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년의 식탁위에 놓인 토마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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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식탁위에 놓인 토마토
  • 유선자 수필가
  • 승인 2018.06.17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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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꽃이 피기 시작하는 오후 강렬한 태양 아래 잘 익은 토마토를 한 소쿠리 식탁위에 놓으니 시각만으로도 배가 부르다. 살면서 풋 토마토와 잘 익은 붉은 토마토를 가려내는 감각을 익히고 맛있는 토마토를 음미하면서 여유로움을 찾는 시간은 언제일까? 내게 있어서 “어떻게 하면 밥 한 술이라도 더 먹여 보낼까? 조금 먹어도 영양소도 풍부하고, 소화도 잘 되고, 학교 수업에 지장 없는 음식으로 무엇이 있을까?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즙을 내게 된 시점이었다. 살림의 지혜라기보다 풋 토마토에서 익은 토마토로 가는 과정에서 토마토가 빨리 숙성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 시절이다.

가정을 꾸린 후 결혼을 하면 모든 것이 척척 해결 될 것 같은 착각 속에 한 번쯤 빠져 본 일이 없을까? 음식 만들기, 살림 요령 있게 잘 하기, 시댁 부모 잘 모시기, 친 인척들과 잘 지내기 등 결혼 후 아내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이 그렇게 많은지 모르고 결혼을 했다. 여성의 정체성 보다 아내라는 자각을 먼저 해야 하는 결혼 생활은 일가를 이룬 집안에서 다양한 상황에 대처하는 상식과 지식을 학교에서 배우지 않은 전혀 새로운 영역이었다. 시댁이라는 또 하나의 세계는 신세계와 다름없었지만 서툴고 어설픈 것은 기혼 여성들이 겪는 과정이리라 생각했다.

인생의 사추기(思秋期)에, 불혹을 지난 나이, 지천명을 아는 나이 이기도 한 중년기에 마음을 써야 할 일은 많다. 옛날 성인은 불혹을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 시기’로, 요즘 사람들은 불혹을 ‘불같은 유혹의 시기’로 빗대기도 하지만 그만큼 중요한 시기임을 말함이리라. 세상 살아가는 일쯤이야, 나이 먹는 만큼 뚜렷해지고, 밝아지고 지혜로워지겠지 자신만만했었는데 쉽지 않았다. 모르는 것이 여전한 까닭에 더 갈등해야 되고, 더 힘들어야 하는 부분도 많아져 생각도 복잡해지고, 아이들 교육까지 발생하니 결혼도 자격증 시험 보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여자가 아닌 일가를 이룬 사람의 역할은 한두 가지로 해결 될 일이 아니었다.

강의를 다니면서 어머니들과 많은 이야기를 나눠 보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압권이다. 물론 우리나라 전체 여성이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이제 한국의 여성들은 더 이상 자신의 삶에서 불행을 용납하려 하지 않는다. 행복해 지고 싶은 마음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희망사항이며, 분명한 것은 예전의 어머니들과 달리 오늘의 어머니들은 보다 당찬 자신의 의사를 표출할 줄 안다. 무조건적인 자기희생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사를 지니고 있다. 현대의 어머니들에게 예전의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의 사고방식을 기대 한다는 것은 날 벼락 같은 말이다. 시대에 뒤떨어진 사고방식의 소유자로 낙인찍힐 판이다. 무엇이 이렇게 어머니들을 많이 변하게 만들었고, 변화 시켰을까?

비움과 채움의 교차점이기도 한 중년기, 삶에 대한 희로애락을 체험 할 수 있는 시기가 바로 중년기다. 몸이 넉넉해지는 만큼 마음도 너그러워지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는 것도 안다. 하지만 이 또한 마음대로 안 된다는 것도 안다. 살아온 시간만큼 관조하는 안목도 키워 왔지만 역시 용기가 필요한 일도 많고 만만치 않다. 철이 든다는 것, 나이 든다는 것, 지식을 더해 가는 일 또한 제2의 정체성을 찾기 시작하는 시기가 중년이다. 부모와의 이별로 삶과 죽음에 대해서 수용하고 살아야 하는 것도, 중년의 나이다. 중년의 그녀, 거울 앞에 서서 두 배로 늘어난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나이를 바라본다.

바바라 핸드 클로(Barbara Hand Clow) 여사는 ‘거룩한 성性의 빛- 중년의 위기에 찾아오는 쿤달리니’라는 저서에서 “인간은 30대에 형성되고, 40대에 변화하며, 50세에 완성 된다.”고 중년의 힘을 강조하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해 수명은 늘고, 중년의 에너지는 자신의 행복을 찾고 자아의 탐색을 통해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완성해야할 시기다. 어디 그 뿐일까? 부지부식 간에 터득한 삶의 정보도 남은 삶을 지혜롭게 살아가는 방법으로 승화시켜야 한다. 살아온 날들에 자부심을 갖고 스스로 행복지수를 높여 가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그대를 위한 붉은 토마토는 오늘도 식탁위에서 아름답게 빛을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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