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월산 달밤
상태바
백월산 달밤
  • 최복내 <숲속의힐링센터 숲 해설가>
  • 승인 2018.06.28 09:1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전원의 삶과 비교되기 마련이다. 도시는 새로 지어진 콘크리트 건물처럼 산뜻한 것 같기도 하지만 바라볼수록 삭막하고 멋없는 도시의 그것들, 그러나 우리 홍성에는 백월산이라는 영산이 우리와 함께 고락을 같이 하고 있다. 더구나 달빛이 고운 밤 호젓한 백월산 기슭을 찾아 오솔길을 걸어보라. 달빛은 에테르처럼 정묘하게 공간을 채우고 매혹하는데, 사람들은 왜 지붕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가. 삶의 무게를 느낄 때, 늘 오르내리던 백월산이 향긋한 풀내음과 함께 영롱하게 다가온다. 달 밝은 밤에 걸어보는 혼자만의 호젓함, 초저녁 까지만 해도 구름에 가려 희끄므레 한 달이 영롱한 빛을 더해가니 온 세상이 더 밝아지는 느낌이 든다.

산길을 걸어갈수록 주위의 공기가 바위로 변하는 듯 무거운 압박감을 가해 온다. 발밑에서 골짜기가 달빛을 받으며 입을 쩍 벌리며 굴러 떨어질 것 같은 착각이 인다. 낮에는 그렇게 다정하던 나무들이 어둠에서 갑자기 밤의 편이 되어 시커먼 활개를 펼치고 무서움을 토해낸다.
낮에 이곳 오솔길을 따라 걸어서 산책을 해 본적이 있어 밤이긴 하지만 달빛을 벗 삼아 걷는 것이 그리 생소 하지만은 않은 달밤의 산책이건만… 어찌된 일일까? 나무와 나무사이의 검은 공간들이 왜 그리 낯선지 모르겠다. 전에는 이러지 않았다. 이보다 더 깊은 산고개도 한밤중에 혼자 예사로 넘었는데. 계곡 건너 높은 산이 달빛에 울둑불둑 한 굴곡을 드러내며 사람을 내리누른다. 부엉이의 텅 빈 울음소리가 검은 적막을 깨트려낸다. 신비의 나라에라도 찾아들어 처음 보는 기이한 광경을 대하는 것 같다. 이것은 이 세상의 것이 아니고 혹시 마음속의풍경이 아닐까? 어쩌면 나는 지금 자신의 마음속을 걸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무심코 세상을 살아오면서 나는 무슨 고비에 이르면 으레 그랬다. 찬찬히 사태를 바닥까지 캐 보는 일이 그리 많지 않았다. 그것은 마음속에 자신도 모르게 무슨 커다란 암벽 같은 것이 가로막고 있어서 생각의 발길이 그 가까이에 이르면 왠지 얼른 돌아서 버리게 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무서움이란 어두워 잘 보지 못할 때 이는 것일까? 그것이 가령 직장이라면 그 속에 흐르는 공기를 못보고 사람들의 내면을 생각 않을 때 거기서 불안을 느끼는 것일까. 밝은 달빛이 산기슭을 파랗게 물들이고 있다가 갑자기 몰려온 검은 구름에 자취를 감추고 울창한 숲에 가린 희미함만이 까만 어둠의 바다가 들어차 사물이 잘 보이지 않는다. 나는 더듬거리며 걸어갔다.

그러다가 마음도 생각도 무서움도 다 달빛 속에 녹아 버리고 의지 덩어리만 남아 고갯길을 뜻도 없이 가고 있다. 그때 괴상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려와 나의 이상과 상념을 깨게 한다.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한밤중에 혼자 이 산속을 거닐고 있을까. 그러나 어둠속에서는 용건도 가족도 일도 현실성을 잃고 꿈같이만 보여 생각이 잘 잡히지를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라도 되돌아갈까 하니 저 아래 불빛에서 또 일상의 냄새가 느껴지고, 오늘의 용건들이 살아난다. 나는 그것을 눈앞의 공허 속에 열심히 그려 넣으며 또 길을 간다. 그것이 아름답고 매력적인 목적이었다면 어둠의 암벽이 훨씬 쉽게 물러났을 것이다. 나는 산을 오르기보다 오늘의 목적이 더 달라붙는데 더 힘을 쓰며 산을 간다. 날맹이를 바삐 지나치려다가 잠깐 발을 멈추고 구름에 매달려있는 달을 본다. 나는 밤의 무게를 한 몸으로 받치고 서서 삶도 죽음도 목적을 잃으면 무서워진다고 속으로 말했다.

최복내<숲속의힐링센터 숲 해설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