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가 육지로 변한 후 생계터전 잃어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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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가 육지로 변한 후 생계터전 잃어버려
  • 취재=허성수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4.13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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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2>

농촌마을 희망스토리-서부면 궁리 산막마을
산막마을을 이끌고 있는 주민 대표들이 마을회관 앞에서 .

상펄어장 되찾았지만 산막·당곡은 어업권 제외시켜 불합리
군사정권시절 철권통치 무서워 간척사업 반대 데모하지 못해
바다 막히면서 중단한 당제 부활시켜 올해 15년째 제사 지내


■ 넓은 농지 생긴 후 더 가난해져
“산막골은 옛날에 좋았어요. 정주영 회장이 1983년 3월 10일 물막이 준공식을 했는데 그 전까지는 바지락 20ha, 굴 20ha. 총 40ha가 황금어장이었습니다.” 서부면 궁리 산막마을 장정훈 이장이 이렇게 입을 열면서 과거를 회상했다.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뚝심으로 천수만 바다를 메워 넓은 농토로 바꾼 것이 신화처럼 널리 알려져 있으나 정작 해당 지역 어민들은 그 후 생계의 터전을 잃고 피폐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 때 둘이서 바지락이나 굴을 채취하면 적게는 700kg, 많게는 1톤까지 수확할 수 있었으니까 마을이 부촌이었습니다.” 마을 앞의 넓은 바다는 농토로 변했지만 대대로 어업을 해온 주민들에게 농업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5공 시절 데모도 못했어요. 데모하면 삼청교육대에 끌려간다고 해서 현대건설에서 책정해주는 보상비만 받고 말았죠.” 장 이장은 군사정권의 철권통치가 무서워 주민들이 간척사업을 반대하는 불평도 한 마디 하지 못한 채 보상비를 주는 대로 받고 순응했다고 한다.

“가구당 120만 원 정도 받았습니다. 그것도 순수하게 양식하는 마을 사람에게만 보상해줬어요.” 바다가 육지로 변하는 과정을 줄곧 지켜봤던 김종석 노인회장도 그 때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우리는 삶의 터전을 잃었지요. 당시 60호에 젊은이가 많았으나 바다가 막혀 어업을 못하게 되자 많이 떠났어요.”

지금은 50호가 남아 40여 년 전에 비해 10호가 줄어든 셈이다. 현대 간척지에서 대규모 농지를 불하받아 벼농사로 전업한 주민은 극소수고 일부는 외지에서 농사를 짓기 위해 들어왔다. 50호 중 5가구의 주민이 현대농장에서 대규모 영농을 하는데 서부면에서 가장 넓은 경작지를 보유하고 있다.

“바다를 메우기 전에는 산막마을의 경지 면적이 서부면 29개 마을 중에서 25위였어요. 그러나 지금은 농토면적이 1위입니다.” 김종석 노인회장은 집집마다 농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니고 3~4가구가 대농이어서 그런 통계가 나온다고 말했다.

“나머지 주민들은 농토도, 돈도 없고, 주위에 경작할 수 있는 논밭도 없어요.” 장 이장도 현대농장에서 7만 평의 농사를 짓는 대농으로 A지구경작자협의회장을 맡고 있다. 그러나 간척지에서 이 만한 규모의 농사는 아무나 지을 수 없다. 갖춰야 할 농기계도 많고 남아도는 쌀값은 수지가 맞지 않아 정부가 다른 고소득 작물을 권장하는 현실에서 마을 사람들은 차라리 과거 바닷가에서 몸만 부지런히 놀리면 어패류를 채취해 돈 벌기가 쉬웠던 어업이 그리운 것이다.

지금 마을회관이 있는 곳에서 북서쪽 언덕 아래로 조금 내려가면 온통 모래사장이었고 거기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이제는 바다가 멀리 아득한 곳에 떨어져 신기루처럼 보일 뿐이다. 장 이장은 간척을 하기 전 산막마을 사람들은 상펄어장까지 나가 어업을 했다고 회고했다.

장정훈 이장

“바다를 막지 않았을 때는 썰물 때 상펄 쪽으로 물이 빠져나가면 상당히 넓은 갯벌에서 바지락도 캐고 소라도 캤어요. 그 때는 동력선이 없었기 때문에 어선들이 조류를 이용해 상펄어장까지 접근하기도 쉬웠죠. 아울러 밀물 때는 우리 마을 쪽으로 물이 들어와 상펄어장에서 조업하던 어선들이 접근하기 쉬운 데가 우리 마을이었습니다. 노 젓는 어선으로는 우리 마을에서 상펄어장에 갈 수 있는 조건이 제일 좋았습니다.” 그래서 산막마을 사람들은 2015년 태안군에 빼앗겼던 상펄어장을 홍성군이 되찾아 오면서 상당히 기뻐했다고 한다. 그러나 궁리 산막마을은 어업권을 받지 못했다.

