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도 고객으로 잘 모셔야 회사 성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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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원도 고객으로 잘 모셔야 회사 성장
  • 취재=허성수/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07.28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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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향인 인터뷰<9> 프라임카고 심재훈 대표이사

미국계 물류회사 15년간 근무하다 2001년 설립
2007년 덴마크 여왕 내한 당시 한국대표로 참석
내년 홍동향우회 창립 50주년 기념 어깨 무거워


2001년 국제물류 전문기업으로 (주)프라임카고를 설립한 심재훈 대표이사는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 지금 전 세계 100여 개국에 거래처를 확보함으로써 이 분야에 선두주자로 질주하고 있다. 심재훈 대표는 금당초(20회), 홍동중(4회), 홍성고(34회)를 졸업한 출향인으로서 몹시 바쁜 가운데서도 현재 재경홍동향우회장도 맡는 등 고향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지난 6일 본지는 서울시 마포구 합정동의 한 주택가에 자리잡은 프라임카고를 찾아 심재훈 대표와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 덴마크 본사 있는 세계적 네트워크
-프라임카고는 어떤 회사인가?
“덴마크에 본사를 둔 프라임카고는 전 세계 100여 개 국에 350여 개 지점이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는데 한국지점으로서는 우리가 유일하다. 우리가 기업에서 의뢰받은 물건을 보내면 우리의 네트워크를 통해 필요한 회사에 보내준다. 어차피 우리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일하니까 혼자 할 수 없다. 프라임카고는 본사 회장이 덴마크 경제사절단에 포함돼 한국을 방문할 정도로 막강한 회사다. 그만한 백그라운드가 있어서 사업하기가 나은 편이다. 흔히 물류회사라고 하면 DHL이나 페덱스를 떠올리기 마련인데, 그런 곳에서는 소량택배를 취급한다. 하지만 우리는 택배가 아니다. 대기업이나 중소기업이 주 거래처이고, 무역회사가 주 고객이다. 어마어마하게 큰 시장을 갖고 있다. 대기업에서 생산한 제품을 대량으로, 몇 톤 되는 화물을 취급한다. 대기업이 자체 계열사로 이 같은 물류회사를 두기도 하지만 공정거래법 상 일정 이상의 물건은 다른 회사를 통해 보내야 한다.”

-사옥은 아담하게 잘 지었는데 언제 신축했나?
“10년 전에 지었다. 회사 설립 후 7~8년 됐을 때 사옥을 신축했다.”
-어떻게 이런 분야를 개척하게 됐나?
“원래 나는 미국계 물류회사에서 15년간 근무하다가 프라임카고를 설립했다. 내가 물류회사에 처음 근무할 때만 해도 외국의 물류회사가 국내시장을 전부 선점하고 있었다. 나도 미국계 회사에 근무했는데, 당시 국내 회사는 역사가 짧아 상대가 안 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우리나라 대기업에서도 자회사로 물류회사를 만들기 시작했다. 지금은 국내외 물류회사들이 많이 평준화됐다. 이 분야는 부침이 심해 수명이 짧고 경쟁이 치열하다. 30년 전 20여 개 업체였던 것이 지금은 3000개가 넘는다. 그 중의 3분의1이 망하고 실제 운영하는 곳은 1500개 정도로 추산되고 있다. 나는 2001년에 설립했는데 IMF 말기였던 데다 미국에서 9·11이 터져 힘들었다. 기존 미국계 회사에서 배웠던 노하우를 활용해 국내 대기업과 외국계 글로벌 업체를 많이 상대하며 거래처를 확보했다. 내가 백스글로벌이라는 미국계 회사에 근무할 때는 국내 업체들한테 엄청난 물류비를 절감할 수 있도록 해줬다. 한국계 회사들한테 항의를 많이 받았을 정도로 저렴하게 서비스했다. 백스글로벌은 미국에서 자체 비행기도 갖고 있었다. 지금은 딴 데로 넘어갔지만 미국에서 가장 큰 회사였기 때문에 운임경쟁력이 엄청 났다. 우리 회사는 항공사나 선박을 갖고 있지 않아 중간 대리점 역할을 한다고 보면 된다.”

-프라임카고 덴마크 본사에서 지원을 많이 해주나?
“프라임카고 한국지점을 개설할 때 덴마크 본사에서 회장님이 오셨다. 그러나 지원 같은 것은 없다. 2007년 덴마크 여왕 내한 당시 한국대표로 참석해 국위선양에 한몫을 한 적이 있다. 그 때 나는 물류전문가로서 ‘희망코리아’라는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기도 했는데 FTA체결에 따른 물류업체의 역할과 방향을 제시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지금은 거래처가 얼마나 되나?
“3000개 정도 된다. 1년에 한 번 짐을 싣는 데도 있고, 몇 달에 한 번 싣는 데도 있다. 인천과 부산에 창고가 다 있다. 물론 자체적으로 창고나 차량을 다 가질 수 없어 임대해서 쓰거나 아웃소싱을 하는 등 훌륭한 회사들과 협력해 시장을 만들어 나간다. 우리가 다 갖출 수도 있지만 규모가 커지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큰 회사를 끼고 교통정리를 해 나가는 식으로 경영을 해야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다. 내가 프라임카고를 설립할 때 2000개 정도 되던 경쟁사들이 그 후 3000개가 넘었다가 지금은 1500개 정도 남았다. 그래도 우리 회사가 지금까지 버텨낼 수 있었던 비결은 아웃소싱을 통해 효율적으로 협업한 결과며, 주변에서 많이 도와주셨기 때문이다.”

