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기억에서 행복한 기억 찾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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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기억에서 행복한 기억 찾기
  • 최명옥 칼럼·독자위원
  • 승인 2018.10.12 16: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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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누구나 우울함에 빠질 수 있다. 우울한 감정에 젖어 있을 때면 모든 것이 의미 없게 느껴진다. O양은 생후 7-8개월 때 아버지에 의해 파출소 앞에 버려졌다. 이후 영아원에서 ㅇㅇ원으로 옮겨 생활하다가 만 3세 때 지금의 부모님께 입양됐다. 입양 후 언어능력은 또래에 비해 떨어졌지만 눈치가 빨라서 엄마와 아빠가 외출하려고 준비하면 현관으로 달려가서 자신의 신발을 양 손에 들고 서서 기다렸다. 식성도 좋아서 음식도 잘 먹었고 어린 아이가 혼자서 바나나 24개를 2일 만에 먹은 것은 온 가족들을 깜짝 놀라게 한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 O양은 학교생활이나 또래관계가 원만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 때 부모님과 함께 타 지역으로 이사하면서 선생님과 부모님께 잦은 거짓말과 원만하지 않은 친구 관계 등으로 지각이나 조퇴 등이 많았다. 이 행동을 지켜볼 수 없었던 아버지는 O양에게 언어적, 신체적 폭력을 자주 행했다. 아버지는 폭력에 대해서 소년원에 갈까봐 걱정돼 그랬다지만, O양은 아버지의 행동이 지킬박사와 하이든같이 선한 척 하면서 악을 행하는 이중적인 부모라고 표현한다.

O양은 이 세상에 태어난 순간부터 자신에게 많은 문제가 있었다고 느낀다. 자신이 입양된 것은 큰 실수였다고 생각한다. 22년을 살아오면서 자신을 믿지 않는 70대 아버지와 어머니, 특히 어머니가 어렸을 때부터 신체 접촉을 꺼려서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느낌을 갖게 돼 자살에 대해 자주 생각하게 됐다. 실제로 자살시도를 했으며 몇 차례 가출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와 고양이에게 사랑을 느끼고, 발달장애가 있는 조카에게 자신이 필요한 사람이라는 것이 큰 위로가 됐다. 또한 자신의 두려움과 외로움을 글로 표현하는 시간을 통해 죽지 않고 살아낼 힘을 얻었다고 O양은 말한다. 

아버지는 O양이 온라인에서 ㅇㅇ카페를 운영하면서 낮에는 잠만 자고 밤에는 컴퓨터만 한다고 상담을 의뢰했다. 상담실에서 O양은 부모의 말과 표정, 태도를 보면서 한숨을 쉬기도 하고 때로는 얼굴을 붉히며 자주 얼굴을 찡그렸다. 아버지도 틈틈이 O양에게 조언과 훈계를 했다. 긴장감이 맴도는 상황이었다. 이에 상담자는 O양에게 개인 상담과 부모 상담, 가족 상담을 병행했다. O양은 “자신은 바다 밑에 버려진 것 같다”, “오늘을 버티는 것이 관건이다”, “어차피 아무것도 이룰 수 없기에 내일을 꿈꿀 수 없다”고 마음 속 깊이 끌어안고 있던 절망의 생각들에 언어의 옷을 입혀 상담자에게 이야기했다. 더구나 병원에서 백내장, 저혈압, 빈혈로 인한 현기증, 아토피, 수족 냉증, 우울증 등 진단을 받았기에 신체적으로 매우 힘들다고 호소했다. O양은 몸과 마음으로 구조요청을 보내고 있다.

상담자는 온라인에서 카페지기를 하는 이유를 물었다. O양은 “밝은 사람(자랑하는 내용의 글을 올리는 사람)보다 우울한 사람을 좋아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오프라인에서는 웃는 사람들과 교류하는 것은 어색하지만 가상공간에서는 자신의 위로를 건네는 것이 자신이 살아가는 이유가 된다고 했다. 이는 얼마 전 부모와 법적으로 파양했지만 인간적인 유대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관계처럼 말이다.

지속적인 상담을 통해 아버지가 상담실에 오는 것도 사랑이었음을 파양을 한 것도 자신을 위한 또 다른 형태의 사랑임을 알았다고 말한다. 세상에 버려진 존재였기에 자살을 항상 생각했지만, 조카에게 자신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 동물을 좋아해서 애견 숍을 운영할 수 있는 꿈이 생겼다는 것, 살다 보면 좋은 날이 자신에게도 올 거라는 것, 그리고 자발적으로 웃으면서 가족사진을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O양은 자신의 나쁜 기억들 속에서 보석처럼 숨겨져 있던 좋은 기억을 찾아냈다. 나쁜 기억들 속에 숨겨진 좋은 기억들을 찾을 때, 사람은 죽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다. 아니 삶의 생기를 회복할 수 있다.

최명옥 <한국정보화진흥원 충남스마트쉼센터 소장·상담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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