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나와 익명의 공간, 홍성 버스터미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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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와 익명의 공간, 홍성 버스터미널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06.16 09: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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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1주년 기념 특집
홍성터미널 간판은 어디에도 없다. 그저 버스가 오고 갈 뿐이다.

이동하기 위해서 잠시간 머무르는 공간
불안한 공간에서 익숙한 공간으로 이동
공간의 얼굴 사람들 얼굴 변화시키기도

김수범 씨가 서둘러 집을 나선다. 여름용 회색양복에 중절모를 눌러 쓴다. 양복이 오래되기는 했지만 깨끗하면 됐다. 아무래도 서울 병원 가는 날은 옷차림에 신경이 쓰인다. 역시 오래된 검은색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서 서둘러 택시를 탄다. 오전 6시 30분 서울 강남터미널 행 버스를 타기 위해서다. 평생 뚜벅이 인생으로 살아온 수범 씨는 택시를 타고 홍성터미널에 도착해 매표소에서 표를 끊었다. 요즘은 휴대전화만 대면 승차도 되고 인터넷으로 예매를 하다 보니 조금만 늦으면 좌석을 얻기가 하늘의 별따기다. 다행히 좌석이 있었고 의자에 앉아 잠시 숨을 고르니 승차 시간까지 30분이 남았다. 이리저리 살펴보니 자판기 하나가 보인다. 진하고 달큰한 커피 한 잔으로 남아 있던 잠을 흔들어본다. 성질 급한 수범 씨는 승강장과 대합실을 시계추마냥 왔다 갔다 한다. 25분이 되자 버스가 들어온다. 냉큼 버스에 올라 무릎에 가방을 올리고 안전벨트를 맨다. 창문 커텐을 치고 서둘러 눈을 감는다. 이제 두 시간 뒤면 서울에 도착할 것이다.
 

저마다의 시간으로 공간을 견디어내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 터미널이다.

터미널은 한 공간에서 다른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 잠시 머무르는 곳이다. 터미널에 머무는 사람들은 그 누구와도 말을 섞지 않으며, 그저 시간의 움직임과 함께 한다. 어떤 이는 버스 시간 1분 전에 도착해 헐레벌떡 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너무 일찍 도착한 나머지 대합실 의자에 앉아 그저 시간이 지나가기를 기다리기도 한다. 그 모든 모습이 각각 다르지만 머무는 이유는 모두 같다. 어딘가로 향하는 것이다. 이동하는 그 찰나의 시간이 머무는 곳, 터미널이다. 
 

1963년 터미널.

홍성터미널이 정확하게 언제 생겼는지 기억하는 사람이 불행히도 없다. 그저 사진 자료로만 남아 있을 뿐이다. 1963년 사진 자료를 보면 그 당시는 차부라 불렀고, 그리 많지 않은 버스와 택시들이 승객을 기다리고 있다. 현재 고암리에 위치한 홍성터미널이 현재 위치로 이전한 것은 2000년 8월 31일이다. 정확하게 기억하는 사람은 없지만 훨씬 더 이전에는 홍성읍내 서부약국 맞은편 샤르망안경 자리에 있던 터미널이 현재 홍성농협하나로마트 자리로 이전했고 다시 고암리로 이전했다. 충남고속 관계자는 “예전 하나로마트 자리에 있었을 때는 대우건설 계열의 터미널이었는데 IMF이후 법정관리에 들어가게 됐고, 이후 공개입찰에 들어갔다”며 “현재 터미널 건물의 1층부터 4층은 (주)MGL 소유이며, 4층부터 8층은 광천 대길산업 소유다”라고 설명한다. 

1963년 차부.

 

버스 시간까지는 아직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았다. 피곤한 몸을 짐보따리에 의지해 기대고 눈을 감아본다.

터미널의 모습은 크게 두 가지 모습을 보인다. 고속버스를 타고 멀리 이동하는 사람과 군내버스를 타는 사람들이다. 먼 길을 가는 사람들은 캐리어를 옆에 두고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며 찰나의 시간을 견디어 낸다. 반면 군내버스를 이용하는 승객 대부분은 어르신들이다. 승강장과 대합실을 왕복하며 자주 오지 않는 버스를 확인하고 또 확인한다. 지루한 시간이 지나면 익숙하고 편안한 집에 당도할 것이다. 
 

터미널 작은 식당에서 잠시 허기진 배를 달래기 위해 김밥 한 줄을 먹고 이제 다른 공간으로 이동을 준비한다.

