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국수와 칼국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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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국수와 칼국수
  • 조남민 주민기자
  • 승인 2018.08.30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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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은 콩국수를 부르는데 눈은 자꾸 칼국수를 향해
국수는 장수 기원하는 음식… 만수무강의 뜻이 담겨있어


‘작열(灼熱)하는 태양, 숨 막히는 이 무더위에 만장폭포(萬丈瀑布) 비류직하(飛流直下)의 장엄청렬(莊嚴淸冽)함을 실감케 하는 음식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콩국수일 것이다. 혹자에 따라 냉면일 수도 있다.

충분히 물에 불린 콩을 삶아 껍질을 벗긴 후, 맷돌에 갈아 뽀얀 콩물을 만들어 야들야들한 면을 넣고 얼음을 둥둥 띄우면, 시원하고 고소하며 몸에도 좋은 여름철 보양식이 완성된다. 콩국수는 여름철 반짝 메뉴로 인기가 높기 때문에 칼국수 집을 포함한 대부분의 식당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그 콩국수를 염두에 두고 칼국수 집에 들어서면 심각한 결정 장애를 경험하게 된다. 입은 콩국수를 부르는데 눈은 자꾸만 칼국수로 향한다. 그것 참 묘한 일이다. 햇빛이 바늘이 되어 얼굴에 따갑게 꽂히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한참을 망설이다 결국 뜨겁고 화끈한 칼국수를 주문하고야 만다. 이것은 해장으로 이해되는 부분이 아니다.

밀가루에는 감칠맛을 내는 글루탐산 성분이 많기에, 먹고 나면 도파민 분비가 증가돼 기분이 좋아진다. 칼국수는 원래 중독성 음식이어서 자꾸만 찾게 된다는 이야기도 뭔가가 부족하다. 칼국수는 사실 오래된 음식이 아니다.

조선시대의 어느 조리서에는 절면(切麵)으로 소개돼 있지만 우리나라는 쌀이 주식인 문화이기에 밀가루의 음식은 보편화 되지 못했다. 면을 반죽해 ‘칼로 내리썰기(절면)’를 한다는 뜻으로 쓴 ‘칼국수’라는 말은 1930년대에 처음으로 등장했다. 이후 국가시책으로 혼분식을 장려하던 60~70년대를 거치면서 칼국수는 본격적으로 만들어져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칼국수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보통 고기나 해물, 닭, 들깨 등을 넣은 칼국수가 많지만 우리 지역은 주로 멸치육수(결성), 바지락(서부), 얼큰한 국물(홍성,홍북)이 주를 이루고, 때론 수육을 곁들여(광천) 팔며 승부를 보는 칼국수 집들도 있다.

지역은 맛을 만들고 사람은 지역의 음식을 닮는다고 했던가, 그 어느 곳의 맛있다는 칼국수를 먹어봐도 내 고향만한 맛이 안 나는 것이 바로 칼국수를 볼 때마다 먹고 싶어지는 이유다.

한편 국수와 장수(長壽)와의 관계에 대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기원전 100년 중국 한나라의 무제는 생일을 맞아 성대한 축하연과 함께 산해진미를 즐기고 싶었다. 황실의 주방장은 고민 끝에 국수를 끓여내었는데, 황제는 값싼 국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이때 삼천갑자를 살았다는 ‘동방삭(東方朔)’이 아뢰길 ‘옛날 요순시대의 팽조는 800세 까지 살았는데 그것은 얼굴이 길었기 때문이며, 오늘의 이 가늘고 긴 국수는 그보다 훨씬 길기에 폐하의 만수무강을 기원하는 뜻이 담긴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황제는 크게 기뻐하며 신하들과 함께 국수를 먹었다.

이후 국수는 장수를 기원하는 음식으로 자리 잡아 오늘날까지 생일과 길일에 국수를 먹게 되었다고 한다. 얼굴이 길면 오래 산다는 뜻으로 쓰인 ‘면장수장(面長壽長)’의 얼굴 면(面)자가 국수 면(麵)자와 발음이 같아서 벌어진 일이다. 아무러면 어떠랴. 4000년의 역사를 가진 국수를 오늘날까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다행한 일이랴. 가자, 우리 고향의 명물, 칼국수 집을 향해!

조남민 <홍성문화원 사무국장·주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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