■ 내년 홍동향우회 창립 50주년 준비
-라이온스클럽 활동도 비즈니스에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은데.
“라이온스클럽에서는 정치나 비즈니스를 배제하고 봉사만 한다. 사업을 목적으로 클럽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국제라이온스협회 354-C지구 뉴서울라이온스클럽 회장을 맡았을 때는 마포구 합정동사무소를 통해 다문화가정 자녀들을 도왔다. 요즘도 매달 한 번씩 휠체어 장애인들을 위해 말동무를 하거나 어려운 이웃을 위해 기부하며 봉사하고 있다. 다만 라이온스클럽에는 각 분야의 성공한 최고경영자들이 다 있어 같이 활동하면서 경영에 대한 노하우를 많이 배울 수 있다. 그 분들로부터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 듣는 것이 최고의 좋은 경영 수업이다. 내가 사업문제로 결단을 내려야 할 때도 많은 도움을 받는다. 라이온스 회원들이 다 경영에 대한 선생님들이다.”

-프라임카고를 함께 이끌어 나가는 직원은 얼마나 되나?
“프라임카고 직원은 15명으로 많지 않다. 요즘 경기가 굉장히 안 좋은데 우리는 잘 버티고 있다. 우리는 10년 이상 된 직원이 대부분이다. 나는 직원들과 같이 가는 경영을 해왔다. 직원들에게는 내가 버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대우해준다. 못 벌어도 잘 한 직원에게는 성과금을 준다. 영업을 하는 직원은 거래처를 계속 확보해야 살아남는다. 서비스업에서 직원들의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회사가 큰다. 사업은 혼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직원들도 회사의 고객이다. 직원을 잘 모셔야 한다. 그것이 지금까지 프라임카고가 망하지 않고 성장할 수 있었던 경쟁력이다.”

-주로 많은 물품을 보내는 나라는.
“우리는 남미와 유럽 쪽에 거래처가 많다. 그래서 작년과 재작년 사드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 작년에는 오히려 매출이 늘었다.”
-그 동안 회사를 운영하면서 굉장히 어려웠을 때는.
“굉장히 많았다. 외국의 거래처에서 20~30만 달러의 돈을 떼이는 경우도 많다. 그쪽 회사의 상황이 안 좋으면 운송비를 날리게 된다. 루마니아 회사가 부도 나서 어려운 적도 있었다.”

-국제소송을 해서 되찾는 방법은 없나?
“사실상 불가능하다. 오히려 소송비용이 더 많이 들어간다. 그것을 감안하고 경영을 해야 한다. 심지어 미국의 한 회사와 거래하면서 SKC에서 개런티를 했음에도 20만 달러를 떼였다.”
-물류비를 미리 선불로 받고 물건을 보내면 안 되나?
“사업 파트너 간에는 한 달을 기간으로 해서 그 다음달 말에 결제하는 것이 관례다. 한 달 물류비로 1억이 나갔는데 그 다음달 돈을 안주면 떼이는 것이다.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네트워크를 형성하는 게 중요하다. 대기업은 은행에서 개런티를 해주지만 우리는 그런 것이 없다. 1년에 1000억 이상 부도나는 데도 많다. 나는 경영자로서 늘 리스크 부담을 안고 사업을 한다. 쉬운 사업이 결코 아니다.”

-홍동에서 어린 시절은 어떻게 보냈나?
“어린 시절은 평범하게 보냈다. 집안형편은 보통이었다. 한의학을 하신 아버지는 동네사람들에게 침도 놔주고 약도 지어주고 봉사를 많이 하셨다. 간판을 걸고 한의원을 하신 것은 아니지만 당시 누구나 아프면 우리 집을 찾아왔다. 심지어 새벽에도 위급한 환자를 데리고 찾아왔다. 아버지는 홍성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셨다. 친구들을 가끔 만나면 선친 덕분에 자기 가족이 살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홍성고까지 별 어려움 없이 학교생활을 했다.”

-요즘도 고향에는 자주 가나?
“효학리에 팔순이 다 된 어머니가 계셔서 자주 간다. 어제도 홍동면장 이·취임식에 초청을 받고 향우회장으로서 갔다 왔다. 향우회장을 맡아 애경사가 있으면 자주 갈 수밖에 없다. 라이온스협회에서 회장, 지역부총재 등 임원을 하다 보니까 홍동향우회장까지 하게 됐다. 시간이 안 된다고 해도 갑자기 시켜서 힘들어도 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홍동향우회장으로서 앞으로 계획하는 사업은.
“내년이 홍동향우회 창립 50주년이 되는 해여서 어깨가 무겁다. 기념행사를 잘 준비해서 좀 더 자긍심과 가치를 높일 수 있도록 하겠다. 홍동은 인물을 많이 배출한 고장으로 주민들의 자부심이 대단하다. 친환경농업특구로서 그와 관련된 상을 만들어볼까 하고 있다.”
심재훈 대표는 사단법인충효예실천운동본부 부총재도 맡고 있다. (사)충효예실천운동본부는 홍동면 출신으로 금당초교 1회를 졸업한 대선배이기도 한 김용해 회장이 만든 단체다. 고향의 선배를 도와 사라져가는 우리의 미덕을 살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을 뿐만 아니라 (사)남북경협국민운동본부, (사)경실련통일협회에서도 통일을 위해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심재훈 대표(오른쪽)와 앞서 홍동향우회를 이끌었던 최재흥 전 회장.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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