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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무 200년, 이런 가족 또 있을까?홍성 장곡 출신 이상순 일가의 사연 많은 가족사
육·해·공군·해병대… 이병·하사관에서 장군까지
6월은 호국 보훈의 달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된 이상순의 부친 고 이용운 육군대위의 묘.

경기도 수원시에 살고 있는 이상순(1943년생·장곡출신·홍성고18회 졸)씨의 가족 11명이 보훈가족으로 밝혀져 화제다. 이들 11명 모두가 홍성출신이거나 홍성출신과 가족관계여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들 일가족 11명이 군에 복무한 기간만도 200년, 육·해·공군·해병대에 이병에서 하사관, 준위, 장군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일가족 11명 중 8명은 6·25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7명이 전사했다. 나머지 세 명은 군복무 후 퇴역했으며, 현재 생존해 있다. 이들 일가족의 직책과 직업도 다양하다. 해병대와 해군의 법무감, 실장, 처장, 감독관 등을 지냈는가 하면 국방부 법무관리관, 법제처장, 국회의원, 국회사무총장, 청와대 사정비서관, 변호사, 교수, 장로에 이르기까지 한 가족이 살아온 내력 또한 가족사만큼 복잡하고 사연이 많다.

부친 고 이용운(1912년생) 대위는 7사단 3연대 소속으로 6·25한국전쟁에 참전, 전사해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됐다. 또 숙부 고 이근우, 당숙 고 이천우는 6·25한국전쟁에 참전했다가 전사, 선산에 안장됐으며, 당숙 고 이동우는 6·25한국전쟁에 참전 서울현충원에 안장됐으며, 장인 고 최만석은 6·25한국전쟁에 참전 임실 호국원에 안장됐다. 사돈 고 노재환은 6·25한국전쟁에 참전 국립대전현충원에 안장됐고, 이종 고 진상복은 6·25한국전쟁에 참전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돼 일가 11명 중 7명이 6·25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했다.

한편 현재 생존해 있는 당숙 이양우는 6·25한국전쟁에 참전한 이후 퇴역했으며, 당숙모 김정숙은 간호장교로 복무한 이후 퇴역했다. 당숙 이강우와 본인 이상순도 장교로 복무한 이후 퇴역해 일가 11명 중 7명이 6·25한국전쟁에 참전 전사했다. 현재 네 명이 생존해 있는데, 당숙 이양우는 6·25한국전쟁에 참전한 후 퇴역했고, 세 명(김정숙, 이강우, 이상순)만이 6·25한국전쟁에 참전하지 않은 군인가족이다.

특히 이상순은 고 이용운의 외동아들로 군에 가지 않아도 됐는데, 1966년에 입대해 1996년 6월 퇴역했다. 부친인 이용운 대위가 1950년 3월 38살의 나이에 입대해 39살에 전사하면서 당시 7살의 나이에 부친과 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부친 이용운 대위는 1950년 3월 3일까지 홍성에서 1차 훈련을 받은 이후 1950년 3월 19일 온양 신정호에서 훈련을 받았다.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1950년 8월 29일 소위로 임관 전쟁에 참여했다. 1950년 9월 12일 육군 대위(군번 201906)로 진급해 7사단 3연대 소속으로 전쟁을 치렀고 1951년 12월 24일 전사한 것으로 병적기록부에 기록돼 있다.

당시 이용운 대위가 소속돼 있던 국군 7사단은 1951년 9월 23일부터 29일까지 강원도 양구 북방 901고지와 백석산 일대 피의 능선 전투 등에서 완강히 저항하는 북한군 제12사단과 32사단을 완전히 섬멸시킴으로써 백석산 확보에 성공, 백석산지구전투사에 한 획을 그은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국군 7사단 3연대는 1950년 10월 20일엔 평양을 점령하기도 했다.

홍성읍 남산에 있는 충령사의 충혼탑에는 홍성군 11개 읍·면출신의 6·25한국전쟁 전사자 550명의 명단이 기록돼 있다. 이중에서 이용운 대위가 살았던 장곡면 출신의 전사자 49명 가운데 대현리 출신은 이용운 대위가 유일하다. 고 이용운 대위는 홍성 충령사를 비롯해 7사단 본청 충혼비, 국립 서울현충원, 육군본부 본청 동판비, 전쟁기념관 전사자 명비 등에 이름이 기록돼 있다.

이상순 씨는 “6·25한국전쟁의 풍화 속에서 아버지가 전사하시는 등 일가족 8명이 6·25한국전쟁에 참전해 7명이 전사했다”며 “우리나라에서 육·해·공군·해병대에 이병에서 하사관, 준위, 장군에 이르기까지 일가족 군복무 기간만도 모두 합해 200년에 이르는 이러한 가족도 전후에는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나는 아버지가 세른 여덟 살의 나이에 6·25한국전쟁에 참전해 전사하시면서 외아들로 군복무 면제자인데도 불구하고 한평생을 조국을 위해 나라를 지켰다. 이제 마지막 소망은 7살 때 헤어진 아버지 곁에 가 묻히는 것뿐”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이어 “아버지도 군번이 2개이고 이름도 4개나 된다”며 “독자인 아들도 군번이 4개다. 이제 마지막 가는 길 유언이라면 아버지 옆에 묻히는 것이 유일한 소원”이라고 강조하는 노병의 목소리에는 강한 힘이 들어가 있었다.

한기원 기자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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