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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양록(看羊錄)’은 말한다

‘간양록’은 수은 강항(1567-1618)선생이 임진왜란 때 일본군에 체포되어 4년간 고역을 치른 사실을 기록한 책이다. 그는 전남 영광 출신으로 율곡 이이 선생의 문인이요 자신의 큰형이 되는 저어당 강준에게 학문을 배웠다. 1597년 협상결렬로 왜군이 조선을 다시 침략하자, 그는 분호조참판 이광정의 종사관으로 남원에서 군량보급에 힘 썼다. 그러나 남원이 함락되고 고향 영광에서 김상준과 의병을 모집하다가 영광마저 적의 수중으로 떨어지자 가족을 싣고 뱃길로 탈출하다가 붙잡혀 일본으로 끌려간다. ‘간양록’의 원 제목은 ‘건차록(巾車錄)’이다. ‘건차’는 죄인을 싣는 수레라는 뜻이니, 선생이 나라에 죄를 지은 심정으로 글을 썼음을 알 수 있다. ‘간양록’은 ‘적국에서 임금께 올리는 글’, ‘적국에서 보고 들은 것’, ‘포로들에게 알리는 격문’, ‘승정원에 나아가 여쭌 글’, ‘환란생활의 기록’, 이상 다섯 가지를 한 권의 책으로 묶은 것이다. 여기에 병자호란 때 청나라와의 화친을 반대하다가 귀양을 간 바 있는 명신 유계가 이 놀라운 저술을 읽고 느낀 바를 적은 글을 책머리에 싣고 강항 선생의 제자 ‘윤순거’가 발문을 붙여 완전한 틀이 갖춰진 명저 ‘간양록’이 태어나게 된 것이다. 근자에 이르러 한일 관계가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한일 양국의 식자층 치고 두 나라 사이가 점차 나아지기를 바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가 않게 돌아가고 있음을 조석으로 느낀다. 400여년 전에 강항 선생이 본 바로는 일본은 칼이 지배하는 나라이다. 일본이 원래부터 무사의 나라는 아니었다. 11세기까지만 해도 그들은 귀족이 정치를 좌지우지 하던 나라였다가 1179년 이른바 원(源)씨와 평(平)씨 간에 10년 동안 벌인 겐페이(源平)전쟁에서 원씨가 승리하며 무사 즉 사무라이 시대가 열렸다.

겐페이 전쟁의 승자 미나모토 요리토모가 1192년 쇼군(장군) 지위에 오르고 무사정권 가마쿠라 바쿠후 (막부)를 세운다. 그후 가마쿠라 막부가 무너지고 1338년 쇼군에 임명된 다카우지가 교토에 무로마치 막부를 세운다. 무로마치 막부 말년부터 일본은 100여년간 약육강식의 전국시대에 접어든다. 전국시대 말 각지의 봉건 영주들을 신무기 조총으로 제압해 나가던 직전신장이 부하의 반란으로 죽자, 그의 부하였던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여 임진왜란을 일으킨 뒤 병사하며 조선은 왜란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된다. 한편, 임진왜란을 반대하던 덕천가강은 자국내에서 전쟁을 반대하던 동군의 우두머리가 되어 1600년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풍신수길을 지지했던 전쟁지지자들인 서군을 격파하고 1603년 세 번째로 막부를 열어 도쿠가와 막부의 쇼군이 된다. 250년 동안 이어져간 도쿠가와 막부를 쓰러뜨린 것은 결국 풍신수길을 따랐던 그 옛날 조슈번과 사쓰마 번의 하급무사들 자식들이었으니 칼을 숭배하는 일본인들의 집요한 복수전은 소름이 돋을 지경이다. 그 결과 도쿠가와 막부는 정권을 천왕에게 반납하니 이른바 메이지 유신이 시작되었고(1867년), 그 뒤 10년도 안되어 1875년 운양(운요)호 사건을 빌미로 일본은 강제로 강화도조약을 체결하면서 조선 침탈을 시작하였다. 아무튼, 강항 선생이 적지에서 보고 들은 바에 따르면, 일본은 농부와 승려층을 빼고는 모두가 칼을 두 자루씩 차고 다녔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모든 봉건영주 (각.번의 지배자)는 하나같이 무식했다는 점이다. 때문에 ‘다이묘(지역의 영주)들이나 장군들은 식자층인 승려를 참모로 기용했다. 임진왜란 때도 왜군 지휘자들은 승려들을 대동하고 다녔다.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풍신수길이 조선을 침략하도록 부추긴 사람은 대마도주 종의지였다는 것이다. 풍신수길이 일본을 통일하고 기세등등하여 유구국(오키나와)까지 삼키려하자 유구는 손바닥만한 땅이라며 뇌물로 풍신수길을 달랬음을 ‘간양록’은 말한다. 대마도는 그 당시까지 일본 땅이 아니었다. 대마도인들은 조선인들의 옷을 입었고, 조선어를 생활어로 사용할 정도였는데, 대마도주는 그 동안 조선정부로부터 쌀이며 각종 혜택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자리보전을 위해 강력한 풍신수길에게 빌붙으며 조선을 침공하도록 유도한 것이다. 어느 시대 어느 상황에서건 간에 세상의 흐름에 뒤처지고, 세력이 약할 경우, 약육강식의 비극적인 양상은 되풀이 된다는 것을 ‘간양록’은 분명히 거듭거듭 밝히고 있다. 요즘의 국제 정세와 우리나라의 처지를 염려해서 미리 써둔 경계서처럼 읽히는 것은 고마움에 앞서 씁쓸한 바가 없지 않다.

이원기 <청운대 교수·칼럼위원>

이원기 칼럼위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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