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량·공·검·양으로 벼슬하기를 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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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량·공·검·양으로 벼슬하기를 구하다
  • 손세제 <철학박사>
  • 승인 2018.12.20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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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 아카데미
사진 출처= https://image.baidu.com

자금(子禽)이 자공(子貢)에게 물었다. “부자(夫子)께서는 한 나라에 이르실 적마다 매번 반드시 그 정사(政事)에 대해 들으셨다고 하는데, 부자 쪽에서 (그런 자리를) 구했기 때문입니까. 아니면 저쪽에서 (자리를 마련해) 주었기 때문입니까?” 자공이 대답했다. “부자께서 온후(溫厚)하시고 선량(善良)하시며 공손(恭遜)하시고 검약(儉約)하시고 겸양(謙讓)하셔서 (그런 자리를) 얻게 된 것이니, (夫子께서 그런 자리를 구하셨다 해도) 부자(夫子)의 구하심은 그 여느 사람들의 구함과는 다르다네.”

■ 자공과 공자
자공(子貢)과 그의 제자로 알려진 자금(子禽)이 등장하는 것으로 보아 공자 생전에 제작된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문장에 제(齊) 나라 방언(其諸·與) 같은 것이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아  노(魯)나라에서 제작된 뒤 제(齊) 나라에 전해져, 거기에서 윤색·부가된 장이 아닐까 한다. 이 장 앞에 충신(忠信)을 강조한 제8장이 있고 또 이 앞 9장에 증자(曾子)라는 말이 있는 것에서 유추하면 공자의 손제자(孫弟子) 시대에 제작된 전송일 것이다. 충신(忠信), 신종추원(愼終追遠),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등 서로 연관된 내용의 지식으로서 하나의 체계로 기억돼 전송되어 오다 여기에 삽입되었을 것이다. 함의는 공자께서는 온후하고 선량하며 공손하고 검약하고 겸양한 덕을 구비하신 분이기 때문에 어디에 가시든 자연스럽게 군자의 본업인 정교(政敎)의 상담을 하시게 되었다는 것인데, 누구든 군자로서의 인격(溫良恭儉讓)을 쌓게 되면 자연스럽게, 군자의 본업인 정치에 참여하게 된다(得)는 것을, 공자라고 하는 실례(異乎人)를 들어서 서술한 것이 아닐까 한다. 이로써 군자에 대한 이해가 한층 더 명확해졌다.

자금(子禽)은 공자의 제자 진항(陳恒)을 말한다. ‘자장편’에 자공과 나눈 대화가 나온다. 공자 몰후 노(魯)나라의 숙손무숙(叔孫武叔)이 조정에서 그 대부들에게 “자공이 공자보다 훨씬 뛰어나다”고 칭찬한 적이 있다. 오(吳)와의 외교 협상이 마무리 됐을 때의 일로 짐작되는데 그러자 자공이 이를 사양하며 말했다. “그렇지 않다. 내 이제까지 많은 사람들을 만나 봤지만 선생님처럼 그 속이 꽉 찬 분을 뵌 적이 없다.”(자장편23) 그런 일이 있은 뒤 숙속무숙이 또 공자를 헐뜯는 말을 했다. 그러자 이번에도 자공이 그를 제지하며 말했다. “선생님의 덕을 다른 사람과 비유하면 다른 사람은 구릉(丘陵)과 같아서 오히려 넘을 수 있으나 선생님은 일월(日月)과 같아서 넘으려 해도 넘을 수 없다. 해와 달을 끊으려 한들 손상(損傷)을 입힐 수 있겠는가? 그저 아는 만큼 보일 뿐이다.”(자장편24) 이때 이를 듣고 자금(子禽)이 자공에게 말했다. “그대가 겸손해서 그렇지 공자가 어찌 그대보다 훌륭하겠는가?” 그러자 자공은 자금을 꾸짖으며 말했다. “군자는 말 한 마디에 지혜롭게 되기도 하고 지혜롭지 못하게 되기도 한다. 내가 선생님에게 미칠 수 없는 것은 마치 하늘을 사다리로 오를 수 없는 것과 같다. 교화(敎化)를 세우면 바로 교화가 행해지고, 인도하면 바로 따르고, 편안하게 하면 먼 데 있는 백성들이 즉시 몰려오고, 사역(使役)을 시키면 불만 없이 행하고, 살아계실 적에는 영광으로 알고 돌아가셨을 때에는 모든 이들이 슬퍼하였던 분이 선생님이시다. 내 어찌 그에 미칠 수 있겠느냐?”