“대법원에 헌법소원으로 상펄어장을 되찾았지만 홍성군이 특정인에게 관리권을 줬습니다.” 홍성군이 서부면 궁리어촌계에 소유권을 주면서 같은 행정리로서 궁리에 속하는 산막과 당곡마을은 제외시켰다는 것이 장 이장의 주장이다. 서부면에는 궁리를 비롯해 7개 어촌계가 있는데 상펄어장 관리권을 모두 같이 소유하고 있다. 장 이장은 궁리어촌계의 경우 궁리 4개 마을 중 산막과 당곡이 빠지고 원당과 하리는 상펄어장 어업권을 갖고 있다고 했다.

김종석 노인회장

“우리는 도대체 왜 빠졌는지 의아합니다. 상펄은 조상 대대로 지켜왔던 어장인데 우리만 빼앗겼습니다.” 산막마을 주민들은 군청에도 찾아가 하소연했지만 마땅한 해결책을 얻지 못했다고 한다. 궁리어촌계에 가입하는 방법뿐인데 그것도 호당 300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 하는 것이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그뿐만 아니다. 어촌계를 구성하려면 보령수협에도 200만 원의 가입비를 내야 하기 때문에 장 이장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상펄어장을 찾기 위해 홍성군이 세금으로 소송비를 다 지불했는데 왜 300만 원의 가입비가 필요합니까? 1인당 어머어마한 액수입니다. 홍성군 해양수산팀도 똑같은 이야기를 합니다. 돈을 내고 거기 들어가야 한다고….” 장 이장은 옛날부터 사용하던 어장을 사용할 수 없게 한 것은 너무 억울하고 불합리하다고 거듭 기자에게 하소연했다.

■ 한때 중단됐던 당제 부활시켜

노인회 유낙종 전회장

바다를 막은 후 좋아진 점은 없을까? 이에 대한 질문에 의외의 답변이 돌아왔다. “우리가 건강하게 산다는 거죠. 바다가 있었으면 뭐 잡느라고 오래 살지 못했을 거요.” 어업이 그만큼 힘들다는 뜻으로 매일 바다 일을 할 수 없는 한가한 지금 상황을 역설적으로 설명하는 말이기도 했다. 김종석 노인회장은 바다를 막은 후 돈을 만지기 힘들어 품 팔러 다니며 생계를 잇는 형편이라고 말했다.

그래도 옛날 만선을 기원하던 당제는 계속 지내고 있다. 천수만 방조제가 준공된 후 중단된 적도 있으나 2000년대에 들어서면서 산막마을 노인회가 나서서 제물을 차려놓고 간단하게 제사를 지내며 부활시켰다. 당제는 마을 북쪽 수령 400년이 된 소나무 아래서 지낸다. 산막노인회 유태연 부회장의 말이다.

“옛날 바다가 안 막혔을 때 정월대보름 거기서 무사안녕을 기원하는 풍어제를 지냈어요. 바다가 막히면서 중단됐는데 그 후 마을에서 사고가 많이 나 어른들이 다시 모시자고 나섰어요. 올해 15년째 정월 대보름날 마을에서 당제를 모셨습니다.” 이웃하고 있는 당곡과 산막마을이 같이 지낸다고 했다.

노인회 유태연 부회장

산막노인회는 65세 이상 노인이 35명이나 된다. 50호 70명의 주민 가운데 절반의 비중을 차지한다. 매월 1일 월례회로 하며 겨울철에는 매일 모여 회관에서 점심식사를 해서 같이 드신다. 지난해까지 노인회를 이끌었던 유낙종 전 회장은 81세의 나이에도 혈색이 좋은 얼굴이어서 건강 비결을 물었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비결은 뭐…, 농사 나 먹을 것 쬐끔 하죠.” 무리하게 너무 많은 일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는데 장 이장은 간단한 그의 대답에 보충설명을 했다.

“회장님은 아침저녁으로 운동 많이 하십니다.” 산막마을은 서로 친척과 사돈으로 다 가까운 혈육으로 얽혀 있다. 혈연관계가 없는 사람도 친척과 형제, 일가로 다 잘 지내기 때문에 마을 일에 협조를 잘 한다고 했다. 2012년에 발간된 서부면지에 보면 산막마을은 강릉 유씨가 16가구가 거주하고 있는데 그 밖에 많은 성이 김씨와 방씨다.

홍성읍까지 가는 버스는 하루 9대가 왕래를 해 비교적 대중교통은 좋은 편이다. 어르신들은 물리치료를 받기 위해 군청소재지나 갈산면 소재지의 병원에 잘 나간다고 했다. 홍성읍내까지 버스로 40~45분 정도 소요된다. 출향인사로는 최금손 전 광진구의회 의장과 안양에서 계란 유통을 하며 거부가 된 유영준 씨가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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