갈산면 갈오리에 사는 김덕자 씨는 버스가 하루 세 번 밖에 다니지 않아 시간 맞춰 다니느라 허겁지겁 일을 마치게 되거나 시간이 너무 많이 남아 대합실에 앉아 잘 들리지도 않는 TV만을 멍하니 쳐다본다. 오늘은 미용실에서 파마를 하고 터미널로 오는 길에 남편과 함께 등을 기대고 앉아 있을 수 있는 대형 쿠션을 사는 바람에 짐이 커졌다. 다행히 터미널에는 10분 전에 도착했다. 숨을 고르는 사이 운전기사가 시동을 건다. “이봐유, 나두 같이 가유.”

김경자 씨가 수원에 사는 딸네 집을 다녀오는 날은 짐도 많을뿐더러 기다리는 시간이 반이다. 홍성역에서 기차를 타고 터미널로 오면 결성면으로 들어가는 버스를 타기 전까지 꼬박 한 시간을 기다려야 한다. 뭐 딱히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그저 의자에 앉아 있는다.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말을 건다.
“워디 갔다 오나유?”
“왜유?”
“아니, 그냥….”
이상한 사람이다. 슬그머니 고개를 숙이고 모른 척 한다. 잠시 머무르는 공간에서 누군가와 말을 섞는 일은 좀체 일어나지 않는다. 혹 말을 건다 해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당할 수 있다. 아는 사람을 오랜만에 만나는 경우는 다르지만 말이다. 철저하게 익명성이 보장되는 공간 또한 터미널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불안한 마음으로 버스에 오르면 이내 익숙하고 편한 공간인 집에 도착하게 된다.

길수는 주말을 이용해 홍성으로 배낭여행을 가기 위해 간단하게 짐을 꾸렸다. 인터넷으로 게스트하우스를 예매하고, 휴대전화 앱으로 버스 승차권도 끊었다. 서부면을 방문할 예정인데 일단 홍성에 도착하면 알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달리 알아보지 않았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뭔가 삭막한 분위기다. 봄인데 그 흔한 팬지꽃 하나 보이지 않고 브랜드의류 상가들과 늘어선 택시만이 보인다. 일단 화장실에 들러 볼일을 보고 나오니 옆으로 롯데마트가 있다. 일찍 도착한 탓에 아직 문을 열지 않았다. 편의점이 있어 캔커피와 김밥을 사서 헛헛한 속을 달래본다. 이리저리 둘러보다 매표소에서 군내버스 시간을 물어본다. 밖으로 나가보라고 한다.

밖으로 나오니 고속버스 끝으로 홍주여객 버스가 보인다. 버스 시간표가 크게 붙어 있지만 초행인 길수로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물어볼 곳이 없다. 고속버스 앞에 있는 사무실 같은 곳으로 가 물어보니 자기네는 고속버스라 군내버스 노선은 잘 모른다고 한다. 머릿속이 복잡하다. 휴대전화로 검색해도 나오지 않는다. 버스 기사에게 물어 겨우 서부면으로 가는 시간을 알았다. 한 시간 뒤에 출발한다고 한다. 돌아오는 시간까지 확인하고 나니 그제야 안심이 된다.

충남고속 관계자는 “홍주여객 승차 주민에게도 친절하게 설명해야 하는데 대기실만 있고 안내인이 없어 시간을 몰라 우왕좌왕하는 경우가 많으며, 분실물 같은 경우 처리도 곤란하다”며 “군에서 손실보상금을 지원해주면 안내 직원을 두고 마을 안내라던가 차량 고장 등으로 인한 버스 지연에 대해 안내를 해주면 좋겠다. 우리는 모든 마을을 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일일이 다 설명해 드리기가 어렵다”고 설명한다. 이어 “강남터미널을 이용하는 고객들의 요구에 맞춰 7월부터 강남행 버스를 증차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오랜만에 나온 읍내 마실길에 어쩌다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여행이 끝난 사람이 버스에서 내려 가장 먼저 낯선 풍경을 마주하는 공간이 터미널이다.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터미널이 변두리에 위치한다. 변두리에 도착해 중앙인 시내 중심가로 이동하게 마련이다. 다시 말하면 불안한 희망의 공간에서 익숙하고 편안한 공간으로 이동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는 곳이다. 우리 시야의 밖에는 터미널에 오래 머무는 사람도 있다. 좁은 매표소에서 티켓을 판매하는 사람, 터미널 이곳저곳을 다니며 쓸고 닦는 청소원들, 고속버스 관리 사무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그들에게 터미널은 잠시 머무르는 찰나의 덧없는 공간이 아닌 먹고 살아가는 삶의 터전이기도 하다.

지역의 관문으로서의 터미널은 그 지방의 얼굴이다. 자신을 드러내거나 멋있고 화려한 외관보다 그 지역만의 특색과 정체성을 담을 수 있는 얼굴을 가지는 것이 필요하다. 공간의 얼굴은 그 공간에 깃든 모든 사람들의 얼굴을 변화시키기도 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홍성역.
1990년대 홍성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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