스승을 존경하는 제자의 마음이 듬뿍 담겨 있는 전송이다. 세상에는 사제 간의 정을 논한 글이 많다. 그러나 이보다 더 가슴 뭉클한 장면을 본 적이 없다.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게 하는 곳이다. 자공은 국제 외교 분야에서 매우 뛰어난 업적을 남겼던 인물이다. 그는 사업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여 ‘화식열전’에 그 행적이 기록된 인물이다. “공자의 이름이 천하에 널리 알려지게 된 것은 자공이 공자를 모시고 다니며 도왔기 때문이다. 이것이 이른바 세력을 얻어 더욱 세상에 드러나는 일이다.”

자공이 이룩한 대업은 그의 영민한 자질에 기인한 면도 있겠지만 공자라는 위대한 스승을 만났기 때문에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몬주익 영웅 황영조와 보스톤의 영웅 이봉주는 우리나라 마라톤 역사에 길이 빛날 위업을 남긴 인물들이다. 이들이 영웅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데는 당연히 그들의 재능과 노력이 바탕에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만일 이들이 그들을 길러낸 위대한 지도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단지 뜀박질 잘 하는 사람에 그쳤을지도 모를 일이다. 위대한 인물과 그를 길러낸 스승 사이에는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그것을 기억했을 때 제자의 덕은 더욱 빛나고 스승의 존재도 역사에 길이 남게 되는 것이다. 어느 날 진항(陳恒)은 공자께서 천하 유력을 하실 때 가시는 나라마다 그 나라의 정치에 참여하셨다는 말을 들었다. 이를 괴이하게 여겨 스승인 자공에게 물었다. “공자께서 그렇게 하실 수 있었던 것은 누군가에게 청을 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아니면 그 나라 임금이 스스로 원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까?” 그러자 자공이 말했다. “선생님이 찾아가셔서 그렇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선생님에게 온·량·공·검·양(溫良恭儉讓)의 덕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만일 선생님에게 그와 같은 덕이 없었다면 과연 임금이 만나주었겠느냐? 선생님의 구하심은 다른 사람의 구함과 달랐느니라.”

■ 온(溫)·량(良)·공(恭)·검(儉)·양(讓)
온(溫)이란 돈후하고 유순하며 윤택한 모양을 말한다. 오랜 수양으로 인해 얼굴에서 맑은 빛이 나는 모양이다. 량(良)은 남을 침범하는 행위를 하지 않는 것이다. 공(恭)은 화합하고 순종해 거역하지 않는 것이다. 검(儉)은 사치를 버리고 검약을 따르는 것이다. 양(讓)은 남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를 뒤에 생각하는 것이다. 선생님께서는 이 다섯 가지 덕을 닦으셨기 때문에 임금을 찾아갔을 적에 임금이 지체 없이 면담을 허락하고 그 나라의 이모저모에 대해 자문을 청했다는 말이다. 그러나 다른 사람은 이와 같지 않으니 자신을 욕보이고 자신의 뜻을 꺾으며 임금에게 찾아가 벼슬을 구한다. 이것이 선생님의 구함과 다른 사람의 구함이 다른 점이다. 술이편과 공야장편의 마지막 장에 이런 말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온화하면서도 엄숙하시고 위엄이 있으면서도 사납지 않으시고 공손하면서도 편안하셨다.”, “열 집쯤 사는 작은 읍에도 반드시 나처럼 충성스럽고 진실한 자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처럼 배우기를 좋아한 자는 없을 것이다.” 또 계씨편에는 외부에 채집한 공자의 가르침 중에 아홉 가지로 생각하라(九思)는 것이 있다. “군자(君子)는 아홉 가지로 생각하는 것이 있다(九思). 볼 때에는 밝게 봄을 생각하며(視思明), 들을 때에는 밝게 들음을 생각하며(聽思聰), 얼굴빛은 온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며(色思溫), 모습은 공손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貌思恭), 말을 할 적에는 진실해야 한다고 생각하며(言思忠), 일을 할 적에는 신중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事思敬), 의심스러울 때에는 물어봐야 한다고 생각하며(疑思問), 분한 일이 있을 때에는 후일에 닥칠 어려움을 생각하며(忿思難), 얻을 만한 것을 볼 때에는 의로운 것인가를 생각한다(見得思義).”

