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으로 완성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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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으로 완성한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10.11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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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경 화백 동양화시연회

대나무 연작 5작품 선보여

지난 7일 고암이응노 생가기념관에서 열린 ‘도불 60주년 이응노·박인경展=사람과 길’에서 93세의 박인경 화백은 동양화 시연회를 선보이며 지켜보는 이들의 숨을 멈추게 하는 작업을 선보였다.<사진>

지난 6일 개막한 ‘도불 60주년 이응노·박인경展=사람과 길’은 세계적인 거장 이응노 화백과 박인경 화백 부부의 도불 60주년을 맞이해 열린 전시로 총 73여 점의 작품들이 선보였다.

미술평론가 박응주 책임기획자는 “두 사람의 예술세계는 하늘과 땅과 사람의 그림으로 불러볼 수 있다”며 “이응노의 가장 근본적인 관심은 인간의 삶 자체였기 때문에 그 삶의 토대이자 현장인 우주 전체에 대한 관심으로 표출됐다”고 설명한다. 또한 박 화백의 작품에 대해 “한국여성미술 1세대인 박 화백의 추상은 언어를 절단시킨 채 세계를 감각적으로 공유시키는 상호주관성을 만들어내며 우리로 하여금 그 세계에 참여할만하게 하는 작용을 한다”고 말한다.

동양화 시연회에서 박 화백은 “이응노기념관 주변에 바람에 흔들리는 대나무밭을 봤어요. 그런데 오늘은 비가 안 오네요. 그저 제가 할 수 있는 대로 맡겨주세요”라는 말로 작업의 시작을 알렸다.

숨 막히는 먹먹한 먹 냄새와 함께 박 화백은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가기 시작했다. 순간 지켜보는 이들의 숨은 잠시 멈췄고, 순간 주변은 정적에 휩싸였다. 오직 카메라 셔터 소리만이 그 정적을 깰 뿐이었다.

박 화백은 “작업에 대해 설명을 하려면 뭔가 거북해요. 여기를 채울까, 이게 더 좋을까 잠시 망설였어요. 엷은 색으로 할까, 진한 색으로 할까. 그런데 좀 더 진한 색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라며 다시 붓 작업을 시작했다. 이윽고 박 화백은 오른쪽 어깨를 살짝 올리며 쑥쓰러운 듯한 웃음을 지어 보인다.

박 화백은 “대나무의 이미지, 혹은 대나무의 다른 정신적 가치 이런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옛날의 기법은 이랬고 저랬다 하는 일은 쓸데없는 것이에요. 단순하게 대나무 잎사귀 하나라도 그 형태가 다 달라져요. 사실 시연회는 설명을 해야 하는 부담감이 있어요. 그런데 내 눈에는 대나무로 보여 걱정이에요”라며 가느다란 손을 움직였다.

작가는 그저 단순히 선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본 것을 이미지화시켜 형상화 하는 작업 과정을 거친다. 그러니 그 작업 과정을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일은 너무 어려운 일이다. 작업은 작가와 대상간의 내밀한 언어이기 때문이다.

청명한 가을 날씨에 대나무 잎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지만 박 화백의 손에서 탄생한 대나무 잎은 바람에 몸을 맡긴 채 여기저기 흔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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