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산 김복한 선생 ‘제성록’ 발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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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김복한 선생 ‘제성록’ 발견했다
  • 김옥선 기자
  • 승인 2019.04.0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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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석 기리는 제자들 명단 공개… 홍성 독립운동 확인

최명용·이길성 등 파리장서와 독립운동 앞장 선 인물
‘지산 선생 석의시’제성록에 나와있는 제자들 명단.

김복한 선생의 상석을 기리기 위해 제자들이 십시일반 그 뜻을 모아 기록한 명단인 제성록(齊誠錄)이 나왔다.

제성록은 홍주성역사관이 지난 2015년에 유물을 구입하면서 보관하고 있다가 이를 이윤현 학예연구사가 발견, 손세재 철학박사가 번역했다. 번역에 따르면 “山頹三年, 安迎之痛, 承學普切, 而三席聽誨, 永無其路, 則謀使: 태산(泰山)이 무너진 지 3년이 지났다. 그 3년 동안은 우리들에게 편안히 맞기에 어려운 고통의 나날이었다. 배우고자 하는 마음 간절해 선생께 다가가 가르침을 청하고 싶어도 선생께서 아니 계시니 이를 어찌 하랴. 흐르는 눈물을 머금고 이에 다음과 같이 결의한다. 先師載道之書及時印出, 各藏一本朝夕尊閣, 以寓餘生江漢之慕, 而時義丁寧, 河淸難俟, 則區區殘誠, 無寧圖效於先師墓前象設之石乎, 玆, 與門下同志爛商決議, 書一左開: 선생의 뜻을 담은 서책과 시책(時策) 등을 발간해 각자 한 부씩 나눠 갖고 존각(尊閣)에 모셔두고 아침저녁으로 배알(拜謁)하며 우리의 남은 생을 선생의 큰 은혜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지내며, 때에 맞는 도리를 실천하고자 하는 마음 간절하지만, 언제 그 때가 올지 알 수 없고 또 마냥 기다리기도 어려우니, 차제에 선생의 묘 앞에 여러 상석(象石)을 모셔놓고 우리들의 뜻을 다지는 일이라도 해야 하지 않겠는가? 이에 문하생들과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 서로 더불어 의론을 거듭하여 결의하고, 좌(左)와 같이 하기로 뜻을 밝힌다.

一. 禮付金隨其誠力而捐出: 하나. 예부금(禮付金)은 각자 정성과 능력에 맞게 출연하기로 한다.
一. 雖非承學者而景慕先師要助萬一則許之: 하나. 선생께 배움을 받지 않은 사람이라도 선생을 우러러 사모하는 마음에 만분의 일이라도 이 일을 거들고자 한다면 그것을 허락하기로 한다.
一. 捐金收合之期, 定以今年十一月十日, 若有隨聞追捐者, 不拘此限: 하나. 의연금을 거두는 기간은 금년 11월 10일까지로 정하고, 만약 우리들의 이 뜻을 듣고 기꺼이 동참하고자 추후에라도 찾아오는 이가 있다면 굳이 이 기한을 적용하지 않기로 한다.
一. 立石期限丁卯三月: 하나. 상석을 세우는 기간은 정묘년(1927년) 3월로 정한다
一. 選差總事一人, 掌財一人: 하나. 일 전체를 총괄할 사람과 재무 일을 맡아볼 사람을 각각 한 사람씩 선임하기로 한다.
一. 未盡條件, 追後磨鍊: 하나. 기타 미진(未盡)한 사항은 더 연구하여 추후에 정하기로 한다”이다.

지산 김복한 선생은 1924년 3월 29일에 산수동 정사에서 65세의 나이로 죽음을 맞았는데 3년 뒤인 1927년 정묘년에 상석을 세운 것으로 명단에는 각자 얼마씩을 내었는지가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명단에 따르면 이우직 1000량, 황일성 200량, 박규영 100량, 신해철 200량, 김동한 200량, 전용옥 500량, 성유경 100량, 최장환 600량, 박영수 60량, 김동수 500량, 심성기 100량,    이경헌 100량, 김창현 300량, 전용학 70량, 이영규 100량, 이학구 30량, 최명용 300량, 김동설 100량, 이종규 50량, 이규언 100량, 홍일섭 50량, 박봉래 50량, 김응환 200량, 구경회  100량, 구돈회 150량, 권용현 50량, 이규상 100량, 방효직 50량, 서익모 50량, 방효석 30량, 이희창 50량, 황예성 50량, 황시현 50량, 이승갑 30량, 한상조 30량, 배중환 50량, 한근영   50량, 이길성 20량, 이한영 40량, 김용구 30량, 박노준 100량, 황병국 50량, 황재일 50량, 명우진 20량, 김원직 50량, 이일형 60량 등이다.

이중 전양옥의 부친은 전양진으로 파리장서에 서명을 하고 신간회 활동을 한 인물이며, 최명용 역시 파리장서에 서명을 하고 신간회 활동을 한 인물이다. 이길성은 이 설 선생의 제자로 홍성 독립운동에 앞장섰던 인물이기도 하다.

이윤현 학예연구사는 “지산 김복한 선생이 돌아가신 뒤 유교부식회가 생기기 전까지 3년 동안의 공백기가 있었는데, 선생의 석물을 세우는 것을 통해 유생들의 명단이 공개됨으로써 홍성의 독립운동과 관련한 움직임이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라며 “현재 명단에 기록된 인물에 대한 후손을 찾고 있으며 확인 시 홍주성역사관으로 연락해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홍주성역사관은 지난 2일부터 ‘지산 김복한 선생과 인지제’ 전시회를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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