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수로인가 수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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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로인가 수렁인가
  • 이동호 <홍동면>
  • 승인 2019.03.08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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팡팡이가 새끼를 낳았다. 팡팡이는 옆집에 사는 개다. 배가 좀 부른 것 같더니 어느 날 홀로 새끼를 낳은 것이다. 모두 8마리다. 꼬물꼬물 엄마 젖을 찾아 기어 다녔다. 무더위에도 지지 않고 쑥쑥 자라 눈을 뜨더니 어느새 뛰어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지금까지 이런 일은 없었다. 팡이들이 집 옆 도랑에 모여 낑낑 거리고 있었다. 플륨관, ‘측구수로관’이라는 시멘트 수로에 새끼 한 마리가 빠져 버린 것이다. 사람에겐 무릎 깊이지만 키 작은 강아지에게는 만리장성처럼 높은 벽이었다. 엄마도 새끼도 당황해 낑낑 울었다.

가을 추수 후 농한기가 되면서 농수로에 플륨관들이 한참 설치됐다. 실로 관이라 할 법한 깊고 넓은 관이었다. 흙고랑이던 자연 수로 시절, 수로 관리가 매년 농사 전, 주요 행사였다고 한다. 같은 물길을 쓰는 사람들이 모여 물길을 정비했다고 한다. 플륨관은 한 번 설치하면 관리할 필요가 없다. 편리한 세상이라지만 물에게는 갈 수 있는 길과 가지 못하는 길이 구분 지어졌다. 물은 오로지 하천을 향해서만 흐르게 됐다. 땅으로 스며들어 지하수가 될 기회도, 수생식물을 통해 정화될 기회도 잃어버렸다. 무엇보다 플륨관은 작은 동물들, 지렁이, 붕어, 개구리, 뱀 등에게는 넘지 못하는 벽이 됐다.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죽음은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몫이다. 밀양송전탑 싸움은 분명 이 사회에 중요한 화두를 던졌다. 막무가내의 핵발전소 증설과 그에 따른 장거리 송전선로가 야기하는 불의하고 모순에 찬 구조가 폭로됐다. 대기업을 위해 도시 생활자들의 맹목의 소비생활을 위해 누가 어떤 고통의 맷돌 속으로 내던져지는지를 밀양송전탑 싸움은 대낮처럼 드러내 보여줬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밀양송전탑반대대책위 사무국장 이계삼 씨의 칼럼집이다. 도시로 보내는 전기를 위해 발전소가 세워지고 그 사이를 잇는 고압의 송전탑이 세워졌다. 장거리 송전의 효율을 위해 초고압으로 전기를 보낸다. 형광등이 켜질 정도의 고압인 송전탑의 전자파는 대단하다. 송전탑으로 마을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졌다. 갈등이 깊어지며 죽는 이도 있었다.

우리는 무언가를 남기기 위해 싸우는 것은 아니다. 이 불의한 힘 앞에서 굴복하지 않고, 죽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다. 서로 손을 놓아서는 안 되는 분명한 이유는 누군가가 손을 놓아 버린다면 또다시 좌절과 우울을 견디지 못한 다른 누군가의 죽음이 예비 될지도 모를 것이기 때문이다. 효율이라는 이름 앞에 송전탑 밑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권은 고려사항이 아니다. ‘송전탑’을 다른 단어로 바꾸면 우리의 상황도 다르지 않다. 홍성은 이미 폐기물 처리장, 공장식 축산, 화력발전소의 미세먼지 같은 다른 ‘송전탑’을 살고 있다. 목소리 없는 자들의 들리지 않는 아우성. 남의 일이라고 지나칠 수 있다. 하지만 작은 것 다음의 작은 것은 바로 나라는 사실까지 우리는 지나 칠 수 없을 것이다.

이것은 수로인가 수렁인가. 지금까지 이런 나락은 없었다. ‘고르게 가난한 사회’는 우리 사회의 플륨관에 대한 이야기다. 수렁에 빠진 우리 모두가 함께 실마리를 찾아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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