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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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13>
  • 한지윤
  • 승인 2018.02.07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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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의과대학에 가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만 산부인과를 전공하게 되면 당연히 그런 수술을 해야 된다는 것쯤 각오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마테오 신부가 말했다.
“아, 그래서 왜 산부인과를 택했느냐는 질문이신 것 같군요. 그건 내 스스로가 선택한 것입니다. 난 손 끝이 재빠르고 육감적인 센스가 빠른 편이죠.“
한 박사는 얼굴에 정색을 하며 대답했다.

“의과대학 시절, 어떤 교수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보통수술은 눈으로 보고한다. 중절수술만은 특별히 센스가 빠르게 돌고 손끝이 재빠른 놈만이 할 수 있는 거라고‥‥‥ 그렇다면 내게 제법 적성이 맞은 것이라고 생각을 했었지요.”
한 박사의 대화는 곧잘 이런 투가 많다. 좋은 것도 나쁜 것도 모두 알맞게 둘러서 말하기 때문에 박연옥 여사나 다른 누구도 한 박사를 알고 있는 사람은 그의 말을 들으면서 곧잘 빙그레 웃고는 한다. 이것이 또한 한 박사가 대화에서 노리고 있는 점이기도 했다.

“신부님께 들어보고 싶은 게 있지요. 가령 중절이 대단히 비도덕적이라 한다면 오히려 나는 환자에게 가능한 한 낳아서 기르라고 권합니다. 그러나 대개의 사람들은 원하지 않는걸요. 그렇다면 누군가가 수술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자기의 손은 더럽히지 않고 다른 의사에게 가서 수술을 받았다고 한다면, 그렇다고 해서 내 손은 깨끗하다고 자부할 수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차피 그 일은 내가 맡아 해야 할 일일 겁니다.”

“한 박사께서 중절수술을 거절하시면 여자들 중에선 생각을 고쳐 가질 사람도 있지 않을까?”
옆에서 듣고만 있던 박연옥 여사가 말했다.
“그건 아무것도 모르는 분의 감상! 환자란 그렇게 수전파는 아니죠. 어떻게 해서든 자기가 필요로 하는 의사를 꼭 찾아 가게 마련이거든‥‥‥”
“그건 그렇다 치고, 한 인간의 생명이란 언제부터 생긴다고 보나요. 한 박사?”
“대학을 졸업한 지가 하도 오래돼서 잊어 버렸는데, 책에 어떻게 써 있더라‥‥‥”

“언젠가 제약회사에서 제작했다고 하는 과학 영화를 본 적이 있지요. 토끼의 수태과정을 촬영한 것이었는데 수태에서 수 주간부터 이미 벌써 다음 대를 준비하고 있는 성세포의 분열이 시작되고 있던데‥‥‥ 아니, 수 주간이 아니고 수일에 있었던 것 같아요. 놀라운 속도였어. 태아 그 자체는 형태가 겨우 갖추어 진 듯 만듯한데 벌써 생식 기능까지 준비되어 있습디다. 내가 알고 있기엔 세포라는 것은 아주 작은 것이라고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그건 놀랍게도 일종의 커다란 드라마였어요. 마치 우주를 보고 있는 것 같은 장대한 드라마였습니다.”
“그 영화 내게도 보여줬잖아.”
박 여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신부에게 말했다.

“그랬던가요?”
“그래요. 꼭 봐 두어야 할 장면이라고 하면서 내일 오후 성당에서 상영할 테니 와야 된다고 명령조로 말했었지. 그래서 결국 가서 보긴 했지만.”
“그랬나요?”
“굉장히 흥미를 끈 작품이었어. ‘미크론의 결사권’ 이란 제목이었지. 우리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도 하나의 대우주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었지. 그런 위대한 드라마가 내 몸 속에서 현재도 진행하고 있구나 싶은 생각이 들어 무어라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이야.”
“드라마라는 것은 원래 시끄러운 것 아닙니까?”
“TV 드라마?”
“아니, 진짜 드라마 말입니다. 전쟁, 정치, 경제 등 모두 왁자지껄한 소리가 나는 법인데 세포분열만은 소리 없이 이루어지니 더욱 장엄하더군요. 난 소리도 없이 무언가 진행된다는 것이 겁이나.”
 

삽화·신명환 작가.

한 박사는 두 사람의 주고받는 대화가 꼭 백그라운드 뮤직을 듣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 박사는 가능한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고 싶지 않다는 표정으로 눈을 지그시 감고 잠자코 앉아 있었다.
“닥터께서는 왜 말이 없으시지?”
“아니, 오히려 두 분의 대단히 수준 높은 대화를 즐겁게 경청하고 있습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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