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명은 순간인거야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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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은 순간인거야 <60>
  • 한지윤
  • 승인 2019.01.16 0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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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기자 한지윤의 기획연재소설

“제가 아이는 낳을 수 있는가 물었더니 글쎄 아마 안 될걸, 하고 말씀하시더군요. 그날 밤 어찌나 슬픈지 잠도 오지 않았어요. 결혼은 안 해도 좋지만 그이의 아이는 꼭 낳고 싶었는데……”
“글쎄. 그렇겠지만 아이를 못 낳는 사람도 많아요. 아가씨만이 아니고.”
그리고 한 박사는 계속해서 물었다.
“지금 함께 자취하고 있는 친구는 어떤 친구?”
“이선애 라고 해요.”
“무얼 하고 있지?”
“한 때는 회사에 다녔어요. 영양사가 되고 싶다고 지금은 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서로 뜻이 맞아요? 룸메이트라고 하나, 이런 걸?”  
“특별히 뜻이 맞는다고는 할 수 없지만…… 둘이서 쉬는 날은 야외로 놀러 가거나 백화점 같은데 가기도 해요.”
 “주로 어디로 가지?”
“대개는 신촌 까지만요. 지난번에는 명동에 갔어요. 백화점에도 들르고 쇼핑도 하고……”
“그렇게 오랜 시간 무얼 그렇게 사지?”
“블라우스라든지, 속옷이라든지…… 등등 많아요. 마침 겨울철 물건을 퍽 싸게 팔고 있었어요.”
“지금부터 겨울에 입을 옷들을? 준비성이 좋은데.”
“우리들은 항상 내년 것을 미리 사 둬요. 싸니까요.”
“밥은 누가 짓고?”

“교대로 하기로 되어 있지만, 계집애, 잘 빼먹어요. 낮에 실습이 있으면 ‘저녁은 라면으로 하자, 얘’하면서 그럴 때는 할 수 없이 제가 대신해요.”
“잘 하는데. 살림하는 일이 즐거워?”
“요리 하는 건 좋아해요. 청소나 설거지 같은 건 싫어서……”
“그건 소극적인 일이라서 그런거지. 요리 같은 건 적극성을 띤 일이고, 그리고…… 별걸 다 물어보지만 아빠하고 엄마하고 누가 더 좋지? 꼭 어린아이에게 하는 질문 같군.”
한 박사는 민자에게 세상 잡담이라도 하듯이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엄마예요. 아빠는 사람은 좋지만……”
“어째서?”
“너무 바람둥이예요. 그래서 엄마하고 늘 싸워요.”
“남자란 모두 바람을 피우고 싶어 해요.”
“알고 있어요.”
“이해하고 있잖아?”
한 박사는 웃음기 띤 얼굴을 하면서 말했다.
“이해 못해요. 전.”
“그래? 허지만 남자는 모두 박애주의자거든.”
“……?”
“용서가 안 돼?”
“엄마가 불쌍해서 그래요.”
“여자는 바람피울 수가 없는가?”
“안될 것도 없지만요, 그래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사람만 생각하잖아요. 그래서 어려울 것 같아요.”
“음, 불편한데. 남자는 틀려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겨도 다른 미인이 눈에 띠면 그 쪽으로도 눈을 돌리거든.”
“어머머, 말도 안 돼.”

“그 중에는 좀 심한 남자도 있어서 예쁜 여자도 좋아하고, 또 예쁘게 생긴 남자도 좋아하는 남자가 있지.”
“남색이라고 하는 거죠? 그거.”
“그렇지. 동성애지.”
“아이, 기분 나뻐.”
“하지만 남자가 여자 차림을 해봐요. 웬만한 여자 뺨칠 정도로 예쁘지.”
“그래도 그건 변태죠.”
“그래 변태지. 난 말만으로 듣고 있지만, 잘은 몰라. 난 역시 여자가 좋지.”
“우리가 가는 공중목욕탕의 주인, 기분 나빠요. 늘 우리 둘이서 말하고 있지만요. 여탕 쪽만 힐끔힐끔 쳐다봐서 기분이 나빠요.”
“뭐가 기분 나뻐. 나라도 그럴텐데.”
“안주인은 남탕 쪽만 흘깃거린대요. 선애도 그래요.”
“그럼, 서로 피장파장 아니야?”
“선생님은 우리 아빠와 똑같은 말만 하시는군요.”
“그런가?”
한 박사는 유쾌하게 웃었다.
한 박사는 1월의 첫 일요일 오후, 남미여행의 선물이라는, 은으로 만든 작은 사진틀을 가지고 온 박 여사와 만났다.

“좋은데요. 기계제품은 아닌데요. 수공예품인가요?”
“페루의 은세공이래. 은이란 녹이 나고 해서 어떨까 생각도 했지만 공예품이란 점에 그만 끌려서.”
“좋습니다. 난 은 같은 건 녹이 나도 마음에 걸리는 건 없어요.
습기가 많은 바다 가까운 곳에 살고 있으니까 오히려 녹이 나는 것이 자연스러울 테고. 녹이 나서 검게 돼도 은은 은일 것이고. 그 멋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페루에도 가셨어요?“
“아냐. 비행기가 경유한다고 잠깐 체류했지. 그 때 공항에서 샀어. 좀 큰 것과 두갤 사왔는데 이서영 씨가 아이를 낳는다기에 하나는 거기에 줄까하고.”
“나 참, 내 평생에 큰 실수야.”
“실수가 다 뭐야? 양우석 씨는 한 박사를 하느님처럼 생각하고 있어요.”
“그래도 아무 뜻 없이 한 일이 생대로부터 말썽을 들을 때가 있잖습니까. 또 그 반대로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데 오히려 칭찬을 들어 어색한 거 있잖습니까. 꼭 그런 기분입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우리가 기도드리잖아. 죄를 사하여 주십사고. 그 때는 의식해서 지은 죄와 무의식중에 지은 죄하고 둘 다 사해 주십사고 기도하는 거예요. 그래도 오히려 뒤집어 생각해 보면 우연으로 그렇게 된 것도 역시 한 박사의 공로지.”
“그렇게도 되나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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