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동·장곡면의 3·1독립만세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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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동·장곡면의 3·1독립만세운동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1.19 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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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이슈-3·1독립운동, 임시정부수립 100주년
홍동 3·1운동 기념비 삼일각.

홍동 신기리·수란리 등 홍동주재소 등 공격해
장곡 윤형중 형제 주도·면사무소 기물 등 파손


■ 홍동면 3·1 독립만세운동
홍동면에서는 4월 4일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됐지만 정확한 인원은 확인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후 4월 5일 신기리 만경산에서 전개된 독립만세운동은 홍동면민들이 대부분 참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날 3·1독립만세운동은 신기리에 거주하는 이제경, 조우식 등이 주도했다. 만경산 앞에 위치한 봉우리인 꽃동산과 만경산이 이웃한 태뫼산이 연결되어 있어 많은 주민들의 참여를 위해 봉화가 올려졌다. 만세운동 중 갑자기 총성이 들리면서 당시 현장에 있던 이희도, 한명교 등은 현장에서 죽었다. 이석만, 안중호 등은 관통상을 당했다. 왜경은 주민 13명을 구속하고 태형을 가했다. 마을 주민인 성낙붕은 고문 여독으로 사망했다.

홍동지역에서 3·1독립만세운동으로 사망하거나 형을 받은 애국지사는 이제경, 조우식, 이희도, 한명교, 성낙붕, 안호봉, 안중호, 안진호, 복윤봉, 이석만, 주예식, 송만섭, 이희철, 조용화, 김흥석, 복정식, 유재춘, 최성록 등 63명이다.  4월 8일에는 황윤성이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황윤성은 인근 마을을 돌면서 세천마을은 청광산, 중원마을은 석삼봉, 종현마을은 종현봉에서 독립만세를 부른 다음에 홍동주재소를 공격하기로 했다. 4월 8일 주재소에 모인 군중들 앞에서 ‘왜놈은 물러가라’고 외쳤다. 이어 면민들과 함께 주재소를 공격했다. 또한 초롱산과 효학리 효동마을의 알미봉에서도 주민들의 만세운동이 전개된 것으로 알려진다. 수란마을 주민인 송만섭 씨는 당시 만세운동을 주도했고 일제의 가혹한 물고문과 태형 60도를 받았다. 알미봉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됐는데 효동마을 출신인 이북헌, 이병헌, 이두헌 등이 주도했다.

홍동면민들이 주도한 3·1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주민들이 뜻을 모아 구정리의 이병익 씨와 팔괘리의 이창우 씨 등이 발기해 홍동노인회와 함께 선열들의 애국충절을 추모하는 기념비를 건립하자고 제안했다. 이후 1973년 1월 5일 추진위원회를 구성, 노인회 자체자금 5만 원과 면내 유지들이 모은 4만3700원, 재경홍동향우회의 후원금 4만5000원으로 홍동면 운월리에 기념비를 세웠다. 이후에도 각계 인사들의 지원으로 제수전이 마련되고 1978년에는 홍성군의 지원으로 비각을 세우고 삼일각 현판식을 개최했다.
 

장곡면 도산리 3·1운동 기념비.

■ 장곡면 3·1 독립만세운동

故 김동준

장곡면에서는 윤형중, 윤익중, 윤낙중 형제들의 주도로 4월 4일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했다. 윤낙중은 2월 말경 민족대표 33인이 주도하는 3·1운동을 듣고 3월 1일 탑골공원에 나가 독립선언서 선언식에 참가했다. 윤익중은 독립선언서 100여 매를 가지고 윤낙중과 함께 3월 20일 귀향했다. 윤익중은 윤형중, 윤의석 등과 함께 독립만세운동의 행동강령을 결의하고 지역 인사와 인근 마을 주민들에게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하도록 설득했다. 이들은 4월 4일에 윤만수, 이문재, 최기석, 최채선 등 화계리·광성리·신풍리 주민들 100여 명과 함께 매봉산에 올라 횃불을 올리고 독립만세를 고창했다.

4월 7일에는 김동하, 김동화가 주도한 독립만세운동이 있었다. 그는 김동완, 김용숙, 김용제, 이화춘, 김차제, 한상철 등 화계리 주민들과 앞산에서 독립만세를 부르고 도산리 면사무소로 이동했다. 오후 8시경 광성리와 가송리 등 주민300여 명과 함께 면사무소 뒷산인 응봉산에 올랐다. 한상철이 일제 만행을 규탄하는 연설을 하고 독립선언문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문재 등이 앞장서 면사무소를 공격하자 면민들도 돌과 막대기 등으로 정문 기둥을 부수고 굴뚝을 무너뜨리며 유리창 17장을 깨트리는 등 면사무소의 각종 시설과 기물, 문서 등을 파손했다. 4월 8일에도 오후 11시 30분 경 주민과 학생들 60여 명이 도산리에 모여 면사무소를 공격하고 독립만세를 불렀다. 1994년 장곡 3·1운동을 기념하고 애국지사들의 충절을 추모하기 위해 도산리에 3·1운동 기념비를 건립했다.  

장곡면 지정리에서 3·1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던 김동준 씨는 1893년생으로 20살이 채 안 된 어린 나이에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했다가 태형 90도를 받았다. 김동준 씨의 손자 김기학 씨와 손자며느리 임영순 씨는 故 김동준 씨를 기억하며 “할아버지가 태형을 맞는 도중 기절을 했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집에 와 있더라고 했다. 태형을 맞은 곳이 너무 아파 고문에 특효라는 똥물을 마시고 버티었다고 한다”고 말한다.

故 김동준 씨의 손자 김기학 씨와 손자며느리 임영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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