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지지 않은 마을인심 가득한 훈훈하고 정겨운 마을
상태바
사라지지 않은 마을인심 가득한 훈훈하고 정겨운 마을
  • 취재=김옥선/사진=김경미 기자
  • 승인 2018.10.17 09:07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희망을 일구는 색깔있는 농촌마을 사람들<26>

농촌마을 희망스토리-금마면 덕정리 용당
더덕산 아래 세 개 반으로 나눠진 용당마을 전경.

아침 10시, 회관에 들어서니 콩만 한 가득 놓여 있고 아무도 없다. 이주순 씨는 바닥에 털퍼덕 앉아 신문지를 넓게 폈다. 한웅큼 콩을 덜어 신문지에 펼치고 누런 양재기에 콩을 까 담기 시작한다. 30분 쯤 지났을까 우영자 씨가 들어온다. 회관에 들어서자마자 모자를 벗어 던지고 이주순 씨 앞에 털퍼덕 앉아 빠른 속도로 콩을 깐다.

“언니 오늘은 아무도 안 오나벼?”
“그러게, 밥이라도 한 술 뜰라믄 지금은 와야 하는디, 콩 까러 온다고 했는디 다 어데 갔나벼.”
“요놈의 햇콩으로 국수 해 먹으면 겁나 맛나는디.”
“말하면 뭣혀.”
우영자 씨는 88세로 정부호 씨와 함께 용당마을 최고령자다. 18살에 예산에서 시집 와 이웃들과 언니동생하며 친자매처럼 지낸다. 이주순 씨 역시 예산에서 22살에 시집왔다. 용당에서 홍성으로 가는 20리 길을 등에는 어린애를 업고 손과 머리에는 짐보따리를 이고 들며 건재고개를 넘었다. 이제는 가라고 해도 못 간다. 

잠시 후 회관에 할머니들이 하나 둘 모이기 시작한다. 얼른 밥을 해서 밥솥에 앉히고 냄비에 냉장고에 있던 닭을 꺼내 손맛을 더한 양념을 듬뿍 얹는다. 햇감자도 적당한 크기로 썰어 넣는다. 두 개의 상을 펴서 도란도란 얼굴 맞대고 밥을 먹는다. 설거지를 마치고 난 뒤 신나는 윷판이 벌어진다. 돈 내기도 아닌데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할머니들 사이에 웃음이 떠나지 않는다. 매일 하는 윷놀이지만 매일이 다르고 재미지다.

윷놀이만 하는 건 아니다. 일주일에 두 번 한글교실도 한다. 서투른 손놀림으로 연필 끝에 침을 묻혀가며 칸칸이 글씨를 써내려가는 재미도 쏠쏠하다. 내 이름자 정도만 쓸 줄 알면 된다고 한사코 안 하려고 하는 할머니들도 하나 둘 책상 앞에 불러 앉혀 같이 배우는 맛이 있는 시간이다.

덕정리 용당마을은 더덕산 아래 낮은 구릉지에 형성된 작은 마을이다. 금마면사무소 동남쪽에 위치하고 있으며 마을 모습이 용의 형국이라 해 용당으로 불린다고 한다. 일제 강점기 용당과 내가로 나뉘었다가 한국전쟁 이후 잠시 합구, 1960년대에 다시 분리돼 용당마을은 덕정1리가 되고 내가마을은 덕정2리가 됐다.

용당마을 입구에는 덕정사거리 방향 오른쪽에 고인돌이 있다. 청동기시대의 전형적인 유적으로 선사시대부터 마을이 형성되며 사람들이 거주했을 것으로 짐작한다. 용당마을은 각성받이 마을이지만 일제시대만 하더라도 김해 김씨가 터를 잡아 살아 왔다고 하며 안동 권씨와 한양 조씨도 누대에 걸쳐 살고 있다.

용당마을은 크게 세 반으로 구성된다. 1반의 오리골, 2반의 용당굴, 3반의 강월을 합쳐 용당이라 한다. 오리골은 납자 14명, 여자 17명 등 17가구가 거주하며, 용당굴은 남자 9명, 여자 18명 등 16가구가, 강월은 남자 12명, 여자 19명 등 17가구가 거주한다. 총 50가구로 초등학생 6명, 중학생 이상 청소년은 3명이다.

용당마을 토박이인 조윤형 이장은 “공무원 가구가 3가구가 되고 귀농인은 없다”며 “마을에 젊은이보다 고령의 인구가 많지만 어느 마을보다 어르신들 인심이 좋고 단합이 잘 되는 마을이다”고 말한다.

용당마을회관은 1990년대에 건립된 것으로 올해 안에 마을회관 경사로 공사와 일부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다. 예전에는 청년회가 활성화됐지만 마을 장례가 서서히 사라지면서 청년회 활동도 시나브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청년들이 만나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식사를 나눈다.

“마을에 어르신들이 많은데 인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회관에서 나오는 중앙 통로가 어르신들이 버스를 타기 위해 가장 많이 이용하는 길인데 큰 길로 다닐 수밖에 없는데 차들이 너무 쌩쌩 달리니 위험하다”

젊은이들이 사라진 마을은 자칫 활기가 없는 마을로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마을 어딘가에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들이 굽어진 허리로 밭을 일구고, 가갸거겨를 소리 내 말하며 따박따박 글씨를 쓰고, ‘오매, 윷이여’라고 외치는 웃음소리가 들리는 곳, 용당마을이다.

매일 모여 윷놀이를 하지만 매번 다른 재미를 주는 윷놀이에 푹 빠진 마을 할머니들.
이주순, 우용자 할머니가 사이좋게 콩을 까며 도란도란 이야기 꽃을 피우고 있다.
용당마을 조윤형 이장.
청동기 시대 유적인 고인돌.
마을나들이 모습.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