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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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38>
  • 한지윤
  • 승인 2018.08.0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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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아주머니의 경우 진통이 멈추는 동안만이라도 그녀 쪽에서 보면 하늘에서 ‘졸지에 떨어진 것 같은 일’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머리에 꽉 차 있어서 조금도 편안하지는 않을 것이다.
“기운을 내야 해요. 아주머니. 내일은 집에 돌아간다고 딸에게 말했다죠. 그렇다면 기운을 내야잖습니까.”
“내일 퇴원해요? 벌써?”
분만 기구를 들고 들어오던 간호사가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렇다는군. 나로서는 내일은 퇴원허가를 낼 수 없을 것이지만.”

임신을 할 정도이니 이 아주머니는 밤늦게까지 집을 비우는 일이 없지 않았겠지. 이 아주머니도 아마 이런 것을 이용해서 오늘밤만 외박을 한다고 그 딸에게 말했을 것이다. 아이를 낳고 내일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을 하고 혼자서 집에 돌아갈 속셈으로 말이다. 그건 너무 제 맘대로 라고 사람들은 말할지 모르지만 한 박사와 같은 의사가 볼 때는 세상일이란 설교나 이론보다는 먼저 처리해야 할 일들이 더 많이 있다. 이 아주머니 역시 새로 태어나는 아이를 어떻게 처리하느냐 보다는 먼저 그 아이를 이 세상에 무사히 나오게 해 주는 일이다.
분만이란 심리적인 것이 많다.
산모와 의사 사이에 신뢰관계가 두터워지면 여하한 변수 이외에는 아이는 쉽게 낳게 되어 있다. 이것도 신이라든가 조물조가 그렇게 설계하고 만든 일일 것이다.

한 박사는 분만기에 쓰는 소기가스의 흡입마취나 태아의 머리가 빨리 나오게 하기 위한 회음절개는 원칙적으로 사용하기를 거려하고 있었다. 이런 것을 하지 않아도 대개의 경우 별다른 문제없이 쉽게 낳게 된다. 이것은 의사의 능숙한 수완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하다.
수석간호사가 한 박사의 병원에 오래 근무하고 있는 것도 한 박사의 이런 점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지도 모른다고 한 박사는 생각하고 있었다.
다소 완고한 기질을 가진 간호사는 리스라고 하는 상처를 내지 않고 아이를 꺼내는 기술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자기의 자랑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지금은 리스가 생기면 깨끗하게 낫지 않기 때문에 먼저 입구를 절개해서 태아를 꺼내는 경향이 많다.
이 여자는 해산에 대한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어 있지 않은 예외적인 환자다. 진통이 오면 그녀는 간호사의 제지에도 아랑곳없이 분만대 위에서 몸을 비틀고 아우성이다.
“아주머니! 아주머니! 참으세요. 잠이 와요?”
잔다고 하는 뜻이 아니고 소기가스를 한 박사는 이런 말로 사용했다.

“자고 싶어요.”
한 박사는 사실은 이 환자가 고통이 심하면 소기가스를 써도 좋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소기가스라는 것은 완전한 마취는 안 되는 것이다.
미국에서 연구하고 돌아온 의사의 이야기를 들으면 산모가 참지 못할 정도로 고통스러운 시기는 만출기보다는 개구기로서 이때 미국에서는 쎄들블럭 이라는 요추마취를 산모에게 한다고 한다.
출산의 아픔은 심리적인 작용이 크다는 것은 확실하다. 이 환자와 같은 출산이 사슬에서 떨어진 것 같이 돌연한 재난이라고 생각하는 산모에게는 아이를 원하고 있는 어머니보다 진통을 더 심하게 느낄 가능성이 많은 것이다.
그 후 세 번 정도의 진통이 있은 후에 황색의 태지에 둘러쌓인 갓난아기가 순조롭게 출산되었다. 밤 아홉시 오 분 전이었다.

“아주머니, 아들입니다. 잘 키워야 합니다.”
한 박사가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한 것은 어떻든 산모가 아이를 잘 키워 주었으면 싶어서였다. 산모는 눈을 감은 채 아이를 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간호사나 한 박사 에게도 ‘고맙습니다’ 나 ‘수고 하셨습니다’ 와 같은 인사도 없었다.
한 박사는 간호사들이 갓난아기를 오일로 닦고 분만실을 청소하고 태반의 크기를 기록하고, 산모를 병실로 옮기는 등 뒤처리가 끝나는 것을 무작정 기다릴 수가 없어서,
“수석간호사, 수고스럽지만 나중에 집에 잠깐 다녀갈 수 없을까요?”
다행히도 아직껏 아내와 유리는 식당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수간호사가 오거든 서재로 안내해 주도록.”
한 박사는 아내에게 던지듯 말하고 서재로 들어갔다.

아내가 여행 중에는 서재를 이용한 적이 별로 없었다. 책도 침실에서 읽었고 다른 일도 대개 침실에서 했었다.
그러나 아내가 돌아오자 서재가 유일한 휴식처라고 느껴진 것이다. 아내가 싫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혼자 있고 싶은 장소가 필요해서 그런 것이다.
수간호사인 민선경이 한 박사의 집으로 찾아온 것은 그로부터 30여분 정도 지나서였다.
“사모님, 여행 잘 다녀오셨습니까?”
인사하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오, 오! 수간호사 언니, 이건 당신에게만 주는 선물. 다른 사람 것은 못 사왔어요. 다른 사람들에게는 말하지 마세요.”
라고 대답하는 소리도 들려왔다.

불과 열세 명 정도의 직원들인데 선물을 사오려면 값 싼 것이라도 열세 명 분 똑같은 물건을 준비해 왔다면 좋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아내의 배려란 것은 이렇게도 단순하다고 한 박사는 생각했다. 한 박사는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 그 정도밖에 못하는 아내에게 그 이상의 것을 바란다는 것은 무리일 것이라고 한 박사는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님께 선물까지 받아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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