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구룡정미소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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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구룡정미소를 지킨다
  • 홍순영 주민기자
  • 승인 2019.04.07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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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상규(80·사진)씨와 오금순(74)씨는 30년 동안 구룡정미소를 하루도 빠짐없이 지킨다. 쌀농사를 짓고, 쌀을 사서 먹는 어르신들이 돌아가시면서 정미소를 찾는 사람들도 조금씩 줄어들고 있다.

홍성읍에서 내가 살고 있는 장성리로 향할 때면 어김없이 구룡리 동구마을을 지나쳐 온다. 이게 가장 빠른 길이다. 구룡리 동구마을로 들어올 때면 옛날 교과서에 나올법한 오래된 간판의 ‘구룡정미소’가 눈에 띈다. 때로는 ‘탈탈탈~’ 소리를 내며 벼 껍질이 벗겨지는 도정소리도 들리고, 가을 추수할 때면 트럭들이 줄지어 서 있는 광경을 본다.

매일 지나쳤던 구룡정미소로 쌀을 구매하러 갔다. 꽤나 높은 지붕과 연식이 좀 된 기계들이 정미소의 역사를 그대로 보여줬다. 한쪽에는 갓 도정한 쌀들이 흰색 포대에 담겨 차곡차곡 쌓여있었다. “쌀 한 포대(20kg) 주세요~” 할아버지는 얼굴의 주름으로 보아 나이가 지긋해보였지만 쌀 한 포대 정도는 거뜬히 들어 내 차에 실어줬다.

정미소 옆으로 사무실로 쓰는 공간이 있다. 텔레비전이 있고, 주로 여기를 찾아오는 손님들을 기다린다. 구룡정미소가 얼마나 오래 되었는지 물어보자, 복상규 씨가 한참 옛날의 기억을 더듬는다. “어~ 계산해보니 이 정미소도 100년은 됐네.”

처음엔 광산 김씨가 운영했다.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지금의 복상규 씨가 인수받았다. 그게 벌써 30년 전이다. 농사지을 땅도, 재산도 없이 막걸리 배달하는 일로 시작해서 지금의 정미소를 운영하기까지 오랜 세월이 걸렸다.

복상규 씨는 ‘새마을 정신으로 생활하자’라는 글귀를 벽에 붙이고 이렇게 살고자 노력한다.  “시대의 운으로 재산이 늘어났지, 정미소로 돈은 못 벌어. 사람들 주식인데, 물가가 오른다고 우리가 쉽게 값을 올릴 수 있간, 안 되지. 그래서 쌀값을 올리지 못해. 우린 정미소 하루도 못 쉬어. 명절에도 아침만 얼른 먹고 정미소에 와 있어야 해. 정월 초하루 날에 왔다가 서울 올라가는 사람들이 ‘쌀 좀 줘요’ 하면 얼른 가게로 와야 하니까. 원래는 2일, 12일, 22일은 쉬는 날이야. 딴 데는 일주일에 한 번씩 쉬는데 우리는 이렇게 쉬어. 그때도 도정만 안 하는 거야. 오는 손님들 빈손으로 가게 할 수 없어서 정미소는 못 비워. 집사람이랑 가까운 보령 바닷가에 놀러가도 ‘쌀 줘요’ 전화라도 오면 밥도 못 먹고 쏜살같이 달려와. 쌀 주려고. 쌀 사러 왔는데, 주인장이 없어봐. 그게 2번만 돼봐, 사람들 안 와~. 마트 가서 사먹지. 뭐 하러 여기까지 오겠어. 그래서 우리는 하루도 못 쉬어. 둘 중에 누군가는 정미소를 지켜야 해”라며 지금까지 근면과 성실함으로 살았던 자신을 회상했다.

30년 동안 주변의 정미소 11개가 사라졌다. 이곳의 쌀은 인근지역에서 농사 지은 것이다. 쌀농사 지어 가족들 먹고 남는 것을 갖다 주면 정미소에서 도정해 판매한다. 판매하는 종류는 백미, 현미, 혼곡이다. 혼곡은 백미랑 찹쌀을 10:3 정도로 섞은 것이다. 어르신들은 밥 지을 때 소화가 잘 되게 하기 위해 백미에 찹쌀을 섞는다. 그래서 백미 하나, 찹쌀 하나 쌀 포대가 2개 필요하다. 그런데 집에 쌀 포대를 2개 놓기 싫다며 어르신들이 혼곡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다. 그렇게 혼곡이 탄생했다. 소비자 맞춤형 생산품이다. “홍성 식당 몇 군데도 우리 쌀 갖다 먹어. 손님들에게 갓 지은 밥으로 맛있게 대접하라고 꼭 얘기해.”

복상규 씨의 밥맛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구룡정미소는 그때그때 쌀을 도정해서 판매한다. 여름에는 날씨 때문에 자주 도정할 수밖에 없다. 그럼 몸은 수고롭지만 갓 도정한 쌀을 판매한다는 신념으로 꾸준히 그렇게 해오고 있다.

“딱 10년만 더 하고 죽었으면 좋겠는데…”라고 말하는 복상규 씨는 이렇게 마지막 바램을 내비쳤다. 매일 매일 구룡정미소를 지켜야 하는 일상을 묵묵히 감내하며 살아온 세월이 30년이다. 그리고 아직도 10년을 더 지키고 싶다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서 비장함과 묵직함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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