약간의 수식이 가해졌겠지만 공자는 이와 같은 것들을 수양의 덕목으로 정해놓고 연마했을 것이다. 그래서 자신의 출사에 대해 “옛날 일민(逸民) 중에 백이(伯夷)·숙제(叔弟)·우중(虞仲)·이일(夷逸)·주장(朱張)·유하혜(柳下惠)·소련(少連)이 있었다. 백이와 숙제는 그 뜻을 낮추지(굽히지) 않고 그 몸을 욕되게 하지 않았다. 유하혜와 소련은 뜻을 낮추고 몸을 욕되게 했으나 말이 조리에 맞고 행실이 사려에 맞았다. 우중과 이일은 평생 동안 숨어 살면서 세상일에 대해 말하지 않았으나 몸은 청결함에 맞았고 벼슬하지 않음은 권도(權道)에 맞았다. 그러나 나는 이들과 달리 가(可)한 것도 없고 불가(不可)한 것도 없었다.”(미자편8) “써 주면 나아가 벼슬하고 써 주지 않으면 물러나 은둔했을 뿐이다.”(술이편10)

이 장은 군자의 인격과 군자의 본업인 출사(出仕)의 관계를 공자의 예를 들어 서술한 장이다. 벼슬을 구하기 위해 자신을 욕보이고 뜻을 굽히며, 유력자의 마음을 얻으려고 있지도 않은 허위 사실을 날조해 무고한 자를 헐뜯는 요즘의 군자연(君子然)하는 사람들이 넘볼 수 자태가 아니다. 얻으려면 줘야 하고, 오르고자 하면 내려가야 하고, 나아가려면 물러나야 한다는 말이 있다. 어리석은 말처럼 들리겠지만 세상 돌아가는 이치는 인세(人世)의 욕심과 많이 다르다. 불과 몇 년 만이라도 때를 기다리며 덕을 닦으면 닦은 덕이 해와 달처럼 빛나 얻을 수 있는 것은 거의 다 얻을 수 있는데, 작은 재주만 믿고 섣불리 움직여 상대로 하여금 기미를 알아채고 방비하게 한다. 뜻을 펼치기는커녕 제 한 몸 간수하기도 힘들다.

월왕(越王) 구천(句踐)이 오왕(吳王) 부차(夫差)에게 당한 굴욕을 잊지 않기 위해 와신상담(臥薪嘗膽)하며 때를 기다렸듯, 온·량·공·검·양 다섯 글자를 머리맡에 써 놓고 하루하루 자신을 살피다 보면 머지않은 장래에 뜻을 이룰 날이 오지 않겠는가? 청산(靑山)이 저리도 푸른 데 어찌 땔나무 걱정을 하는가? 군자의 나아감은 때에 있지 않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한탄하지 말고 나의 덕이 부족함을 걱정하라. 그게 출사(성공)의 비결이다.<끝>

<이 강좌는 홍성문화원과 함께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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