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장터와 마트에서 살 수 없는 것들
상태바
지역 장터와 마트에서 살 수 없는 것들
  • 이동호 <홍동면>
  • 승인 2018.11.02 09:1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토요일 오후 마을 사람들이 하나 둘 공원으로 모인다. 돗자리를 펴는 사람, 테이블을 놓는 사람. 제각각 손마다 보따리가 들려있다. 떡꼬치와 어묵 같은 먹거리를 꺼내는 이들, 대파, 고추, 들기름 등등의 농산물을 꺼내는 이들, 옷장에 쌓여 있던 옷, 장난감, 천연염색 공예품을 놓는 이들까지 각양각색 좌판이 시작된다. 캐느라 허리 ‘뿌라질 뻔’ 했다는 우엉을 차로 만들어 온 이모 옆에 나도 자리를 잡았다. 우유에 홍차를 넣어 네팔식 밀크티를 끓인다. 백미는 메뚜기튀김이다. 마을 아이들이 논에 나가 직접 잡아 온 메뚜기. 오늘 장터에서 벌 돈을 미리 아이스크림으로 가불 받았다 한다.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들어간 메뚜기들이 빨개져 나온다. 평화롭게 가을을 즐기던 메뚜기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살짝 든다. 한 번 먹으면 멈출 수 없는 짭짤함이 입안 가득이다. 꼬꼬마 친구들은 가불 받은 아이스크림 값 때문인지 메뚜기 떼처럼 몰려가 손님을 끌고(?) 온다. 그러다 아는 손님이 사면 꼬마 손들이 메뚜기 떼처럼 튀김을 휩쓸고 가 재구매를 유도하기도 한다.

장터가 익숙하지 않은 동네 이모들도 물건을 가져왔다. 조금씩만 갖고 나오자고 결의해놓고 이것도 저것도 담은 보따리를 풀고 보니 밤조림과 꿀, 고구마말랭이, 곶감, 마늘가루 등 한 상 가득하다. 모두 집에서 직접 농사짓고 만든 물건이다. 밤조림은 겉껍질만 벗겨 설탕에 잰 보관 음식이다. 속껍질의 아린 맛을 빼야 하기 때문에 베이킹소다를 푼 물에 하루 동안 담가놓았다가 30분씩 3번 약한 불에 끓인다. 강한 불에 끓이면 밤이 허물어지기 때문에 약한 불에 끊이고, 그 후에 벌레와 털을 일일이 제거한다. 정성도 보통 정성이 아니다. 고구마말랭이는 골고루 뒤집어 가며 태양 볕에 말렸다. 소주에 떫은맛을 우려낸 월하시(감) 등 설명이 이어진다. 비싸지도 않고 질도 좋다. 이것이 진정 ‘홈-메이드’다.

“약자들이 다시 자기 것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면 위압적으로 거대한 기술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경제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E.F.슈마허가 말했다.

이 장터는 지역 내의 물건과 서비스를 나눠보자는 취지에서 열린 장이다. 누구나 자유롭게 물건을 가지고 나오면 된다. 거래는 지역 화폐 ‘잎’을 통해 이뤄진다. 구매를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엇이든 거래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지역 화폐의 역할이다. 이웃집 곶감을 얻어먹는 게 미안하다면 지역 화폐로 사례를 할 수 있다. 이웃은 동네 식당에서 지역 화폐로 밥을 먹는다. 식당 주인은 지역 주민에게 농산물을 산다. 농부는 필요한 집수리를 지역 일꾼에게 맡긴다. 지역 화폐는 물건이든 노동력이든 필요한 사람에게 상품이 이동하도록 돕는다.

어느새 막장이다. 크고 화려한 장터는 아니지만 이곳에서 풍성한 거래와 오랜만에 만난 이웃들이 여유롭게 나누는 대화에 풍부함을 느낀다. 음식이든 공예품이든 직접 만드는 재미와 그런 예술성을 만나는 경험은 인간적인 만남과 서로의 노고를 존중하는 관계가 되고 생산자와 소비자가 가까워지면 일어나는 일들이다. 더 많은 지역 장터가 생기면 좋겠다. 판매와 소비의 장이라는 경제학을 넘어 더 많은 관계와 더 많은 즐거움이 있는 곳에서 더 많은 풍요와 더 많은 상상을 누리는 곳, 마트에서 살 수 없는 진짜 홈메이드가 있는 곳, 우리가 인간성을 회복하는 곳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