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신기술 익히기 위해 공부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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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신기술 익히기 위해 공부하죠”
  • 허성수 기자
  • 승인 2018.04.13 09: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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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로헤어 전영식 대표 녹슬지 않는 가위 실력
예술로헤어이용원 전영식 대표가 가발을 이용해 실습하고 있다.

변화와 혁신은 이발관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홍성읍사무소 부근에 자리한 ‘예술로헤어이용원’ 전용식(71) 대표는 요즘도 매일 새벽 5시 30분이면 가게에 나와 공부를 한다. 새 시대의 유행에 맞는 헤어스타일을 연구하는 것이다. 인형의 머리에 씌운 가발을 이리저리 잘라보며 손님들에게 눈길을 끌 만한 최신 기술을 익힌다. 한 달에 소비하는 가발이 한두 개가 아니어서 그 비용도 만만찮게 나간다고 한다. 이용사가 이렇게 공부하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고, 결국 찾는 손님이 없으면 문을 닫아야 하기 때문에 전 대표는 늘 긴장하며 초심으로 공부한다.

전 대표가 이용기술 자격증을 딴 것은 24살 때였다. 그 후 5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이용사로 한길을 걸어오면서 자녀들을 다 공부시켰고 크고 멋있게 지은 집에서 지금은 남부럽지 않은 삶을 살고 있다. 이제 칠순에 접어들었으니 손에서 가위를 놓고 경로당에 나가거나 여행을 다닐 만 한데도 그는 현역을 고집하며 매일 새벽부터 가게에 나가 노동을 하고 있다. 요즘은 옛날만큼 손님도 없지만 간간이 찾아오는 단골을 기다리며 일하는 것이 너무 행복하기 때문이다.

“수입은 크게 신경 쓰지 않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일하니 행복합니다.”
달리 직원도 없이 혼자서 가게를 운영한다. 아내는 결혼 초에 너무 고생을 시켜 절대 일을 안 시킨다고 했다. 사실 그에게도 눈물 젖은 빵을 먹던 시절이 있었다. 1·4 후퇴 때 그는 황해도에서 어머니의 손을 잡고 월남했다. 서울에 정착한 후에는 홀어머니마저 4학년 때 돌아가셨다. 그래서 일찍 자립해 보려고 20대의 나이에 이용기술학원에 들어가 이용사가 됐다.

그 후 조그마한 점포라도 얻어 이용원을 개업해 보려고 했지만 고비용을 요구하는 서울에서는 엄두조차 낼 수 없었다. 그래서 각박하고 생활비가 비싼 서울을 등지고 지방으로 내려온 것이 1984년이었다. 그에게 충남 홍성은 아무 연고도 없는 미지의 세계였다. 그러나 서울보다 10분의 1에 불과한 생활비로 살 수 있는데 매력을 느끼고 충남서부보훈지청 앞 지금의 자리에 둥지를 틀었다.

이제 홍성은 그의 고향이 됐다. 한때는 많은 이용사들을 고용할 정도로 성업했지만 어느 때부턴가 금남구역 같았던 미용원을 남성들이 많이 이용하게 되면서 그의 가게도 요즘 조용한 편이다. 그래서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미용원을 이기려면 이용사들도 미용기술을 배우는 등 끊임없이 공부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자신의 아들과 경쟁하는 관계다. 자신의 가게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들 전호성(45) 씨가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다. 이용사가 되어 자신의 가게를 물려주려고 했지만 아들이 미용사를 고집했다고 한다. 개업한지 5년 됐는데 그래도 대견해서 ‘전호성 헤어 원장’이라고 새겨진 아들의 명함을 기자에게 건네준다.

그의 가게 한쪽 벽면에는 대한민국이용장회장배 기능헤어경기대회 금상, 소상공인기능경진대회 최우수상 등 상장과 상패가 빼곡히 장식하고 있었다. 그만한 실력에 걸맞게 그는 한국이용사회중앙회 기술위원회 강사, 충남지회 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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