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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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로 나가기 위한 긴 여정을 시작하다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4.15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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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2>

서부면 판교리 원종회
복돌이와 함께 자신의 집 앞에서 포즈를 취해준 원종회 씨.

바다. 생각만 해도 낭만적이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에게 바다는 양식의 보고이자 삶의 터전이며 신령처럼 여기는 곳이다. 그런 바다에 삶의 도전장을 내고 어촌에 정착하는 사람들이 있다. 서부면 판교리 수룡동으로 귀어를 한 원종회(53)씨는 지난해 9월 이동식 목조주택을 짓고 정착했다. 서울에서 소프트웨어 개발 사업을 26년 동안 하던 원 씨는 처음에는 귀농을 생각했었다.

“이쪽 일이 워낙 사람 관리가 힘들고 경험도 많아야 하고 신경 쓸 것도 많고 어느 날 하기가 싫더라. 처음 귀농도 생각해 봤는데 3년 이내 수확이 안 나면 힘들겠더라. 답이 안 나오더라. 내가 평소 낚시도 좋아하고 물도 좋아하니 귀어를 해보자는 생각을 했다.”

처음에는 남해를 갔다. 귀어 상담을 하던 담당자는 생각보다 텃세가 심하니 귀농을 권했다. 아직 부모가 일산에 계신데 오고가기에는 좀 멀었다. 홍성은 안면도가 감싸주고 있어 안전하다는 생각과 서울과도 가까운 거리에 있어 선택했다. 남당리에는 마땅한 땅이 없어 수룡동에 땅을 사서 집을 지었다. “지금 생각하면 잘못 생각했다. 먼저 집을 짓지 말고 배를 타면서 승선 기록을 만드는데 더 신경을 썼어야 했다.” 그러나 그것도 생각만큼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귀어 심사를 받기 위해 이곳저곳을 다녀봤지만 뾰족한 해결책을 제시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저 정책만을 보여줄 뿐이었다.

“아무도 세세한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 없더라. 책상에 앉아 있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귀어를 하면서 가장 큰 애로점이다. 지난 가을에는 잠을 제대로 자지 못했다. 아는 건 없고 계획은 세우고 내려왔는데 심적으로 두려움이 컸다. 불혹도 넘긴 나이에 나 스스로 결정한 일인데 부정적으로 비치거나 다시 돌아가면 스스로 자괴감에 빠질 것이 분명하다. 그런데 귀어 심사에 떨어지고 나니 마음의 혹이 하나 떨어진 것 같아 오히려 마음 편하다.”

날이 풀리면서 원 씨는 집 안팎 곳곳을 돌보며 시간 날 때마다 붕어 낚시를 다닌다. 근처에 사는 아는 형님과 붕어찜과 소주 한 잔을 먹기도 하고 쪽파를 얻어오기도 한다. 평소 술안주 정도는 직접 해서 먹는 것을 좋아해 주방에 머무는 시간이 낯설지 않다. 가끔 아내가 내려오면 모든 음식을 원 씨가 한다.

“원래 사부작사부작 뭐를 하는 것을 좋아한다. 기타도 치고, 여기저기 손 보고, 먹고 사는 것만 해결되면 모든 게 좋다. 좋다. 그냥.” 지난해 귀어해서 지금까지 원 씨가 번 돈은 15만 원이다. 갈매기 똥을 치우고 번 돈 5만 원, 그 외 아는 사람 소개로 일한 것이 전부다.

“이번에 남당리 어촌계장이 배를 새로 지으면서 같이 나가기로 했다. 조업하는 일도 배워야 하고 승선 기록을 쌓아 내년 귀어 심사에 다시 넣어볼 생각이다. 그동안 뭐해서 먹고 살 문제가 남은 건데 뭐 어디 가서 돈 못 벌겠나 생각했는데 막상 와 보니 일할 데가 없더라. 가장 힘든 일은 쪼그려 앉아서 하는 일이다. 안 해보던 일을 하려니 몸이 힘든 건데 그것도 다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물에서 대하를 떼어내는 일을 하면서 장갑을 두 개나 꼈는데도 갯가제 앞발에 찔려 상처가 났다. 손에 난 상처는 시간만 지나면 쉽게 아문다. 그러나 마음의 상처는 잘 도닥이지 않으면 딱지의 두께가 두꺼워진다. 그 두께를 벗겨내는 일도 물론 혼자의 몫이다. 그래도 바다가 옆에 있어 조금은 위로가 되줄까 싶다. 바다로 나가기 위한 멀고도 긴 여정을 시작한 원 씨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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