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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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46>
  • 한지윤
  • 승인 2018.10.10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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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너무 어려운 문젠데요. 한 박사님. 그건 그렇다 치고, 동생이 태어난다는 것이 그렇게 싫은 건가요?”
신부가 말을 돌렸다.
한 박사가 말을 받았다.
“난 그 심정 몰라요. 그건 소녀의 심정이지.”
“난 여자니까 알만해요. 고1이라면 성적인 것이 불결해서 못 견딜 정도가 돼요. 엄마가 그런 아이를  낳는다는 것을 용서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군.”
“그 학생은 동생을 죽일 수는 없을 거예요. 둘이 같이 사는 것이 싫었지. 그래서 자기가 사는 것을 포기한 거야. 아마 그런 심정 이었을 거야. 혼자 이해해 보려고 노력도 무척 했을 거예요, 아마.”
“그 엄마가 딸이나 주위 사람들 보기가 쑥스러워서 인천 같은 곳에 간 것이 잘못이야. 언제라도 알려져서 알 것인데. 그럴 때는 곧장 집으로 들어가는 건데. 아기란 보면 귀여워지고, 귀여워지면 그 존재를 인식하게 되는 거거든. 그 여고생은 아이가 돌아온다는 전날 밤에 자살했잖아.”
“얼굴을 보면 귀여워 질 테니까 그게 싫어서 그랬을까?”
“비도 이제 멎었으니, 테라스에 나갑시다.”
하고 신부가 말했다. 박 여사도 찬성했다.
“그게 좋겠네요. 지붕이 되어 있으니 조금은 비가와도 상관없어요.”
따뜻하고 습기 찬 밤이었다.
구름이 벗겨지고 시원스러운 파도소리가 발아래서 기어오르고 있었다.

“최근 재미있는 이야기가 하나 있어요. 이건 우울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신부님에게 해당되는 이야기니 해두죠. 아이가 꼭 필요한 어느 부부가 남편이 무정자증으로 이건 도저히 희망이 없었지만 호르몬요법을 하기로 했지요. 반드시 된다고 말하면 사기가 되거든. 그래 큰 기대는 마십시오, 라고 말했지요. 적어도 양심적인 모범의사니까, 난 말이요. 허허…… 아무튼 거짓말같이 임신이 됐거든.”
“어머, 그래 좋은 이야긴데. 이서영 씨에게 이 얘기를 해 줘야지.”
“난 그 치료법이 실제로 효과를 보았나 싶어 한 번 더 남편의 정액을 검사했지. 그랬더니 놀란 것은 정자가 한 마리도 없었어.”
“어찌된 거죠? 그게.”
“처음엔 이거 큰일 났구나 했지. 어딘가 난 항상 생각이 통속적이거든.”
“바람피운 것 아냐?”
“그것 이외는 없겠죠. 그 부인에게 물어봤지. 그랬더니 당사자 왈 그런 일 절대로 없다는 거야.”
“어머머, 어찌된 거야, 그건 또.”
“가능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루나 이틀이나 5일이나 혹은 1주일정도인지 모르지만 남자 쪽에 잠시 동안 정자가 생겼고, 그 사이 수태되었고 곧 다시 정자제조가 정지하게 되지 않았나 하는, 이것 말고 생각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있을 수 있을까요?”
신부가 물었다.
“종종 있는 일은 아니죠. 그렇다고 절대로 없다고도 단언할 수도 없고. 신부님, 이럴 때 내게는 신앙이 없어서 불편합니다. 만일 내게 신앙이 있다면 나는 신이 은총으로 내려주신 거라고 믿겠죠. 믿을 수 없는 기적을 낼 수 있는 존재는 신이니까……”
“부인이 싱글벙글 하고 있다면 외간 남자와 정을 통하지 않았다는 거겠지.”
“아이를 낳으면 혈액검사를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몰래 해야 될 것 같습니다.”
하면서 한 박사는 의미 깊은 미소를 띄웠다.
“A, B, O형의 검사지만 같은 형이면 큰소리 쳐야겠어.”
“혈액형이 같다면 친자식 일테지. 그렇지?”

박 여사가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우연히 남편과 같은 혈액형의 남자와 맺은 불의로 태어난 아이라고해도, 라는 의미일 것이다. 라고 생각했으나 한 박사는 부정은 하지 않았다.
“그게 언제더라,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변호사를 하고 있는 녀석을 만난 적이 있었어요.”
한 박사는 오랫동안 잊어버리고 있던 일을 기억해 내는 듯했다.
“이 녀석이 프랑스에 갔을 때, 동업자가 초청한 파티 석상에서 그가 혈액형에 의한 친자감정의 이야기를 했더니 그 자리가 어쩐지 어수선 하더래…… 첫째 그곳 사람들은 거의가 자기나 가족들의 혈액형이란 것을 모르고 있대. 파티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한 동업자가 그런 이야기는 이곳 프랑스 파티 석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래.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만일 프랑스 사람들의 가정이 혈액형을 알게 되면 온갖 비극들이 생길 것이라는 거야. 이 집에서도 저 집에서도 자기 아인 줄 알고 있던 그 아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판명된다면 가정은 파탄될 거라고 말야.”

“한 박사씨의 얘기는 좀 튀김질해서 하는 말 같지만 아마 그런 점도 있을 거예요. 
“그 때는 여러 사람들과 함께 허허하고 웃어 넘겼지만 뒤에 곰곰이 생각케 하는 점이 있었지. 자기의 유전자가 들어 있으면 자기의 자식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지금까지 자기의 자식이라고 생각하던 애도 미워지고 이렇게 되면 살벌해지고 허망한 상태가 되겠지. 자기 아내가 낳은 애면 분명 내 자식이다, 라고 생각하는 것이 인간으로서의 본능일텐데 말야. 언젠가 누님에게서 들은 토마스 씨 부부 말입니다. 키우면 귀여워진다는 이야기도 한 번 생각해 봐야겠지.”
“이럴 때는 신부는 할 말이 없군. 신부에게는 아내가 없으니 그런 일은 당하지 않을 것이고. 용서할 수 없다고 할 것이니 나는 말하기 곤란한데.”
마테오 신부가 말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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