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의 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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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심지
  • 이재인 칼럼위원
  • 승인 2018.04.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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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농협에 통장 정리차 들렸다. 창구에 앉아 있던 직원이 나를 가리키며 말했다.
“아저씨, 이리 오셔요.”
“아니, 아저씨라뇨?”
나는 이외의 불쾌한 음성으로 말했다.
“그럼 무엇이라 하나요?”
“글쎄 칠십이 넘은 게 자랑은 아니지만 어르신 혹은 선생님 아니면 고객이라 하면 안 되겠습니까?”

나는 큰 금액의 돈을 농협에 기탁하지는 않았으나 고객으로서 당당한 농협 회원이다. 그런데 아저씨라는 어울리지 않는 호칭을 듣고 보니 뭔가 홀대를 받았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다. 도시 은행들의 사분사분한 서비스를 받아온 터라 시골 농협 직원의 대인 자세가 어딘가 고만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사람이란 친절해서 손해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누구든지 겸손하고 온유하면 신뢰를 받고 평화를 획득할 수가 있다. 미국의 어느 40대 사내가 소탈한 청바지 차림으로 은행에 와서 주무자를 찾았다. 마침 주무자는 외출 중이었다. 반드시 만나 상의할 일이 있어 고객센터에서 한 시간을 무료하게 기다렸다. 설마 돌아오겠지 하고 또 30분을 기다렸지만 만나야 할 주무자는 나타나지 않았다. 사내는 은행을 나서며 주차권에 확인 스탬프를 찍어 달라고 요청했다. 스탬프가 찍힌 확인서가 없으면 장시간 주차료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은행 여직원은 “당신은 우리 은행에 일을 본 일이 없잖아요?”라며 단호하게 거절했다. 사내는 속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면서 총알처럼 은행을 나섰고 그 다음날 양복 차림으로 나타났다.

“내가 예금한 돈을 몽땅 인출해 주시오.”
“이렇게 많은 액수를요?”
“몽땅 다 주세요.”
사내는 수백만 달러를 예치한 숨은 실력의 고객이었다. 은행 직원은 놀랐다. 사내는 예탁한 달러를 몽땅 찾아 다른 은행에 넣었다. 이 청바지 사내가 그 유명한 IBM사장, 존 에이커였다.
지금 시대는 모든 게 기계화되고 전자화되어 세상을 재고 그것을 개량하는 시대다. 그렇다고 권좌에 앉아 국민을 깔보고 고객을 홀대하면 그것이 크나큰 바위가 되어 내게로 굴러들어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르고 사는 경우가 많다. 작은 친절과 세심한 배려가 태산을 만든다는 교훈을 우리는 잊고 사는 경우가 많다. 지금도 나는 그 농협의 직원에게 말해주고 싶다. 은행 금고는 쇠뭉치로 돼있지만 사람의 입질에 오르면 땡볕에 아이스크림이라고 말이다.
이런 일화가 있다. 나폴레옹이 부관과 함께 빈손으로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갔다가 주인한테 망신을 당했다.

“돈을 내고 가셔야 합니다.”
“깜박했네요.”
변장한 나폴레옹을 모르고 주인이 냉대하며 숙박비를 강하게 요구했다.
“안됩니다. 저 사람을 인질로 잡고 돈을 가져오십시오.”
난감하게 서 있는 나폴레옹 옆에 엉거주춤 서 있던 사환이 말했다.
“옷은 초라하지만 사람 생김새가 여관비 떼어먹을 사람이 아니니 외상으로 보내주시지요. 이 놈이 책임을 지겠습니다.”
나폴레옹이 부관에게 명령했다.
“이 게스트하우스를 이 사환에게 주게나.”
지금도 프로방스에 가면 나폴레옹 땡스모텔이 성업 중에 있다고 한다. 깊이 생각하게 하는 일화다. 

이재인<충남문학관장·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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