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에 사는 갈색 눈의 독일 아가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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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에 사는 갈색 눈의 독일 아가씨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8.12.04 09: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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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페이 브론나
늦가을 홍동에서 만난 안나페이 브론나.

후배에게 연락이 왔다.
“언니, 나 남미 가.”
“남미? 언제?”
“내일 모레.”
“언제 와?”
“뭐 돈 떨어지면 오지 않을까?”
그랬던 후배는 3년 째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가끔 메일로 자신의 안부를 전하고는 한다. 환상적인 남미 풍경 사진과 함께 말이다. 통장에 있는 6백만 원을 탈탈 털어서 간 후배는 여비가 떨어지면 한국인이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서 일해 경비를 마련해 트레킹을 간다. 그리고 다시 게스트하우스 스텝으로 일을 한다. 영어는 단 한 마디도 못하면서 참으로 용감하다. 이십대도 아닌 사십대 후반에 자유롭게 떠날 용기가 있는 후배가 부럽기만 하다. 부러우면 지는 거라 했는데 그래도 부러운 건 부러운 거다.

독일인 안나페이가 홍동에 온 것은 지난해 8월이다. 물론 한국이 처음은 아니다. 2009년 2주 정도 잠시 한국에 머물렀고, 이후 2015년에 3개월 정도를 지냈다. 전남 해남에 있는 한 다원에서 3개월 정도 봉사하며 지내기도 했다. 전통 음악을 좋아하고, 외국노동자들에게도 관심이 있는 안나페이는 한국어를 공부하는 인류학도다. 영국에서 인류학과 정치학을 공부한 안나페이는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조선족에 대한 논문을 쓰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중국에서 2년을 다니면서 그녀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동양 문화권으로 향했는지도 모른다. “생활적인 철학은 재미있다. 복잡한 사회에서 잘 살 수 있는지 그런 생각들을 공부하는 거다. 대학원에 진학해 좀 더 공부하고 싶은 생각도 있다.”

그녀는 홍성여성농업인센터의 여성 귀농·귀촌인들이 안전한 집을 임대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안전임대주택사업에 선정돼 다른 여성 귀농귀촌인과 함께 세어하우스를 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성인이 되면 거의 가족과 함께 지내지 않고 세어하우스를 한다고 한다. 그런 그녀에게 안전임대주택사업은 딱 들어맞는 지원 사업이다. 그녀는 이곳에 머물며 홍동 밝맑도서관에서 봉사도 하고 장구모임, 독서모임, 노래모임 등에도 참여한다. 홍동면의 이런저런 행사에도 조용하게, 부지런히, 꾸준히 참여한다. “한국은 공동체에서 무언가를 하려는 것들이 많은 것 같다. 독일은 개인적이다. 뭔가 나서서 하는 일이 거의 없다. 특히 여기 홍동은 같이 모여 뭔가를 변화시키려는 노력이 이곳저곳에서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소위 ‘으쌰으쌰’를 잘하는 민족이다. 같이 모여 막걸리 한 잔과 파전을 나누고, 마을에서 상을 당하면 같이 모여 슬퍼해주고, 문제가 생기면 함께 상의해 해결한다. 그런 민족성이 어쩌면 서양인에게는 다소 낯설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안나페이는 그런 문화에 조금씩, 천천히 다가가 살펴본다. 이쯤에서 의문이 든다. 그녀가 찾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녀 스스로도 그 답을 찾아가고 있는 과정에 있을 것이다.

남미로 떠난 후배가 그저 여행이나 하면서 시간을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여행을 하면서 마냥 자유로움과 행복만을 느끼지도 않는다. 돌아가서 뭘 하지 하는 불안감이 내재하지만 그런 불안감보다 더 큰 충만함이 현재 그 후배에게는 보다 큰 의미로 다가오기에 후배의 남미 여행은 기약 없이 계속 이어져 갈 것이다.

안나페이는 조만간 비자가 만료돼 돌아가지만 홍성에 머물렀던 지난 시간들이 그녀가 앞으로 살아갈 날들에서 어떤 빛이 되어줄 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저 그 길 위에 있을 뿐이다. 우리 모두가 그러하듯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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