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문희의 ‘탐매(探梅·尋梅)에서 심사거(尋思去·行思)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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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희의 ‘탐매(探梅·尋梅)에서 심사거(尋思去·行思)로’
  • 글=한관우 발행인
  • 승인 2019.04.21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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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사거(尋思去), 260x150, 광목에 수묵담채.

■ 하얀 백지위에 먹물 빛이 흐르는 삶
“중국 명말(明末)의 대표적 문인인 동기창(董其昌)이 ‘화지(畵旨)’에서 문인화가의 계보에서는 시인이며 그림에도 능했던 당(唐)나라의 ‘왕유(王維)’를 첫손에 꼽았고, 원말 4대가의 출현으로 산수화 양식의 전형이 완성되면서 남종화(南宗畵), 남화(南畵)라 불리며 비로소 특유의 양식으로 정착된 문인화(文人畵)의 새로운 맛을 정말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서 호기심이었다. 문기(文氣) 넘치는 김정희(金正喜)의 난(蘭)이 화가 조문희(趙文姬)의 필묵(筆墨)에서 겹치고 있었다. 

여성 특유의 체취가 묻어나는 듯한 섬세한 필치에 선비적 문기가 녹아들었다. 허난설헌(許蘭雪軒)과 신사임당(申師任堂)같은 여류작가들이 마음가짐으로 담았던 고매함과 여인스러운 체취가 아마도 시서화일체(詩書畵一體)가 어우러져 평소 삶의 자세로 스민 학문적 품성의 문기(文氣)가 그의 화폭에 필묵으로 표현되고 있었기 때문일까. 예술도 삶처럼 정형화되면 안 되지만 사실은 정형화되고 있는 걸까. 갈산면 운곡리가 고향인 문인화가 조문희 화백은 갈산초(41회), 갈산중(11회)을 마치고 서울 유학길에 올라 서울여상을 졸업했다. 2년 정도의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했고 고교시절부터 그림에 매료된 그 꿈을 독학으로 이룬다. 10여년을 자신의 아파트 안방화실에서 한 남자의 아내로 자식을 둔 어머니로 부모를 모시는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다하며 어려움과 난관을 스승으로 그림에 빠졌다. 마침내 1985년 동아미술제 문인화부문에서 ‘난(蘭)’으로 동아미술상을 수상하면서 ‘화가’의 꿈을 이루며 소위 말하는 ‘화단’이란 곳에 등극했다. <~중략~>고향에 내려온 동기를 묻자 거침이 없다. 첫째는 “그림이 변해야한다. 변화를 추구 하겠다”는 생각을 깊이 했고, 또 한편으로는 10여 년 전에 갑자기 쓰러진 남편의 병환 얘기를 꺼냈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이 결국은 중증 장애인이 됐고, 병원에만 누워 있느니 다만 10여일이라도 맑은 공기와 자연환경에서 보살피는 게 소망이란 생각이었다”는 아픈 고백을 하는 순간엔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서울 상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의~”라는 말끝은 결국 잇지 못했다.” 이 글은 지난 2006년, 화가 조문희를 만나 인터뷰한 내용의 일부다. 이후 13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난 주말 익숙한 필체의 봉투에 담긴 도록 한권을 받았다. 도록 속에는 “춥고 무섭던 겨울도 제 스스로 물러가는 것을 보면서 기다리고 이겨낸다는 것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갈산난야에서 큰 자식을 119에 태워 홍성의료원으로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로 왔습니다”로 시작되는 한통의 편지가 동봉돼 있었다. 순간, 그동안 잘 지내셨겠지?라는 생각엔 무심함이 몰려왔다. 무소식이 희소식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산소 호흡기를 차고 저는 환자 옆자리가 아닌 운전사 옆자리에 앉아서 가끔 환자를 쳐다볼 수는 있지만 손바닥만한 창으로 자식이 누워 있는 뒷좌석을 돌아보고, 보고 또 보며 서울 성모병원 응급실까지 그렇게도 길고 먼 길은 생전 처음입니다. 응급실에서 투석하고 수혈 받으며 서류에 사인해야 살 수 있다하니, 사인도 하고 손도장도 찍었습니다. 무균실에서 중환자실로 이리저리 실려 다니면서 어느 날 깨어났어요. 의식이 돌아온 제 자식은 “엄마 나 머리는 괜찮아”했어요. 본인도 모르는 눈물이 주르르 흐르는 것을 저는 보았습니다. 엄마가 있으니 걱정 말라 했지만 저에게 남아 있는 것은 무섭고, 서러움 뿐 입니다. 제 자식은 월, 수, 금, 주3회 투석하고 신장암 수술을 받았습니다. 2017년 9월 초에, 1년 반이 넘었군요. 신장이식 등록을 했고 기다린다는 것이, 한없이 기다려야 한다는 것이 두렵습니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아픔이 덜하길 간절히 바라지만 냉정한 현실은 제 생각과는 멀기만 합니다. 우리 집 자식이 엄마가 우울증에 걸릴 것 같으니 옛사람도 만나고 전시도 할 수 있으면 하라 합니다. 마침 초대전이 있어 참여하면서 제가 조그만 도록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내어 놓은 붓 자국이 저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 있었습니다”라며 앞으로 구항에 내려가 집수리도 하고 아픈 자식과 함께 열심히 살 계획이라는 희망과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왜, 였다. 남편을 위해, 또 자식을 위해 한 여인으로서 엄마로서, 한 여류화가로서 그렇게 하얀 백지위에 먹물 빛이 흐르고 있었다.
 

