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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에서 유래미세먼지시대 공동체의 삶과 생명의 공간이다<6>
당진 솔뫼성지마을 소나무 숲
  • 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 승인 2019.06.08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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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뫼성지의 소나무 숲 전경.

솔뫼성지,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출생한 곳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제529호 지정
솔뫼 노송의 등 굽은 사철 푸른 솔은 순교자들의 신앙고백을 상징
솔뫼마을 600여 그루의 소나무 숲, 수령만 100~300년 사이로 추정


누가 나무 중에 제일은 바로 소나무라 했던가. 늘 푸르고 멋진 소나무를 항상 볼 수 있는 곳이 바로 솔뫼성지다. 당진시 우강면 송산리의 솔뫼성지에는 웅장하고 멋진 소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특히 천주교성지라는 선입견 때문일까. 해질 무렵에 햇빛에 반사되는 빛에 소나무 숲이 어찌나 웅장하고 멋지게 보이는지, 왠지 신비로운 분위기마저 느껴질 정도다. 솔뫼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지로 유명한 곳이다. 솔뫼에 들어서면 바로 옆에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다. 김대건 신부의 동상도 있고 꽃나무와 다른 나무들도 심어져 있어 봄이나 여름, 가을과 겨울 언제라도 아주 아담하면서도 정감 넘치는 곳이다.

당진 우강면 솔뫼로 132에 위치하고 있는 솔뫼성지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가 출생한 곳이다. 이곳에는 김 신부의 생가와 동상, 기념관 등이 있다. 국내 제1의 가톨릭 성지로 명성이 자자하다. 1984년 5월 한국천주교 2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내한한 교황 요한바오로 2세로부터 김대건 신부가 성인으로 시성된 이후 전 세계 가톨릭교회의 공경의 대상이 됐다. 따라서 역사적으로나 종교적으로 중요한 문화유적으로 순례자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 사적 지정

문화재청은 지난 2014년도에 이곳 당진 우강의 ‘솔뫼마을 김대건 신부 유적’을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 제529호로 지정했다. ‘당진 솔뫼마을 김대건신부 유적’은 우리나라 천주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대한민국 최초의 사제인 김대건 신부(1821~1846년)를 비롯해 김대건 신부의 증조할아버지(김진후), 작은할아버지(김종한), 아버지(김제준) 등 4대에 걸친 순교자가 살았던 곳으로 널리 알려졌다. 1836년에 작성된 김대건 신부의 신학교 입학 서약서에는 김대건 신부의 출생지가 ‘충청도 면천 솔뫼’로 기록돼 있는데, ‘솔뫼’는 ‘소나무 숲이 우거진 산(松山)’이라는 뜻에서 유래했다.

현재 이곳에는 지난 2004년 복원된 김대건 신부 생가와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을 맞이해 1946년 세워진 순교복자비, 김대건 신부 동상, 울창한 소나무 숲 등이 자리하고 있다. 아울러 주변에는 김대건 신부 기념관, 야외 성당 등이 조성돼 있어, 김대건 신부의 발자취와 생애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또 중세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에 발생한 천주교 전래와 사상과 신앙의 자유에 대한 박해 과정 등을 집약적으로 이해할 수 있어 종교사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치·사상적 변천을 반영하는 중요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1785년 을사박해를 시작으로 100년여의 세월동안 박해를 받아온 천주교 역사 중 병오박해 때 순교한 김대건 신부(1822~1846). 신심(信心)만 놓는다면 해방 될 수 있는 온갖 핍박에 아랑곳없이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고자 했던 인물이다. 부귀영화에 아랑곳없이 가진 것을 나누며, 신자를 돕고 의지하면서 고난의 세월을 딛고자했던 성인. 김대건 신부에게 있어서 박해는 이미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이웃을 사랑하고 참된 진리를 얻기 위해 감내할 수 있는 극복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솔뫼성지의 신앙고백비에는 “솔뫼 노송의 등 굽은 모습에서 순교자들의 고단했던 삶을 엿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철 푸른 솔은 순교자들의 한결 같은 신앙 고백을 상징합니다. 솔뫼 순교자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것처럼 우리도 소나무를 심어 후손들에게 하느님께는 영광을, 사람에게는 구원을 가져오는 신앙을 전합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곳을 찾은 사람들은 “천주교 103인 성인 중 하나로 추앙받는 김대건 신부의 생가 뒷동산을 거닐자니 예의 소나무 숲과는 느낌이 사뭇 다르다”고 말한다. 이렇듯 제법 나이가 먹었음 직한 소나무들이 동산에 가득 숲을 이룬 곳 솔뫼. 솔숲을 거닐던 중 자세가 바르지 않고 휘어 자란 소나무들의 모습에서 문득 느낀 애처로움은 김대건 신부를 비롯해 증조부, 조부, 부친까지 4대가 순교한 인물을 기억하기 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 김대건 신부의 동상 뒤의 하얀 탑은 성모의 모습을 형상화한 탑으로 신자를 돌보고 있음을 상징한다고 한다. 믿기에 의지하고 사랑하기에 믿음을 준 성자와 성모의 상을 함께 바라보자니 사람은 믿음으로 살고 있음을 문득 깨닫게 될 수도 있는 곳이 바로 솔뫼다.

■ 소나무 숲, 오래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
솔뫼는 사시사철 들바람이 몰아치는 바람의 언덕이었다고 한다. 나지막한 언덕에는 소나무와 대숲이 소슬하고 송림 사이로 보이는 넓은 평야가 눈에 들어온다. 전해지는 얘기로는 현재 성지를 비롯해 인근 마을까지 소나무가 우거진 동산이었고 과거 성지 인근까지 바닷물이 들어왔다고 한다. 솔뫼성지 중앙에 자리한 소나무 숲은 족히 수백 년이 넘은 고목들이 우거져 사방 어디에서 바라봐도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 이곳은 600여 그루의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으며,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기 이전부터 심어진 나무들을 비롯해 그 수령만 100~300년 사이로 추정된다는 설명이다. 소나무 숲 왼편에는 복원된 김대건 신부의 생가가 있다. 이곳은 김대건 신부 순교 100주년이 되던 해인 지난 1946년 몇몇 뜻있는 신도가 살던 집터와 소나무 숲이 우거진 뒷동산(1만 6500㎡)을 매입한 것을 기화로 성역화 사업이 시작됐다고 한다. 그 당시에 기념비를 비롯해 성인의 동상, 탑 등이 건립됐다는 설명이다.

성역화 사업 당시 이곳은 김대건 신부가 태어나 자랐다는 얘기만 전해져 내려올 뿐 정확한 실증자료가 없던 터라 인근 주민들의 증언을 토대로 지난 2004년 지금의 생가를 복원했다고 한다. 생가 터를 지나 성지의 남쪽 끝은 김대건 신부의 일대기와 천주교 박해역사를 둘러볼 수 있는 기념관이 솔숲 속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그의 출생에 관한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의 활동과 업적, 체포와 순교 4대 박해, 한국교회사 등에 관한 자료와 함께 희귀 성물도 전시되고 있어 천주교의 생활문화도 엿볼 수 있다. 솔뫼성지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천주교성지로 한 해에만 20만 여명의 순례자와 일반인들이 찾고 있다고 한다. 솔뫼성지의 상징이자 상당한 역사적 가치를 지닌 소나무 숲이야 말로 오래도록 보존해야 할 문화유산인 만큼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한 이유다. 당진시는 2014년 솔뫼성지 소나무 243그루를 아름다운 소나무로 지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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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한기원 기자 사진·자료=한지윤 기자·신우택 인  hjn@hjn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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