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로망 없고 지금은 홍성이 엄마품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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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도시 로망 없고 지금은 홍성이 엄마품이죠!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10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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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함께 홍성 사람, 다문화 가족 만세 <8>

홍북읍 신경리 황연옥
중국에서 대도시에서만 살았던 연옥 씨는 올해 홍성 생활 15년째다.

중국에서 대도시 생활만 했던 황연옥(43) 씨는 정작 한국에 와서 지방의 소도시 생활을 하고 있다. 지금 내포신도시에 살고 있는 그녀는 어릴 때 고향이 연길이다. 연길은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주도로 인구가 50만 정도 되는 중소도시다. 1975년생 연옥 씨는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호텔에 취직했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일찍 그만두고 베이징으로 갔다. 중국에서 변방이나 다름없는 연길에서 수도 베이징까지 가는 길은 험난했다. 기차만 34시간 타고 가야 했고, 베이징에 가서도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스무 살 연길 처녀는 그런 불안과 엄청난 모험을 각오하고 수도에서 꿈을 펼쳐보고 싶었다.

베이징에서 그녀가 처음 얻은 일자리는 식당 홀 서비스였다. 그 후 성실히 식당일을 해서 모은 돈으로 옷가게를 차려 운영하기도 했고, 한국 여행객들을 위한 가이드도 하는 등 그녀는 7년 동안 점점 세련된 베이징 여성으로 성장했다. 또 한 가지 수도에 살면서 얻은 가장 큰 소득은 표준 중국어를 배운 것이었다. 그 동안 조선족 사회에서 조선어와 함께 배운 중국어로 한족과 소통도 했지만 방언이 심했다.

할아버지의 고국 한국에 대해서는 여행 가이드를 하면서 잘 알게 됐다고 한다. 한국 여행객들을 자주 만난 것이 계기가 됐는데 중국에서도 만족하며 살던 그녀는 굳이 가서 살고 싶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러나 베이징을 떠나 7년만에 고향에 돌아간 그녀에게는 한국으로 데려갈 나무꾼이 기다리고 있었다.

“연길에서 남편을 만나게 됐어요. 그 때 남편은 사업 때문에 연길에 와 있었죠.” 한국 남자와 사랑에 빠진 그녀는 다시 고국으로 떠나는 남편을 따라가지 않을 수 없었다.

“처음에는 안 가려고 했습니다. 우리나라(중국)도 좋았기 때문에 가기 싫었는데 사랑의 힘이 저를 한국으로 이끌었습니다.” 막상 남편과 결혼해서 처음 한국생활을 시작한 곳은 서울도 아니고 중소도시도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살아본 적이 없는 강원도 산골이었다.

“중국에서 대도시생활만 했기 때문에 시골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적응이 안돼 여권을 갖고 떠나려고 한 적도 있었죠. 하루 버스 4대가 다니는 완전 촌동네였으니까요.” 그녀는 고민 끝에 적응해서 살아 보겠다고 마음을 바꿨다. 남편은 축산과 관련한 일을 했기 때문에 도시 근처에도 살 수가 없었다.

“제일 처음 운전면허부터 배웠죠. 남편이 보내줬습니다. 새벽 5시 30분에 남편 밥해 주고 버스를 1시간 타고 나가 문막읍에서 운전을 배웠는데 15일만에 운전면허를 땄습니다. 그 다음부터는 가고 싶은 곳을 어디든지 다니기 시작했죠. 혼자서 마트도 가고….”

1년 후 그녀는 예산군 덕산으로 직장을 따라 이동하는 남편과 같이 나왔다. 덕산에 4년간 살면서 첫째와 둘째 아이를 낳고 2003년 10월 비교적 생활여건이 좋은 홍성읍으로 이사했다. 홍성에서도 셋째와 넷째를 낳았다. 네 명 모두 딸이라고 한다. 내포신도시에는 2016년 4월 새로 지은 아파트를 구입해 이사했다. 처녀시절부터 대도시에 사는 것이 로망이었던 연옥 씨는 정작 한국에 와서 서울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채 올해 15년째 홍성에서 살고 있다.

“지금은 서울보다 여기가 더 좋아요. 일단은 도로가 뚫려 있어 좋습니다. 새 집도 좋지만 향후를 생각하면 신도시가 좋아 이사를 했습니다.” 중국어 열풍이 홍성에도 불면서  고교 졸업 후 베이징에 나가 7년간 활동하면서 익힌 표준 중국어가 연옥 씨를 유명 강사 반열에 올려놓았다. 

“요즘 수업 스케줄은 많은 편이 아니지만 월 200만 원 정도 법니다. 아이들은 내가 저녁에 늦게 들어와도 당당히 일하는 엄마가 멋있다고 합니다.” 중2부터 초6·4·1학년 네 아이들은 독립심이 강하고 밥도 잘 챙겨 먹는단다.

“큰 언니가 동생들 잘 챙겨줍니다. 조선족 어머니지만 자랑스럽게 여깁니다.” 이제 홍성은 그녀에게 따뜻한 엄마 품이라고 한다. 어딜 가도 돌아오는 길에 홍성을 가리키는 이정표를 보면 그렇게 반갑단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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