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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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타요~”
  • 취재=김옥선 기자/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4.22 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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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청년들, 귀농·귀촌의 꿈을 실현하다<3>

구항면 지정리 정규실
사랑스러운 토마토들과 함께하는 작지만 큰 비닐하우스 안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정규실 씨.

인간은 살아가면서 약 세 번 정도 변화를 맞는다. 신체적으로 성숙해가면서 겪는 사춘기, 40대나 50대 즈음에 겪는 삶의 전환기, 그리고 노인이 되면서 느끼는 변화다. 물론 사람마다 조금씩 차이는 있다. 그러나 짧지만 긴 인생, 그런 변화도 없다면 무슨 재미로 살아가랴. 살아가면서 단 한 번의 실패도 경험하지 않았다. 대기업 직원으로 승승장구했고 남부럽지 않게 잘 살았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불어 닥친 외환위기를 피하기는 어려웠고 좀체 회복되지 않았다. 49살이 되던 해 스스로에게 파업을 선언했다. 나 자신에게 휴가를 주고 싶었다. 아내에게도 대놓고 말했다.

“나 그대로 냅둬!” 원도 한도 없이 여행을 다녔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겪는 배신, 뒷통수, 거짓말들에서 더 이상 아파하지 말고 자연과 같이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보자고 마음먹었다. 귀농학교를 다니고 그곳에서 알게 된 사람들의 집을 만들고 고치는 일을 하고 농가에 가서 일당도 받지 않고 품앗이로 일을 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달라졌다. 시골의 ‘시’자도 모르고, 노가다의 ‘노’자도 모르던 사람이 바로 나다.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 휴일에는 늘 소파에 누워 리모컨만 돌리던 사람이다. 그랬던 내가 드릴을 들고, 못을 박고, 흙을 만지고 산다는 것만으로도 놀라운 변화였다. 예행연습은 1년으로 충분했다.

2015년 금마면 귀농인의 집에 간단한 짐 몇 개를 꾸려 혼자 내려왔다. 3인3색 귀농교육을 홍성에서 받았던 것이 인연이 되었다. 처음에는 유기농 딸기를 생각했다. 막상 시작해보니 딸기와 나는 체질적으로나 성격상 맞지 않았다. 그 다음해 토마토로 종목을 바꾸었다. 사람들과 같이 농사를 짓던 중 그 중 비닐하우스 두 동을 임대해 혼자 힘으로 농사를 짓고 판로도 좋아 값도 잘 받았다. 자신감이 충천했다. 그러던 차 마침 구항면에 집과 비닐하우스 세 동이 임대로 나왔다. 사람들과 함께 하다가 나만의 혼자 힘으로 처음 해보는 농사였다. 그러나 지난해 결과는 대실패였다. 토마토 모종이 약했고, 기존 땅이 염류가 집적된 땅이었고, 내 관리 실수였다. 그러나 기 죽지는 않으련다.

50대 중반의 내 나이에 농사 지러 와서 큰 도박을 하고 싶지는 않다. 그저 내 한계 노동력에서 생산된 농산물에 대한 가격을 받고 실수하지 않으며 꾸준히만 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토마토를 키우기 위한 본격적인 농사에 들어갔다. 우리 마토가 좀 수줍음을 많이 타고 성격도 다 다르다. 어떤 놈은 기갈쟁이다. 자기 힘을 주체하지 못해 마구 뻗쳐 나온다. 어떤 녀석은 범생이처럼 곧이곧대로 올곧게만 자란다. 어떤 녀석은 약골이다. 똑같은 땅에서 똑같은 양분을 줘도 힘을 못 쓰고 네실거린다. 그러니 우리 마토들이 상처받지 않고 예쁘게 자랄 수 있도록 끊임없이 돌보고 가꿔줘야 한다. 마토들이 자신의 생명을 다하면 미니단호박을 키운다. 

이제 올해로 귀농한 지 4년째다. 그동안의 생활을 정리해보면 아직까지는 그럭저럭 잘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아닌 자연을 택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결국은 사람이다. ‘나는 자연인이다’를 택하지 않는 이상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더 잘 해볼 마음이 생긴다. 아직은 아내와 자식과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머지않아 같이 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혼자 살면서 밥도 잘 해먹는다. 그러니 걱정 하지 마라. 귀농해서 한 달도 못 버틸 것이라 얘기했던 친구 녀석들에게 지금도 꾸준히 술 잘 얻어먹고 있다. 우리 마토들만 잘 자라준다면 난 지금 아주 행복하단 말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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