월야음매(月夜吟梅), 76x68, 한지 수묵담채.

■ 2019 오늘의 書藝術 그리고 내일전
그렇게 살아온 ‘문인화가 갈산(갈미) 조문희’의 삶은 미학세계에서의 삶의 쉼터, 마음의 표현, 여백의 매력을 회화적 조형성으로 호흡하고 있다. 그가 채우는 화폭의 ‘매화’가 추운 겨울엔 죽은 듯 봄이 되면 꽃이 피듯이 그의 삶과 대비되고 있었다. 깊은 가을 그가 그린 ‘국화’에서는 그래서 향기가 그렇게 진한가 보다.

문인화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변해버린 붓 자국의 변화를 볼 수 있는 갈미 조문희(葛山 趙文姬)의 문인화 초대전 ‘탐매(探梅·尋梅)에서 심사거(尋思去·行思)로-2019 오늘의 書藝術 그리고 내일전’이 지난 4월 3일부터 9일까지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렸다.

이번 초대전의 조문희 작품에 대해 밀라노 국립 브레라미술대학 에르만노 조필리 미술사 교수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결코 연속성이 없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의무를 포함하여 과거에서 발원하여 현재를 극복해야만 하는 하나의 연속성과 통일성을 이룬다. 조문희의 작품에서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재성은 이러한 과거와 미래 사이의 연계성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현대 미술적 관점에서 본 조문희의 예술은 원초적인 표현 욕구에서 출발한다. 조문희는 출발과 동시에 곧바로 인간경험의 깊은 영역으로 침잠해 들어갔다고 보는 것이다. 그러나 새로운 전통은 스스로 진화하고 고도의 복합적 문화형태로 발원되며, 불가피하게 타인들 간의 경험적 요소, 즉 사회와 그 구성원, 국가와 개인 같은 관계를 포함하게 된다. 모든 작품들은 그 작가의 심리상태를 반영하는데, 조문희의 공간, 즉 여백을 대하는 태도는 그가 보아온 자신만의 세계에 대한 심리적 반영이다. 예술의 특권인 사물을 관조하는 감각은 바로 작가의 여백을 다루는 방법이며, 공간에 대한 작가의 관점을 표현한다. 모든 예술작품의 표현은 그 작가의 공간을 보는 자세이며, 예술적 표현은 비록 무의식 상태일지라도 작가에 대한 외부세계의 투사적 반영이다. 그렇지 않으면 작가는 이것을 인지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평했다.
한편 미술평론가 오광수는 “조문희의 화면에선 조형으로서의 독자성이 두드러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그는 매화를 그리는 일정한 전통적 방식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분방한 구도와 활기찬 운필을 구사함으로써 자기만의 매화의 모습을 보여주고자 한다. 특히 화면 가득히 매화를 배치하는 그 일종의 전면(全面)구도는 그가 즐겨 사용하는 구도로 자신의 자유분방한 조형의지를 유감없이 드러내놓고 있다. 화면 가득히 넘치는 매화는 매화의 생태적인 모습보다 작가의 의도적인 구성에 의해서 해체되고 종합된 조형의지의 반영이라고 볼 수 있다. 화면 가득히 펼쳐지는 나뭇가지와 꽃송이의 배치는 풍요로운 리듬과 울림을 공간에 넘치게 한다”고 평하고 있다.

