“그러게 우린 이장 말이면 다 믿어버려.”

기산댁이 문을 열고 밥상을 들여온다. 뜨끈한 무수국에 밥 한술 말아 넘기며 윤 이장은 흐뭇한 미소를 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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