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바람피운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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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바람피운 이야기
  • 조남민 주민기자
  • 승인 2018.05.31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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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박목월(본명 박영종, 1915~1978)은 경주에서 태어났다. 어릴적엔 서당에서 한문을 공부하고 대구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며 습작기를 가졌다. ‘송아지 송아지 얼룩송아지 엄마소도 얼룩소 엄마 닮았네’는 이때 씌여진 동시다. 1940년에 등단해 많은 작품활동을 하며 문단의 주목을 받았다. 정지용으로부터 ‘북에 소월(素月)이 있다면 남에는 목월(木月)’이 있다고 찬사를 받을만큼 빼어난 시를 썼고 조지훈 박두진과 함께 청록파 시인으로 활동했다.

한국전쟁 당시 부산으로 피난 내려와 있던 박목월은 운명의 여대생을 만나 그만 사랑에 빠지고 말았다. ‘슬픔과 안타까움이 어린 애절한 시선으로 거의 매일같이 목월의 마음의 문을 두드렸다(이형기-『박목월 평전』중).’ 그가 38살이 되던 어느 해 늦가을, 가정도 팽개치고 제주도로 내려가 살림을 차렸다.

겨울이 되자 서울에 있던 부인은 보따리 두 개를 가지고 제주도로 그들을 찾아갔다. 차가운 겨울 방에서 남편, 부인 그리고 여인의 3자 대면자리가 만들어졌다. 부인은 보따리를 내밀며 곧 한겨울인데 힘들고 어렵지 않느냐며 옷가지와 돈 봉투를 놓고는 조용히 돌아갔다. 머리채를 쥐어 잡고 싸울 줄 알았던 그들은 부인이 돌아가고 나서 하염없이 울었다. 이후 박목월과 여인은 이별을 결심했다. ‘기러기 울어 예는 하늘 구만리, 바람이 싸늘 불어 가을은 깊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 이때 만들어진 시가 <이별의 노래>다.

‘한낮이 끝나면 밤이 오듯이 우리의 사랑도 저물었네. 아아 너도 가고 나도 가야지(2절), 산촌에 눈이 쌓인 어느 날 밤에 촛불을 밝혀두고 홀로 울리라. 아아 너도 가도 나도 가야지(3절).’
애절한 심정이 가사에 그대로 묻어나는 이 시는 작곡가 김성태에 의해 가곡으로 만들어졌다.
여인을 떠나보내는 날, 제주항에는 박목월과 양중해가 있었다. 양중해(1927~2007)는 당시 국어교사였는데 박목월과 같이 문학활동을 하고 있었다. 애틋한 두 남녀 간의 이별 장면을 목격한 그는 시를 써서 동료 음악교사인 변훈에게 보여줬고 그는 이 시에 곡을 붙였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오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 실은 저 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떠나가는 배>라는 이 시는 제주항 인근에 우뚝한 시비로도 서 있다.

한편 서울로 돌아온 박목월은 다시 가정으로 복귀해 안정된 생활을 하며 많은 활동을 했으나 평생 그녀를 잊지 못했다. 그가 고혈압으로 쓰러지기 얼마 전 그녀의 집을 방문하고는 ‘백발이 되고 이승을 하직할 무렵에 한 번 더 만나보려니 소원했던 사람을 이제 방문하게 되었다. 덧없이 흐른 세월이여. 끝없이 눈발이 내리는 구나’ 라는 글을 남겼다. 

박목월이 갑자기 생각난 건 송홧가루 때문이다. 송홧가루 날리는 계절이면 어김없이 <윤사월>이라는 시와 함께 박목월의 로맨스가 떠오른다. 시인의 바람이 작품으로 ‘결실(?)’을 맺었다고 해도 바람은 바람일 뿐이다. ‘송화가루 날리는 외딴 봉우리/ 윤사월 해 길다 꾀꼬리 울면/ 산지기 외딴 집 눈 먼 처녀사/ 문설주에 귀 대이고 엿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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