경희대 교수이며 미술평론가인 최병식은 여류문인화의 맥을 잇고 있는 조문희의 작품에 대해 “시(時)라기보다는 가사(歌辭)라고 보는 것이 좋을 듯한 이와 같은 화제는 단순한 문학적 의미를 넘어서 그림과 함께 어우러져야만 하는 시화일체(時畵一體)의 형태를 띠고 있어 평소 삶의 자세와 학문적 성향을 엿보게 한다”고 평했다.

갈미 조문희 작가

작가 조문희는 2019년 4월 서울 인사동 한국미술관에서 열린 ‘2019 오늘의 書藝術 그리고 내일전’에서 “매화를 찾아 산천(山川)을 헤매다가 지쳐 집에 돌아와 보니 마당에 매화꽃은 이미 피어 나를 반긴다는 중국 요연(了然) 바구니의 오도송(悟道頌)으로 알려진 탐매 이야기가 있다”고 소개하고 “문인화를 공부하는 작가에게 큰 울림을 줘 탐매작업(探梅作業)의 시작이 됐다”며 “이제 탐매에서 심사거(尋思去·行思)로 생각을 찾아서 간다”고 말했다. 이렇게 ‘尋思去  사람사는 이야기’로 전시회에 참여하면서 “내 모습을 내 이야기로 나 다움을 찾아가기로 했다”고 고백하고 있다. ‘심사거(尋思去)’와 ‘人’자 추상화를 통해 시·서·화가 어떻게 이 시대에 어우러지고 이루어져 가는가 하는 과정을 중시하게 됐다고 작가는 밝히고 있다.

조문희 화백은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을 수상했으며, 경희대학교 에술학부 강사와 한국미술협회 문인화분과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동산방, 백악미술관,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탈리아 밀라노보그고냐갤러리, 이탈리아 P.I.M.E박물관 등에서 일곱 번의 개인전을 비롯해 각종 그룹전, 초대전, 순회전 등에 출품했다. 지금은 갈산난야(葛山蘭若)에서 작품활동에 매진하면서 만물이 생동하고 새싹이 돋아나는 봄, 또 다른 희망가를 부르고 있다. 조문희의 앞에 펼쳐진 화선지에는 고통의 시간 속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의지가 매화, 국화, 조롱박, 석류, 수선화, 감, 사람 등 고향에 묻어둔 추억을 하나하나 꺼낸 듯 다양하고 다채롭다. 단아하고 간결하면서도 번짐과 갈필이 조화를 이루면서 발묵의 묘한 돋보임은 공간의 역동성과 긴장감으로, 생략과 여백의 여유에서는 한지와 순지, 화선지의 질감이 곡절 많은 삶의 변화만큼이나 진지한 울림으로 ‘화제(畵題)’를 감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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